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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뭐라도 해 봅니다.

결국 오늘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by 미국변호사 Violett

회사에 불만이 있을 때마다 무엇인가를 해야 버틸 수 있었다. 첫 회사는 전형적인 한국 대기업이었는데, 신입사원 연수 때부터 나에게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 같은 느낌이 들더니 그 느낌은 계속해서 강해져만 갔다. 친구를 만나서 불평도 많이 했지만 근본적인 원인이 해결되지 않으니 나아지는 것은 없었다. 가만히 있으면 회사 생각이 자꾸 나서 생각을 하지 않기 위해 무엇인가에 몰입하기로 했다.


뭐라도 해야 살 수 있던 시기였다. 그림도 배우고 피아노도 배우(다 한 달도 되지 않아 그만뒀)고 책도 일 년에 몇십 권씩 읽고 소설 쓰기 수업도 들었고 영화관 멤버십 등급은 VIP가 되었다. 친구들은 나에게 '취미 콜렉터'라는 별명을 지어주었다. 적어도 취미 생활을 하는 시간엔 다른 것을 다 잊고 몰입할 수 있었다. 초저녁이 되면 곯아떨어진다 해서 신생아냐는 놀림도 많이 받았었는데 퇴근하고 소설(이라기엔 습작)을 한참 쓰다 새벽에 잔 적도 있었고, 주말 내내 미술학원에 가서 손이 아플 때까지 그림만 그린 적도 있었다.


해를 거듭할수록 취미의 수는 늘어갔지만 회사는 여전했다. 일과 사람은 여전히 어려웠고 경직된 조직문화에는 여전히 적응하지 못했다. 매일 하루치 일을 겨우 해내느라 숨이 가빴고 회사 상사들과 조직문화는 달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스물네 시간 중 회사에 있는 시간이 최소 아홉 시간이나 되는데 이 힘든 시간을 조금이라도 나아지게 해야 계속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일과 사람과 문화, 셋 중에 사람과 문화는 내가 꿀 수 없더라도 업무 능력을 키우면 일은 쉬워질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 졸업 후 몇 년 만에 공부를 시작했다. 회사에 가면 공부하지 않아도 되는 줄 알고 공부하기 싫다고 취업을 선택했었는데, 일을 잘하기 위해서는 공부가 필수였다. 당시 내가 담당했던 업무는 아파트 관련 법무였는데 재개발, 재건축과 관련된 지식이 전무했기 때문에 매일 구글과 네이버의 도움을 받고 있었다. 회사를 위해서 공부하는 것은 괜히 억울했다. 남는 것이 있어야 손해를 덜 보는 것 같아서(몇 년째 막내로 지냈기 때문에 회사에서 손해 보고 일한다는 생각을 꽤나 했던 시기였다) 이왕 공부할 것이라면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해 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약 10개월을 공부에 몰두한 끝에 동차 합격을 했고, 회사에서는 느끼기 어려웠던 성취감을 드디어 느꼈다. '나도 할 수 있다'는 믿음이 몇 년 만에 다시 생겼다.


그 이후 첫 회사였던 전형적인 한국 대기업을 퇴사하고 새로운 회사로 이직했는데, 새로운 회사는 내 인생 계획에 전혀 존재하지 않았던 외국계 기업이었다. 첫 회사에서 해외법무를 해 볼 생각이 없냐는 상사의 말에 '저는 한국말만 하고 살 건데요'라고 단호하게 대답했었는데, 어쩌다 보니 미국에 본사를 두고 있는 회사에 입사하게 된 것이다. 돈을 벌어야 나를 입히고 먹일 수 있으니 이제 영어를 다시 공부해야 했다. 임원면접 때 영어로 일할 수 있냐는 질문에 '생활 영어는 가능합니다만 입사하게 되면 공부하겠습니다'라고 대답했던 기억이 났다. 내가 뱉은 말이 생생히 기억나니 못 한다고 할 수도 없고.


서른두 살에 계획에도 없던 대학원에 입학하고 미국법을 전공하는 대학원생이 되었다. 한국에서 미국 로스쿨 일 년 코스를 이수할 수 있다고 해서 미국 로스쿨에도 입학했고, 남 얘기라고만 생각했던 미국 변호사 시험까지 도전하게 되었다. 영어 공부 얘기하다 갑자기 미국 변호사까지 급진전된 이유는, 이번에도 손해보지 않으려는 나의 이상한 성격 때문이라고 일단 해 두자. 일 년 반 동안 많은 것을 포기하고 공부에 매진한 결과 한 번에 미국 변호사 시험에 합격했다. 이번엔 '뭐든 할 수 있어'라는 믿음이 생겼다.




가만히 있지 못해서 뭐라도 하려다 보니 여기까지 온 이야기를 하나씩 풀어보려고 한다. 앞으로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아직은 정확히 정해지지 않은 어떤 프로젝트를 하는 이야기도 해 보려고 한다. 언젠가 자유노동자가 되고 싶어 하지만 현재는 회사에 소속된 회사원이라 회사 업무 외에 하는 프로젝트는 사이드 프로젝트(Side Project)지만, 내 인생의 메인 프로젝트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 프로젝트를 '논 사이드 프로젝트(Nonside Project)'라고 명명하기로 했다.

'논 사이드 프로젝트(Nonside Project)',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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