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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국변호사 Violett Jan 01. 2023

승진은 할 수 있을 때 해야 하니까

만년 대리일 줄 알았는데 

신입사원 때 임원이 목표라고 패기 있게 말하던 동기들이 있었는데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임원은 무슨, 대리부터 달아야지." 내 인생에 임원 되는 건 말도 안 되는 불가능한 목표였고, 과장이 되면 매일매일 감사하는 마음으로 회사를 다닐 거라 생각했고, 대리가 되면 기쁨보다는 다행이라는 마음만 들 것 같았다. 과장까지는 바라지도 않으니 막내 탈출만 시켜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몇 년 동안 막내 생활을 꾸역꾸역 해나갔다.


지금은 작지만 단단한 부서를 리드하는 부서장이 되었고 다음 주에는 인턴사원도 온다고 하니 인생은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말이 맞는 것 같다. "만들어가는"이라는 표현을 쓴 이유는, 그 회사에 계속 다녔다면 부서장은 될 수 없었을 것이고 인턴사원이 입사할 일도 없었을 것이며 과장 승진은 몇 차례 누락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그럼 어떻게 미래를 바꿀 수 있었을까. 불가능한 환경 자체를 바꾸면 된다. 승진 가능한 환경이 있는 조직으로 옮겨 가면 달라질 수 있으니까. 물론 무턱대고 이직한다고 다 되것은 아니니, 연공서열에 따라 승진을 시키거나 승진이 누락된 선배들이 있는 곳으로 이직하는 경우는 포함되지 않겠지만. 


몇 년을 다녀도 전 직장의 연공서열주의와 보수적인 조직문화는 도저히 바뀔 것 같지 않았다. 신입사원이 들어오지 않는 회사였고 역피라미드 조직이었기 때문에 젊은 직원들끼리 자조적으로 '노인정'이라 칭했었다. 좋은 고과는 승진대상자에게 몰아주었고 승진대상자가 아니라면 열심히 하더라도 좋은 고과를 받을 수 없는 구조였다. 선배를 먼저 승진시켜야 그다음 후배들을 하나씩 승진시킬 수 있다고 했다. 일할 의욕이 생기지 않았다. 열심히 해봤자 좋은 고과는 받을 수 없었고 몇 년째 막내 대리였기 때문에 내 앞에 승진해야 할 선배들이 줄을 서 있었으니 과장 승진은 요원했다.


절이 싫다면 중이 떠나야 하는 법. 결국 전 직장보다 젊은 조직으로 이직하게 되었는데, 새로운 회사에서 나의 경력은 적은 편이 아니었고 비교적 어린 편도 아니었다. 수평 문화를 '추구'하는 조직이라 후배의 개념은 아니었지만 나보다 경력이 적은 직원이 같은 팀에 있었고 다른 팀 사람들을 알게 되어도 친해지지 않으면 나이를 거의 묻지 않았다. 대학을 졸업할 당시엔 이른 나이에 취업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었는데 내가 있었던 우물이 좁았던 것인지 나와보니 내가 일찍 사회생활을 시작한 편이었다. 그리하여 경력 대비 나이가 비교적 적은 편이었는데 새로운 회사의 사람들은 나이를 묻지 않고 경력과 실력만 봐주니 나에겐 너무나 적합한 조직이었다.


다행히 새로운 회사에서는 전에 막내라고 도맡아서 했던 행정업무보다는 그렇게나 하고 싶었던 실질적인 본업의 비중이 더 컸고, 업무를 잘 해내면 중요한 업무를 배정받을 수 있어서 더 열심히 했다. 하나라도 더 리서치하고 조금이라도 더 고민했다. 다행히 새로운 조직의 장은 연공서열을 따지지 않는 분이셨다. 내가 어떤 프로젝트를 하고 싶다고 하면 가능한 한 도전하게 해 주셨고, 어떤 일을 잘 해내면 다음 일을 배정하실 때 그동안의 노력과 열정을 상당히 고려해 주셨다(고 생각한다).


전 직장에서 중요하지 않고 쓸모없었던 일도 새로운 회사에서는 중요하고 쓸모 있는 일이 될 수 있었고, 무엇보다 모든 일은 쓸모 있는 일이었다. 모든 일은 필요해서 하는 일이기 때문에 적어도 무가치한 일은 없었다. 이러한 문화에서 일을 하게 되니 현타가 아예 오지 않았다고 말할 수는 없더라도 확실히 '내가 지금 뭐 하고 있지?'라는 생각은 덜 하게 되었다. 하는 만큼 보상이 따르니 더 열심히 했고 젊은 사람들과 일을 하게 되니 마음 편하게 소통할 수 있었으며 과장을 조금 보태서 말하자면 날아다녔다.


물론 '또라이 질량 보존의 법칙'은 새로운 회사에서도 적용되었다. 하지만 전 직장에서 많은 또라이를 겪어 보았다면 여기선 그 수가 비교적 적었고 이미 또라이 대응에 몸과 마음이 어느 정도 단련되어 있었기 때문에 버텨낼 만했다. 힘들었던 사회초년생 시절을 무조건 좋지 않게만 볼 것도 아니었다. 첫 시작이 바닥이라면 웬만해서 바닥보다는 높아질 테니까. 


전보다 좋아진 환경에서 일하게 되니 일요일 저녁이 예전처럼 숨 막히는 시간이 아니게 되었고 일을 많이 하더라도 그 과정과 성과가 내 자산으로 쌓이기 때문에 힘들어도 전만큼 괴롭지는 않았다. 그렇게 일에 몰입하며 지내고 있었는데 어느샌가 다른 부서 동료들이 나에게 부서장이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말했다. 사실 부서장이 되기엔 회사에서 통상 요구하는 정도의 연차가 모자란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가능한 많이 배우고 역량을 쌓아야겠다는 마음뿐이었다. 처음 그런 얘기를 들었을 땐 "제가 무슨 벌써 리더예요. 저는 아직 그 정도 연차는 아니어서..."라고 답했는데, 같은 얘기를 각각 다른 사람들로부터 여러 번 듣다 보니 "나도...?"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즈음에 팀장님께서도 비슷한 말씀을 하셨다. 올해엔 내가 하는 일 말고도 시야를 넓히고 리더십 역량을 키워야 한다고 하셨다. 리더가 아닌데 벌써 리더십이 있어야 하냐고 물었더니, 리더가 되고 나서 시작하면 이미 늦기 때문에 리더가 되기 전부터 조금씩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주변의 얘기를 듣고 나서 나보다 먼저 사회생활을 시작한 여성 선배들의 글을 찾아서 읽어보았다. 그중 내 마음에 제일 와닿았던 문구가 있었다. 

"자기 자신에게 충분한 기회를 주자. 높은 자리까지 한 번 가보자고 독려하자. (중략) 필요한 일만 하다가 소진되지 말고, 티 나는 일도 욕심내고 성과를 널리 알리자. 무엇보다 능력보다 권력을 좋아하는 사람들만 높이 올라가도록 마냥 두고 보지는 말자. 그건 자기 자신을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뒤에 올 여성 후배들을 위해서 눈에 보이는 증거가 되는 일이기도 하다." p.60, <사랑한다고 말할 용기>, 황선우 
출장 가던 비행기에서 읽었던 글


권력과 명예만을 좋아하는 사람들만이 승진하도록 마냥 두고 보기 싫었다. 내가 승진하게 되면 권력을 좋아하는 사람이 승진할 자리가 하나 없어지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여성이든 남성이든 나와 함께 일하는 후배들을 위해서라도 먼저 길을 만들어 주고 싶었다. 내 직업을 밝힌 이상 조금 더 솔직하게 말하면, 한국 변호사가 아니더라도 법무팀 내에서 부서장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연차가 다른 팀원보다 낮더라도 실력으로 먼저 승진할 수 있다는 것을, 경영지원 조직 내에 여성 리더가 많아질 수 있다는 것을, 후배들에게 일종의 희망을 보여주고 싶었다. 승진 발표가 나고 나서 가장 좋았던 말은, 나보다 연차가 적은 동료들이 승진 축하한다며 멋있다고 해 준 말이었다. 난 그 말이 좋았다. 멋있다는 말. 


승진을 그 해에 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또 하나의 이유는, '승진은 할 수 있을 때 해야 한다'는 말 때문이었다. 나의 업무성과와 스타일을 잘 아는 상사와 회사가 나를 승진시켜 주실 수 있을 때엔 보다 수월하게 할 수 있을 것이지만, 내가 승진하고 싶어 하더라도 그때 계신 상사나 회사의 마음이 다르다면 내 힘으로는 승진할 수 없기 때문이다. 기회가 오면 잡아야 하는 것이고 언제나 기회가 오는 것이 아니니까. 해 보고 나서 나와 맞지 않는다면 그때 가서 마음을 바꿔도 될 일이었다. 그리고 막상 승진해 보니 나는 역시 막내보다는 리더가 잘 맞았다. 


몇 년 전만 해도 만년 막내일 것이라 생각했었고 막내 탈출했을 땐 친구와 파티까지 했었는데 벌써 함께 일할 수 있는 동료들이 생겼고 인턴사원도 배치되는 부서의 리더가 되었다. 얼마 전 외부 세미나에 갔다가 전 직장 동료를 우연히 마주치게 되었다. 업계가 좁으니 마주칠 법도 한데 신기하게도 그분이 내 뒷자리에 앉으셨고 내 목소리를 듣고 날 알아봤다. 날 예전 직급으로 호칭하길래 난 굳이, 먼저, 조금은 당당하게, 얘기했다. "저 이제 부서장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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