오래된 인연이 편하다
이혼하고 외상후스트레스 장애라고 봐야하나 싶게
한동안 너무 힘들었고 그냥 하루하루를 버티는 느낌으로 살았다.
일도 원해서라기보다 좀 더 사람답게 살기위해 시작하고 그렇게 지친하루를 견뎌내고 있던 찰나
잘 열어보지 않던 네이버 메일로 무언가를 보내고 다시 다운 받으려 접속했다.
그리곤
'생일 축하해' 라는 제목의 메일을 발견했다.
잊고지낸 사람에게서 온 생일축하메일.
011에서 010으로 바뀌면서 주소록에서 정리됐던 사람.
마지막 연락이 족히 15년은 더 되었을 사람에게서.
조심스레 써내려갔을 메일이었고 내용도 꽤 길었는데도 불구하고 너무 당황스럽고 반가운 나머지
내 답장은 무지 짧았다.
세상에. 이게 누구야.
진짜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드네.
뭐하고 살어?
다시 온 답장에는 그 오만가지 생각이 긍정적인 부분이었으면 한다는 말이 적혀있었다.
정말 한 단어, 아니 한 문장으로 표현이 안되는 감정에 휩싸였었다.
일하는 중이라 제대로 읽지도, 제대로 답장을 하지도 못한채 내 번호와 카톡 아이디를 알려줬다.
번호 안 바꼈네.
내 번호를 기억하고 있었고, 필연적으로 마지막 숫자는 내 생일이니 자연스레 생일도 알고 있었다고 말하는 그.
이렇게 오랜만에 연락을 할 생각을 다 했냐했더니
예전에 내가 선물로 준 시디보면서 생각이 났다고 한다.
그래. 그랬었지.
내가 그 그룹을 알게되어서 푹 빠지곤 지인들에게 선물하기도 했고, 그 이야기에 한참을 듣지 않았던 노래와 추억이 소환되었다.
옛날 이야기, 시덥잖은 농담들, 힘들었던 요즘 이야기도 가볍게 툭.
그렇게 그의 표현에 의하면 '맥락없는 대화'를 오랜만에 했다.
하나도 안 변한거 같다는 말에 가슴이 뭉클.
그동안 함들었던 시간이 무색하게 만드는 그 말.
그치. 이런 게 나였지를 깨닫게 해주는 말들.
한동안은 누군가와 가까워지려하는 찰나에 항상 발을 빼던 나였는데 15년의 공백따위 느껴지지도 않게 또 그렇게 가까워졌다.
그냥 꾸미지않아도 되고, 어떤 말을 해도 다 받아주는 대화가 너무 오랜만이라 계속 핸드폰을 붙잡고 있게 만들었고
그 대화들은 뻥 뚫린 가슴을 조금씩 채워주는 느낌마저 들었다.
나를 알고 있는 사람이 편하긴 하구나.
예전에는 날 좋아해주던 그에게 선 긋기 바빴던게 생각나서 조금은 얼굴이 붉어졌지만
그래도 나이 먹고보니 앞뒤양옆 보지도 않고 직진하던 그 모습도 많이 다듬어졌다 싶어서 불편한 기운은 느껴지지 않았다.
자세한건 쓰지도 않은 블로그지만 그거보고 좀 힘들어보여서 응원해주고 싶었다는 말에 눈물이 왈칵 쏟아질 뻔도 했다.
나를 너무 잘 앎으로 인해 오는 편안함.
예전엔 독설도 잘 하던 내 덕에
오히려 더 발전한거 같다고
이제는 자기가 힘이 되어주면 좋겠다고 하는 말에
조금은 기대도 되나하는 이기적인 생각이 나도 모르게 스멀스멀 올라왔다.
다시 연락해줘서 고맙다는 말이 나오기까지 한참이 걸렸지만 끝내는 하고말았다.
이제는 좀 이기적으로 살아도 되지않나하는 생각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