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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국변호사 Violett Jan 07. 2023

내가 컴플라이언스에 대해 말하고 싶은 이유

척박한 땅에서 컴플라이언스 키우기


미국 변호사인 나는 미국 로펌이 아닌 국내 기업에서, 국제 법무 전담이 아닌 '컴플라이언스'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물론 국제 법무도 담당하고 있지만 업무는 컴플라이언스 업무이다.


미국 변호사 자격증을 어렵게 따 놓고서 미국 법원에서 Objection! 을 외치는 송무 변호사가 되거나 미국 로펌에서 M&A 딜을 담당하는 변호사가 되지 않고, 아직도 컴플라이언스가 정착되지 않은 한국에서 사람들을 붙잡고 컴플라이언스의 중요성을 외치고 있는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현실적으로 당장 미국 로펌에서 일하는 것이 어렵기도 하지만, 현재 근무하고 있는 회사에서도 국제 법무를 경험할 있기도 하고 회사 내에 없는 플라이언스 담당자로서 다양한 새로운 사업이나 서비스가 론칭되는 것을 바로 옆에서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직은 컴플라이언스가 완전히 자리잡지 않은 환경이라 전형적인 컴플라이언스 업무를 따라 하지 않아도 되고, 나와 팀원들이 우리 회사만의 컴플라이언스를 새롭게 만들어가는 재미도 종종 다. 물론 무에서 유를 만들다 보니 예상하지 못한, 그리고 예상은 했지만 결국 피하지 못한 장애물에 자주 부딪히곤 하지만.

 

또 하나의 중요한 이유는, 국내 변호사 자격증은 없지만 법학을 전공한 사람들이 또는 법학을 전공하지는 않았지만 컴플라이언스 업무를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지금보다는 고민을 적게 하고 컴플라이언스 업무에 도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싶기 때문이다. 특히 보이지 않는 한계를 걱정하지 않고 언젠가 라이선스가 필수적으로 요구될까 불안해하지 않고 마음껏 업무에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싶다. 그리고, 라이선스가 없다고, 특정 전공이 아니라고 해서 누군가의 업무를 서포트만 하는 것이 아니고 컴플라이언스 분야에서 당당하게 메인으로 일할 수 있게 하고 싶다.


사실 이런 이유는 나와 함께 일하는 후배들을 위해서이기도 하고 어쩌면 나를 위해서이기도 하다. 불안해하지 않고 마음껏 역량을 펼쳐 컴플라이언스 분야에서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많은 사람들이 컴플라이언스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느껴야 한다. 그리고 컴플라이언스 전문가인지 여부는 라이선스의 유무에 따라, 스무 살에 선택한 전공에 따라 판단할 수는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도 있다. 이십 대에 얼마나 열심히 살았는지가 향후 직무의 한계를 정하는 것이 아니라, 삼십 대에도 사십 대에도 노력한다면 한계 없이 그 직무의 전문가로 나아갈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면 좋겠다.  



컴플라이언스 업무를 하다 보면 흔히 말하는 '현타'가 올 때가 종종 있다. 몇 가지 예를 들자면, 나 혼자만 컴플라이언스가 중요하다고 고래고래 소리치는 것 같을 때, 여러 번 말해도 직원들이 컴플라이언스 담당자의 말을 귀 기울여 듣지 않을 때, 그리고 제일 힘 빠질 땐, 컴플라이언스팀이 왜 필요해?라는 말을 듣게 될 때.


앞으로는 컴플라이언스 담당자들이 적어도 컴플라이언스팀이 왜 필요하냐는 말은 듣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이 이상해 보였으면 좋겠다. 재무팀이나 인사팀이 왜 필요하냐고 묻는 사람들은 많지 않을 것 같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재무팀이나 인사팀은 회사에 필수적으로 있어야 하는 조직이라고 생각할 텐데, 언젠가 컴플라이언스도 별다른 의문 없이 당연히 존재해야 하는 조직으로 자리 잡았으면 좋겠다. 돈을 벌어오는 조직이 아니라 돈을 쓰는 조직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결국엔 컴플라이언스가 돈을 벌어오는 조직이라는 것을 모두가 알았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을 가지게 되기까지 컴플라이언스 담당자인 나조차도 많은 생각과 고민을 했고, 선배와 후배와 워크숍을 하고 오랜 시간 동안 의견을 나누었다. 서로의 의견이 일치하지 않아서 큰 소리가 날 때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지치더라도 다시 만나서 함께 토론했다. 컴플라이언스 담당자조차 치열한 토론을 거쳐 확신을 가지게 되었으니, 컴플라이언스 부서가 아닌 사람들에게는 먼저 확신을 가지게 된 사람이 알려주면 조금 더 빨리 조금 더 쉽게 생각이 바뀔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회사에 아직 컴플라이언스 문화가 정착되지 않았다고 해서 포기하기는 이르다. 계속해서 컴플라이언스 업무를 하고 싶은데 회사라는 작은 공간에서도 사람들을 설득하지 못한다면, 회사 밖에 나가서 설득하는 것이 쉬울 리가 없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더 많은 컴플라이언스 전담 인력을 확보하고, 더 많은 예산을 가져온다면 그게 정말 의미 있는 일이 아닐까.


그러려면 결국 사람들의 생각이 변화해야 한다. 특히 리더십의 생각이 변화해야 한다. 그러나 리더십만 변화해서는 의미가 없다. 실제로 일하는 사람들은 실무자들이기 때문에, 결국 실무자들이 컴플라이언스의 중요성을 체감하고 컴플라이언스를 실천해야 한다. 다른 부서의 실무자들이 담당 업무의 컴플라이언스 리스크를 감소시키고 싶어서 컴플라이언스 부서에 스스로 찾아오게 해야 한다. 궁극적으로는, 가장 이상적인 건, 컴플라이언스 부서를 매번 찾지 않고 업무를 하면서 컴플라이언스를 당연하게 실천하고 있어야 한다. 평소 단언적인 어투를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적어도 컴플라이언스에 관해서는 이렇게 단언하고 싶다.


신입 또는 경력사원 대상으로 하는 컴플라이언스 교육에서 처음 시작할 때 하는 질문이 있다. "컴플라이언스에 대해 들어보신 분 있으세요?"라고 하면, 신입사원들은 거의 모르는 눈빛이고, 경력사원들 중에는 열 명 중 두세 명 정도 손을 든다. 언젠가는, 당연한 걸 왜 물어보냐는 눈빛으로 모두가 손을 들었으면 좋겠다.


지금보다 많은 사람들이 컴플라이언스를 알게 하고, 컴플라이언스 담당자들이 조금은 힘을 빼고 일할 수 있는 환경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어느 컴플라이언스 담당자의 고군분투기를 공유하고자 한다. 컴플라이언스 직무가 아니더라도 새로운 부서를 맡게 된 분들이나, 신사업 또는 신규 서비스를 론칭하려는 분들이 봐도 어느 정도 공감되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좋은 환경에서 쉽게 얻는 것은 재미가 없을 테니, 척박한 땅에서 컴플라이언스를 아주 조금씩 키워가는 얘기를 쓸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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