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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뱅이 Feb 04. 2021

중력 문제와 약점

몸이 열개면 좋겠어요.



나는 (혼자만) 이틀에 걸쳐 커리어가 되는 글쓰기는 어떤 것인지에 대해 고민해 보았다. 내가 내린 결론은 공감을 얻고 도움을 줄 수 있는 글이 커리어가 되는 글이라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공감을 얻고 도움을 줄 수 있는 글은 어떻게 써야 할까?


내 안의 이야기를 끄집어냈을 때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게 하려면? 그런 사람들을 찾아가 내 글을 보여줘야 하나? 그것도 물론 중요할 것이다. 예컨대 요리 철학을 글로 쓴다면 이는 패션 잡지에 연재하는 것보다 요리 잡지에 연재하는 편이 공감하는 독자를 훨씬 많이 만날 수 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건 두 번째 문제다. 연재처를 찾기 전에 먼저 그 글을 잡지에 실을 수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그 글은 잡지를 만드는 편집자가 독자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글이어야 한다. 편집자의 판단 기준은 모두 다르겠지만 그것은 차치하고 그 글은 기본적으로 읽을만해야 하고, 나만의 스토리가 있는 글이어야 한다.


나만의 스토리가 있는 글. 흔하고 뻔한 이야기는 여기에 속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흔하고 뻔한 30대 아줌마에 불과한 걸? 아니 흔하고 뻔하지만 그 안에서 나만의 이야기를 찾으면 된다. 얼마 전 퍼스널 브랜딩 강의에서 니쉬다운(Niche down)이라는 용어를 들었다. 니쉬는 틈새를 뜻하는데 이 틈새를 줄여서 자신만의 이야기를 찾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내가 '남매를 키우는 엄마'라는 소재로 글을 쓴다면 이건 너무 광범위하고 흔한 소재가 된다. 하지만 이걸 니쉬다운 하면 '초등 남매를 키우는 엄마'로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이것도 진부하다. 여기서 틈새를 더 좁혀 보면 '초등 남매를 키우는 달리기 하는 엄마'로 만들 수 있다. 이 정도면 아주 흔한 이야기는 아닐 수 있을 것 같다. 이걸 해쉬태그로 바꾼다면 나는 #달리기 하는 엄마 또는 #달리기 하는 남매 맘 정도로 만들 수 있겠다.


이렇게 니쉬를 좁혀가는 과정을 좀 더 디테일하게 들여다보자. 내가 갖고 있는 소재들 중에는 흔한 것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다. 아주 특이한 점만 부각한다면 독자와 너무 동떨어져 공감을 이끌어내기 어려울 수 있지만 흔한 것과 그렇지 않은 소재들을 잘 조합한다면 충분히 괜찮은 소재가 만들어질 것이다.


그러면 이렇게 소재를 조합하기에 앞서 내가 갖고 있는 소재는 무엇이 있는지 먼저 찾아보자. 글쓰기 훈련소의 과정에는 내 소재를 발굴하는 과정이 며칠 이어진다고 했고 이번 미션은 내게 장애물이 되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질문이다. 나의 수많은 소재 중에 내게 장애물이 되는 것은 무엇이 있을까?




당신이 가진 장애물은 무엇인가요?   

먼저 내가 가진 장애물에는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중력 문제'와 내가 인식하고 관리해야 하는 '약점'이 있다. 중력 문제란 개인이 어찌할 수 없는 문제를 말한다. 지구의 중심에서 끌어당기는 이 힘은 인간의 힘으로 도무지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내가 갖고 있는 중력 문제는 어떤 것이 있을까?


중력 1. 엄마 사람

나는 엄마 경력 10년 차다. 올해로 10살이 되는 아들과 8살이 되는 딸아이를 키우고 있다. 아이들이 자람에 따라 나도 엄마로서의 역할이 함께 자라고 있다. 간장종지 같은 내 그릇은 아주 조금 넓어졌을 것이고(부디 그러길 바라는데 혼자만의 착각일 수도) 갓난쟁이 아이를 기를 때와는 또 다른 엄마의 역할을 하고 있다. 엄마라는 나의 역할은 내가 바꾸거나 이겨 낼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무슨 수를 써도 나는 두 남매를 키우는 엄마라는 이름에서 벗어 날 수 없다. 나 돌아갈래 하고 소리쳐도 바뀌는 것은 없다. 설령 가정을 깨트리는 일이 생겨난다 해도 내가 두 남매의 엄마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중력 2. 여자 사람

나는 엄마가 되기 전까지는 내 성별이 내 인생을 좌우할 수 없다고 믿었다. 성별이란 그저 생물학 적 특성 일 뿐 각각의 특성을 지닌 개인이 성별과 관련 없이 누구나 자기의 능력과 성취를 맛보며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대단한 착각이다. 나는 이미 사회에서 정한 루틴(?)대로 (아니 그 루틴을 벗어나 보려고) 그 보다 좀 더 빨리 결혼을 하고 엄마가 되었다. 그 과정 속에서 너무나도 당연하게 사회로부터 멀어졌고 육아에 빠져 들었고 아이를 사랑해 마지않는 엄마가 되었다. 내가 엄마가 되기 이전의 생각대로 내 능력과 성취를 맛보며 살아가려면 성별과 상관있게 내 일을 사수하고, 내 시간을 쟁취하고, 내 일과 아이를 지키면서 살아가야 했다. 하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고 사회로부터 억만광년 떨어진 어느 행성에 떨어져 아이들을 끌어안고 헤매다가 이제야 나만의 길을 찾아가는 중이다. 이렇게 쓰고 보니 두 번째 중력 문제도 결국 같은 이야기가 된다.


내가 겪는 중력 문제는 내가 여자라는 사실과 엄마가 되었다는 것이고 이 사실 자체를 바꾸려는 시도는 무의미하다. 하지만 엄마라는 역할에만 매이거나 오로지 아이만 바라보며 아이의 양육이 내 역할의 전부가 되지 않게 하는 것은 할 수 있다. 의식적으로 아이와 나를 분리하고 나로 살아가는 시간을 만들 수 있다. 아이가 어릴 때는 그것이 한없이 어렵고 끝나지 않을 숙제처럼 느껴졌지만 이제는 내 시간을 만들 여유가 생겼고 그 안에서 나로서 살아가는 요령도 터득했다.




그렇다면 내가 인정하고 관리해야 하는 약점은 무엇이 있을까? 약점은 고치거나 개선하고 극복해 강점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나의 약점이 무엇인지 알고 인정하면서 잘 돌봐야 한다. 약점을 가진 나도 나고, 강점을 가진 나도 나니까 말이다.


약점 1. 시간관리 능력이 부족하다?

'시간이 부족해. 역할이 너무 많아. 몸이 열 개면 좋겠어. 일만 하고 싶어. 애들이랑 살 부비며 집에만 있고 싶어. 저녁은 또 뭘 해주지? 사무실 가야 하는데 또 휴교야? 악 망할 코로나!...' 너무 자연스럽게 내 머릿속에서 흘러가는 생각들이다. 당장 피부로 느끼는 문제들. 이 문제들은 내가 엄마라서 생기는 중력 문제를 안고 있다. 그 안에서 중력 문제를 걷어내면 약점이 드러난다. 나는 나에게 주어진 역할에 비해 시간관리 능력이 약하다. 이걸 잘하는 엄마 사람들은 커리어도 쌓고 아이들도 잘 키우는 그런 워킹맘 슈퍼맘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시간관리 능력이 부족한 것을 약점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타고나는 것인가? 이것을 나는 배워서 적용하면 바꿀 수 있는 것일까? 성공하는 사람들의 필수요소는 시간관리 능력이라고 말한다. 그런 점에서 이것은 약점이라고 할 수 없다. 약점은 고치면 현상유지이지 성공하는 것이 아니니까 만약 시간관리 능력을 기를 수 있는 기술이라고 한다면 이것은 약점이 아니다. 그렇다면 중력 문제를 걷어내고 드러난 내 약점은 무엇이 있을까? 


약점 2. 집중력이 약하다.

집중력이 약한 것은 내가 시간관리를 못하는 이유 중 하나로 생각해볼 수 있다. 그리고 집중력을 기를 수 있는 수많은 방법들이 존재하고 환경 설정으로 어느 정도 이끌어 낼 수는 있지만 시간관리처럼 어떤 툴을 이용해 능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나는 내가 성인 ADHD가 있다고 짐작하고 있다. 작년 여름 즈음에 어느 분의 라이브에서 이야기를 듣고 너무 내 이야기 같다고 생각했고, 정신과 병원에서 진단을 받는다는 것이 두려워 차일피일 미루다가 해를 넘겼다. 진단을 받는다는 것이 두렵기도 하지만 득실을 따져 먹어야 할 약도 두렵다. 하지만 성인 ADHD를 겪는 이들의 경험을 접하며 나는 거의 확신하고 있다. 이것이 나의 약점임을 인지 하기 위해서는 더 이상 미루지 않고 진단을 받아봐야 하는 일이다.


나에게 주어지는 수많은 역할들이 나를 이렇게 만든 것이 아니라 내 뇌 속에서 벌어지는 일 때문에 누구나 가지는 여러 역할들에 힘겨워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ADHD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부터는 한 가지 일에 집중하지 않고 마음대로 멀티태스킹을 하거나, 이일 저일 오락가락하면서 시간을 흘려보내지는 않는다. 여전히 여러 가지 일을 벌여 놓고 끝맺지 못한 일들이 많기는 하지만 그대로 내버려 두고 그것에 매몰되어 아무것도 하지 않는 때와는 조금 달라졌다.  


이 장애물로 나는 어떤 글을 풀어나갈 수 있을까? 우선 더 이상 미루지 말고 병원부터 가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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