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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국변호사 Violett Dec 04. 2022

한국에서 미국 변호사 되기 - 시작

내 인생에 영어는 없을 줄 알았는데

미국 변호사라고 하면 어떤 사람들은 말한다. "와, (미국에) 살다 오셨어요? 영어 잘하시겠어요!"

처음 이런 질문을 받았을 때엔 '미국에 가 본 적 없는 미국 변호사'라는 사실을 밝힐지 말지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는데, 숨겨야 할 일도 아니고 오히려 미국에 가지 않고 한국에서 공부해도 미국 변호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기도 하다고 이제는 생각한다.


어렸을 때엔 영어를 좋아했다. 딱딱하고 지켜야 할 규정이 많았던 학교와는 달리 영어학원의 비교적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영어를 배우는 것이 재미있었다. 영어학원에 (놀러)다니는 것이 재밌어서 영어를 좋아하게 되었고 중학생 때까지만 해도 동시통역사가 꿈이었는데, 외국어 고등학교에 진학한 후 외국 거주 경험이 있는 친구들을 만나게 되며 그 꿈은 포기하게 되었다. 한국에서 아무리 공부를 해 보았자 외국에서 실제로 영어를 사용하며 배운 실력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물론 노력하면 가능하겠지만 그만큼의 노력을 할 자신이 없었다.)


외국어 고등학교 입시 준비할 때엔 대학교 어문계열 학과에 보다 수월하게 지원하고자 하는 목적도 있었지만, 영어로 먹고살지 않을 것이라 공표하며 법과대학에 입학했고 다행히 법학이 적성에 잘 맞았다. 그러나 아쉽게도 오랜 시간 동안 앉아서 공부하는 것은 잘 맞지 않았다. 당시에는 사법시험이 존재해서 거의 모든 법대생들이 사법시험을 공부했는데 나 역시 당연하게 정해진 궤도에 진입했다. 생각할 여지가 없는 것이었다. 사법시험 공부를 하지 않을 것이라면 법대에 갈 필요가 없었으니까. 하지만 중요한 사실을 간과했었다. 난 십여 년간 약간의 운과 요령과 노력으로 공부한 사람이었다는 점과 사법시험엔 요령 따위가 통할 리 없었다는 점을.


시험공부를 그만두고 취업 준비를 할 때엔 더 이상 공부를 하지 않을 것이라 공표했고 모 대기업 법무팀에 입사하게 되었다. 계속해서 영어로 먹고살지 않을 것이라 공표하며 국내 법무 부서를 지원했다. 회사에서의 고군분투기는 한 페이지에 도저히 쓸 수 없는 양이니 각설하고, 이직할 수 있을 만큼의 경력을 쌓았을 때 즈음 다가올 미래는 모른 채 한국 기업은 앞으로 절대 가지 않겠다고 공표하며 외국계 기업으로 이직했다.


살면서 많은 일들을 선언하고 다짐하고 공표하고 그것을 번복하겠지만, 단호하게 했던 공표가 무색하게 얼마 되지 않아 스스로 공표 내용에 반하는 행동을 하게 되었다. 첫 번째로 영어. 이직한 외국계 기업은 독일도 일본도 아닌 미국이 본사인 기업이었고 당연히 업무적으로 영어를 사용해야 했다. 입사 지원 시 직무기술서에는 영어는 분명 시니어 직급만 잘하면 된다고 적혀 있었는데 입사하고 나니 팀장님께서 본사와의 커뮤니케이션 업무를 담당하라고 하셨다. 두 번째로 공부. 법무팀원으로 일하려면 변호사가 아니더라도 한국법 지식이 있어야 해서 일을 하면서도 어느 정도 공부를 하긴 했었다. 그래도 대학 다닐 때 배웠던 지식의 연장선상이었다. 그런데 이번엔 미국법을 공부해야 했다. 본사가 미국에 있으니 당연히 미국법도 알아야 하는 것이긴 했다. 첫 번째와 두 번째를 합쳐보면 결국 나는 '영어'로 미국법을 '공부'해야 했다. 영어도 어려운데 법률영어를 알아야 했고 한국법도 어려운데 미국법도 이해해했다.


법무팀에 한 번이라도 소속되어 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알 것이다. 라이선스가 없다면 한계가 있다는 것을. 전 회사에서 변호사 자격증 없이 법무팀원으로 일하며 한계에 자주 부딪혀서 진로 고민을 하다 결국 일단 이직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미국 법률영어'가 높은 장벽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라이선스를 취득할 수 있는 이번 기회는 절대 포기하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장 진로를 변경하지 않을 것이라면 일단 도전이라도 한 번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여러 상황상 회사를 그만둘 수는 없었으므로 한국에서 미국법을 공부해서 미국 변호사 시험을 보기로 했다. 이렇게 이 년 반 동안 영어로 법을 공부하는 도전을 시작하게 되었다.


미국 변호사가 되고 싶어 하는 많은 직장인들이 여러 이유로 인해 나처럼 회사를 다니면서 한국에서 미국법 공부를 하게 된다. 물론 회사를 그만두고 미국에 유학 가서 공부하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그럴 수 없는 경우도 꽤나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유학 가지 않고 한국에서만 공부해서 어떻게 미국 로스쿨에 다닐 수 있었는지, 영어가 익숙하지 않았는데도 어떻게 미국 변호사 시험에 한 번에 합격할 수 있었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 보고자 한다. 직장인으로서 회사 일을 충실히 해내면서 어떻게 효율적으로 공부를 병행할 수 있는지 등등 미국 변호사가 되기까지의 지난한 과정 그리고 되고 난 후 현재의 삶에 대해서도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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