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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국변호사 Violett Jan 07. 2024

1n년차 직장인의 박사 되기 프로젝트

박사과정 진학을 결심한 이유


2022년 가을, 날이 좋았던 토요일, 석사 졸업 후 일식집에서 교수님과 점심을 먹고 있었다. 이미 박사학위를 보유했음에도 당시 다른 전공의 박사에 도전하고 계셨던 교수님은 나에게 아마 공부를 또 할 것 같다고 하셨다. 2022년 여름에 격무에 시달리며 미국 로스쿨 수업을 겨우 듣느라 매우 지쳐 있어서 당분간은 그럴 일이 없을 것 같다고, 본격적인 공부는 10년 안에는 하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본인도 미국 로스쿨을 졸업할 때 다시는 공부하지 않겠다고 했었다며 웃으셨다.


사실 당시에 나는 졸업생이었지만 업무에 필요하다는 이유로 타 전공 수업을 몇 과목 청강하고 있긴 했다. 그러나 자격증과 학위 취득이라는 대학원 진학의 명확한 목표를 달성하고 나니 더 이상 동기부여가 되지 않아 11월 말경에 자체 종강했다. 일 년 반 만에 자격증을 취득하고 이 년 반 만에 미국 로스쿨과 한국 대학원의 공동학위를 모두 취득하느라 나의 공부 에너지는 완전히 소진되어 있었다.


대학원 청강 기간까지 합하면 약 삼 년간 공부와 일에 매진했으니, 2023년에는 (아마도 인생 처음으로) 아무런 목표 없이 일과 공부를 제외한 모든 것들을 하기로 했다. 사람도 많이 만나고 새로운 분야에도 관심을 가져보고 배워보기로 했다. 학생 때와는 다르게 직장인의 인간관계란 나이가 들수록 좁아지기 마련이라, 먼저 기존의 인간관계를 새로운 관계로 확장시켜야 했다. 여러 직장인 커뮤니티에 용기를 내어 가 보았고 다행히 성향이 맞는 어느 커뮤니티에서 여러 가지 분야를 접하고 배울 수 있었다.


회사와 조직에 여전히 회의감이 있었던 때라 한창 창업과 프리랜서 같은 류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언젠가 창업가가 되기 위해 미리 알면 좋을 것들, 예를 들면 마케팅이라든가 세일즈 등등을 배우기 위해 클래스를 수강했다. 클래스 자체는 좋았지만 오히려 창업과 프리랜서 관련 분야를 알아볼수록 나와 맞지 않는 옷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 안에서의 아주 작디작은 조직을 리드하는 것도 이렇게나 힘든데, 큰 조직을 내가 리드할 수 있을까. 내가 만든 콘텐츠와 서비스를 과연 사람들이 관심이나 가져줄까. 돈을 내고 기꺼이 구매할 수 있는 나만의 콘텐츠가 과연 있을까. 무엇보다 법과 컴플라이언스 분야에서 유니크한 콘텐츠와 서비스를 만들어내는 것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모든 것은 핑계고 창업이나 프리랜서에 대한 열정보다는 현재에 안주하고 싶은 마음과 가지고 있는 것을 포기하지 못하는 마음이 더 컸다는 생각도 든다.




새로운 분야를 배우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서 교류하는 것과 몇 안 되는 친구들을 만나는 것을 모두 하고서도 시간이 남았다. 신입사원 때엔 그렇게 어렵고 막막했던 일도 1n년차가 되니 쉽고 지루해졌다. 다행히 나의 자극 추구 성향에 맞는 법무와 컴플라이언스 직무를 선택한 덕분에 끊임없이 새로운 이슈가 발생했다. 그럴 때면 아드레날린이 솟구치기도 하였으나 이슈를 해결하고 나면 도파민은 소멸되었고 그런 일상도 반복되다 보면 내성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에 더하여 회사에서는 최대한 연장근무를 줄이라고 했다. 이전에는 "야근해도 괜찮으니 성과를 더 내와, 기한 내에 이만큼 다 해야 해"라는 분위기였다면, 이제는 "야근하지 말고 적당히만 해"라는 분위기로 바뀌었다. 나처럼 일에서 성취감을 얻고 커리어를 발전시키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맞지 않는 분위기였다. 일개 근로자로서 사용자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행위란 없었으므로, 할 일을 다 하면 그 이상의 퀄리티를 포기하고 퇴근했다.


3년 동안 나의 평일 저녁 시간은 일, 공부 또는 일과 공부를 통해 만난 사람들과 함께였다. 나의 저녁시간을 차지하던 모든 것을 새로운 커뮤니티와 사람들, 넷플릭스, 유튜브와 (가끔) 가족이 대체했고, 허한 감정을 종종 느끼곤 했다. 사회가 말하는 일반적인 여가생활, 그리고 느슨한 연대로는 채워지지 않는 헛헛함과 외로움을 느낄 때마다 공부를 끝내고 집에 가며 느꼈던 충만감이 떠올랐다. 그러다가도 지금은 반드시 해야 할 공부가 없으니 지금처럼 자유롭고 편한 때가 없었다며 그 감정을 외면했다.




하지만 나는 생각보다 더 배움에서 얻는 성취감이 중요한 사람이었다. 그림이나 독일어같은, 일상에서는 써먹지 못하지만 왠지 멋있는 걸 배우는 것도 매우 좋아하는 사람이었는데, 요즘엔 삶에 필요한 실용적인 것을 공부로 채워나가는 것 또한 매우 즐기는 사람이었다. 과정이 힘들더라도 결국 해냈을 때 느끼는 그 감정은 만나기 어렵기 때문에 더 소중하다.


부정적으로 보면 성취 중독 또는 도파민 중독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 어떠한 챌린지를 마침내 극복했을 때 느끼는 그 성취감과 쾌감을 다시 느껴보고 싶었다. 나도 무엇인가 해냈다는, 그 크기가 비록 작더라도 "성공경험"을 계속하고 싶었다. 상대평가, 다면평가 등등 회사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제도와 사내정치가 난무하는, 그리고 근무기한이 짧게 정해진 회사에서 금전을 받고 지식노동을 하는 근로자로서, 커리어에 도움 되는 업무와 성공경험을 자주 한다는 건 현실적으로 쉽지도 않을뿐더러 근로계약의 목적에 부합하지도 않는 생각일 뿐이었다.


이상 실체 없는 회사에 의존하고 싶지 않았다. 평생 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무언가는 내가 지향하는 가치와 부합하고 이왕이면 사회적으로도 개인적으로도 의미 있는 일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배우면서 얻는 마음이 충만해지는 그 느낌 자체를 좋아한다. 회사에서의 일과 달리 공부 그 자체는 정직하다고 생각하는데, 운이나 사람에 좌우되지 않는 공부의 그 정직함을 사랑한다. 평생 책을 읽고 생각하고 그러면서 한 뼘씩 성장하고, 다른 사람과 생각을 공유하고 토론하는 일은 나에게는 즐겁고 의미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과정에서 고통과 어려움을 감내해야겠지만 말이다. 물론 아직 제대로 연구라는 걸 해 본 적도 없는 직장인으로서 가보지 못한 길에 대한 환상이 많이 섞인 관점이지만.


지금이 타이밍이기도 하다. 마침 회사에서의 일이 익숙해지기도 했고, 덕분에 저녁 시간을 자유롭게 쓸 수 있게 되었고, 아직 팀장은 아니니까 업무 외 시간에 회사에 덜 얽매일 수 있고, 회사생활을 하며 마주했던 감정을 승화시켜 연구해보고 싶은 주제도 생겼고, 어떠한 분야를 연구해서 언젠가는 사회를 바꾸고 싶다라는 거창한 목표의식도 생겼고.


아직 한 번도 속한 적 없는 세계의 현실은 외부에서 보는 환상과는 분명 다르겠지만, 그래도 그 곳의 중심은 정직한 공부이기를 바라고 있다. 이상과 현실이 다르다 하더라도 학교에서 배우는 학문은 계속해서 내 인생에 자양분이 될 것이고 태생적 불안감을 다독여주는 안정제가 될 수 있을 거라는 바람과 확신이 있다. 학교에 가게 되면 분명 수많은 챌린지들을 마주하게 될 것이고 그걸 극복하는 과정에서 많은 고통과 인내가 필요하겠지만 그러한 과정 또한 충분히 즐기고 싶다. 그리고 그 과정을 잊지 않기 위해 틈틈이 기록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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