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휴, 골프장 말고 어플~
나는 오늘 종일 클럽하우스에 빠져서 살았다. 신기하고 낯선데 흥미롭고 유익했다. 흔히 만나지 못하는 사람들과 섞여서 이야기를 주고받는다는 것이 너무 신선했다. 클럽하우스는 오디오를 기반으로 하는 SNS이다. 글이나 영상, 사진이 아닌 오로지 목소리를 통해서만 소통하고 이것은 저장되거나 남길 수 가 없다.
얼마 전부터 인스타그램에 클럽하우스가 신기하다며 베이지색 프로필 화면을 캡처해 올리는 피드가 자주 보이기 시작했다. 처음엔 이게 뭐지 하고 지나쳤는데 갈수록 많은 사람들이 그런 피드를 올리기 시작했고 결정적으로 내가 서로 다른 경로로 알고 있던 분들이 클럽하우스의 같은 방에서 처음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는 피드를 봤다. '이거 뭔데 유명한 사람은 다하는 거지?' 나는 강하게 호기심이 일었고 구글링을 시작했다.
클럽하우스:
- 실로콘 밸리의 두 개발자(?)가 만들었다. (창업가인 폴 데이비슨과 구글 출신인 로언 세스)
- 음성 기반 SNS로 오로지 오디오를 통해서만 소통한다.
- 음성으로 나누는 콘텐츠는 저장하거나 남길 수가 없다. 그 시간에만 존재하는 콘텐츠들이 목소리를 통해 전달된다. (나는 이 부분이 너무 신선했다. 콘텐츠에 휘발성을 부여한 것이다!)
- 처음에는 실리콘 밸리에서 기업가들 사이에 유행하다가 엘론 머스크, 마크 주커버그 등이 애용한다고 해서 이슈가 되었고, 얼마 전부터 한국의 유명 기업인들(*김봉진, 김슬아 등)을 필두로 빠르게 퍼져나가고 있다.
*김봉진 전 배달의 민족 대표, 김슬아 마켓 컬리 대표
- 아직 한국에 정식 출시된 어플이 아니어서 모든 안내가 영어로 되어있다.
- 베타 버전으로 출시한 상태라 아이폰 유져만이 사용 가능하다.
- 어플의 사용자는 초대장을 받아야만 이용할 수 있는데 이 역시 베타 버전이라 그러하다.
- 초대받아 들어가면 내 프로필 하단에 나를 초대한 사람이 Nominated by 누구누구하고 표시된다. (이것도 정말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했다. 초대한 이는 나를 보증하는 것이고, 그 신뢰를 매개로 더 신중하게 행동하도록 만든 것 같았다.)
- 모든 대화는 '방'에서 이루어지며 방을 만든 모더레이터(moderator:사회자, 중재자)가 있고 그 방에 사람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눈다. (오~래전 나우누리에서 채팅방을 만드는 그 방장 같은 느낌?)
- 방에 모인 사람들은 스피커(speaker)와 리스너(Listener)로 나뉘고 리스너가 손을 들어 요청하면 모더레이터가 스피커로 수락해줄 수 있다. 혹은 모더레이터가 리스너에게 스피커가 되어달라고 요청할 수 도 있다.
처음 클럽하우스에 가입하면 환영인사와 함께 사용법이 담긴 노션의 링크가 알림으로 온다. 거기에는 여러 사용법 가운데 에티켓 파트에 Don't Fanboy/ Fangirl. 이라는 문구가 나오는데 이는 클럽하우스의 방향성을 보여줄 수 있는 말이었다. 모든 사람이 동등한 입장에서 서로를 대하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진정한 대화를 추구할 때 진정한 소통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내가 오늘 하루 사용해본 소감도 그랬다. 모두가 계급장 떼고 만나는 느낌. 유명한 인플루언서도 처음 보는 사람도 너무 편하고 쉽게 소통할 수 있었고, 그러다 보니 만날 일 없었던 해외 각국에 있는 사람과도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한참 구글링을 하다가 어느 인터뷰를 찾았는데 거기서 앱을 개발한 이유에 대해 "글을 올리며 타인과 교류하는 대신, 앱을 통해 실제로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는 더 인간적인 소셜미디어 경험을 제공하고 싶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인간적인 소셜미디어 경험. 정말 그랬다. 코로나 이후 요즘 정말 만나는 사람이라고는 아이들과 남편밖에 없는 나에게 타인과의 대화를 하게 하는 이 소셜 미디어는 정말 나에게 인간적인 경험을 선사해 주었다.
이 어플이 실리콘 벨리의 거대 투자자의 투자를 받았다는 기사도 있고, 몇 주 만에 한국의 유명인들을 끌어 모으고 있어 이슈가 되는 기사도 많다. 또 클럽하우스의 초대장이 당근 마켓에서 거래 되기도 한다. 지금 핫하게 뜨고 있는 '클럽하우스'가 반짝하고 떠올랐다가 사라질 것인지 지금의 소셜미디어 시장을 뒤집을 것인지 의견이 분분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지금까지와는 확실히 다른 새로운 시도라는 것. 이 새로운 시도가 어떤 파장을 일으킬지 궁금하다.
추신: 오늘의 글은 원래 나의 지적 관심사를 나타내는 키워드를 찾기 위해 내가 나눌 수 있는 지식이 무엇인지에 대해 쓰는 것이었다. 내가 나눌 수 있는 지식은 새로운 것을 경험할 때 쓰는 나의 방법으로 구글링과 깊이 들어가는 디깅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런데 나는 약 24시간의 강렬한 클럽하우스의 경험으로 내 모든 시간을 삼켜버려서 오늘의 질문에 답을 찾으며 글을 쓰다가 깊은 삼천포로 빠져 버렸다. 곧 휴식일이 찾아오면 나의 지적 관심사를 나타내는 는 키워드에 대해 다시 글을 써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