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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국변호사 Violett Dec 24. 2022

뭐 하러 그렇게 열심히 살아?

힘들어도 일과 공부를 병행하는 이유

뭐 하러 그렇게 열심히 살아, 피곤하게 산다, 그냥 놀아, 주말에라도 좀 쉬어. 주말에 공부한다고 했을 때 많이 들었던 말이다. 진심으로 나를 위한 말도 있었을 테지만 자신은 공부하기 싫고 남도 발전하지 않았으면 좋겠는 마음에 한 말도 있을지도 모른다.


나라고 쉬고 싶지 않았을까. 물론 밖에 나가서 의미 없는 대화를 하는 것보다는 책을 읽고 공부하며 새로운 지식을 얻을 때가 더 좋았던 적도 종종 있다. 그렇지만 평일 내내 일하다가 주말에 쉬지 못하고 공부하는 건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하고 싶어서 시작한 공부라 하더라도 막상 하다 보면 힘드니까 그만두고 싶고, 이렇게 공부한다고 무엇이 많이 달라질까 의구심이 들기도 하고,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 고생을 하나 싶은 마음이 번갈아가며 계속 드는 것이 공부하는 직장인의 마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일하면서 힘들게 공부까지 하냐고 묻는다면, 온전히 나를 위해서다. 회사를 다니다 보면 알면서도 외면하고 싶은 진실을 자각하게 된다. 회사는 오너의 소유라는 것, 회사언제까지나 다닐 없다는 것, 일에 대한 합당한 보상이 이루어지지 않을 있다는 것, 하고 싶지 않은 일도 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원하지 않는 사람들과 일하지 않을 없다는 것. 부정하고 싶은 진실은 공통되게 내가 통제할 없다는 점에서 시작되고, 통제 불가능의 근본적인 이유는 회사가 아니라 오너의 회사이기 때문일 것이다. 해결을 위해서는 근본적인 이유를 제거해야 할 테니 궁극적으로 내가 회사의 오너가 되어야 할 것인데 나에게는 사업 아이템이나 자금이나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없기 때문에 지금으로서는 회사를 다니면서 방법을 찾아야 했다.


언젠가는 회사의 이름을 빌리지 않고도 내 이름 석 자만으로 살아갈 수 있어야 하니 일단은 진짜 실력을 갖추어야 했다. 돈을 벌기 위해 어차피 해야 할 업무라면, 그 업무를 하기 위해서 지식이 필요하다면, 일을 위해 습득한 지식이 나의 커리어패스에도 도움이 되었으면 했다. 입사할 때부터 로열티 있는 직원은 아니었고 나의 의심 많은 성정상 회사만 믿고 가는 순진한 직원도 될 수 없었기 때문에 회사 업무를 위해 개인적인 시간을 내어 공부하는 것은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하여 부동산 공부를 하다 보니 공인중개사 자격증이 눈에 들어왔고, 미국법 공부를 해야 한다며 주위를 둘러보니 미국변호사 자격증을 따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자격증 공부를 하며 쌓은 지식을 실제로 업무에 활용할 수 있었는데, 그 외에도 공부의 효용은 생각보다 많았다. 공인중개사 실무는 하나도 모르고 자격증 하나 있었을 뿐인데 그 덕분에 이직을 하며 연봉을 높일 수 있었고, 미국 로펌에서 변호사 실무는 해 보지 못했지만 미국 변호사 자격증의 존재 덕분에 국제 법무 업무를 할 수 있었고 부서장 승진에도 어느 정도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공부 덕분에 이러한 물질적이고 가시적인 결과를 얻을 수 있었는데, 회사를 다니면서 공부를 하는 것은 정신적으로도 도움이 되기도 한다.


공부는 비교적 정직하다. 노력하면 어느 정도의 결과가 나올 가능성이 높다. 일을 많이 했다고, 회사의 매출 신장에 기여했다고 해서 회사에서 반드시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좋은 평가를 받는 것이나 승진하는 것은 노력만으로 되는 것은 아니니까. 상사 운과 동료 운, 부서 운도 있어야 하고 타이밍도 잘 맞아야 한다. 공부에는 나 외에 다른 사람이 존재하지 않는다. 나 자신과 지식뿐이다. 다른 동료들보다 나의 회사 생활이 유난히 힘든 것 같을 때, 나에겐 남들은 하나쯤은 있는 상사 운이나 동료 운이 없는 것 같을 때, 공부를 해서 결과를 냄으로써 성취감을 얻을 수 있었고 그 결과는 온전히 나의 노력으로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에 더 가치 있었다. 시험 운도 중요하다고 하지만 그것도 기본적인 지식이 쌓여야 운이 작용할 수 있을 것이다. 반면, 회사에서는 실력이 없어도 끌어주는 상사가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좋은 평가를 받거나 승진할 수 있으니, 공부가 비교적 정직하다고 생각한다.


공부하면 더 많은 기회가 펼쳐질 수 있다. 미국법 공부를 시작하기 전까진 영어는 내 인생에 없었고, 그로 인해 국제 법무 또는 해외 법무 업무는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직무의 범위에서 제외되었다. 외국계 회사도 영어로 일하지 못한다면 갈 수 없는 곳이었기 때문에 이직할 수 있는 회사의 범위에서 제외되었다. 그러나 미국법 공부를 통해 영어에 대한 거부감을 버리면서 이제는 외국계 회사도 근무할 수 있는 회사의 범위에 포함되었고, 쏟아져 나오는 변호사들로 가득 찬 국내 법무에만 업무를 한정하지 않을 수 있게 되었으며, 한국뿐만 아니라 외국으로까지 범위를 넓힐 수 있게 되었다.


미국 변호사라는 자격증을 취득하고 나서는 회사 외부에서 진행된 토론회에 패널로 참석하기도 했고, 외부 강의도 보기도 했다. 아마 미국 변호사란 자격증과 현재 다니고 있는 회사의 이름이 없었다면 기회를 얻기 어려웠을 같다. 나는 형식적인 타이틀보다는 진짜 실력이 당연히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사회에서는 여전히 타이틀과 스펙부터 보니까. 공부를 하면서 얻은 지식으로 업무 영역을 확장하다 보면, 앞으로 또 어떤 기회가 생길지 모르는 일이다. 회사에서 지시한 일만 하는 게 아니라 따로 공부를 하다 보면 당장은 사업 아이템이 떠오르지 않더라도 갑자기 영감을 받을 수도 있는 것이고. 언젠가 회사 이름 없이 내 이름만으로도 전문가로서의 나를 소개할 수 있을 것이고. 가만히 있으면 변하는 것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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