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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뱅이 May 02. 2023

2023코리아 50K

나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나를 성장하게 한다


누군가 저에게 트레일 러닝을 하면서 가장 재미있는 것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저는 주저 없이 대회에 참여하는 것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각 지역, 각 계절마다 펼쳐지는 수많은 레이스는 우리 러너들에게는 축제입니다. 같은 목적지를 향해 각자의 기량을 펼치고, 수많은 러너들과 교류할 수 있는 레이스는 정말 그야말로 축제입니다.


하지만 축제라고 하여 신나게 웃고 먹고 떠들 수 있는 축제는 아니지요. 매년 트레일 러닝 대회의 포문을 열어온 코리아 50K의 동두천, 포천 일대는 강원남도라고 불릴 만큼 험난한 산 길이었고, 그 산 길을 겨울 동안 준비하고 갈고닦은 실력으로 달리는 것은 트레일 러너로서의 실력을 검증하는 자리이기도 했습니다. 


저는 트레일 러닝을 시작한 지 이제 1년. 그간 조금씩 쌓아온 자신감과 노력들 그리고 조금은 무모하리 만치 부족한 실력이지만 스스로를 검증해 보고 싶은 마음으로 '코리아 50K' 도전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번 도전을 통해 저는 저를 성장하게 해준 3가지 교훈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첫째, 훈련의 중요성. 둘째, 동료의 중요성. 셋 째, 마인드 셋의 중요성입니다.






첫째. 훈련의 중요성

지난 1월 대회를 신청해두고는 무슨 훈련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책을 뒤져보고 유튜브를 찾아봐도 혼자 장거리 훈련을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제가 소속된 트레일러닝 클럽에서 많은 조언과 도움을 받으며 가까스로 거리와 고도를 늘려갈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어리바리 어쩔 줄 모르는 초보자를 밀고 끌며 훈련 시켜주신 많은 분들이 없었다면 감히 50km라는 거리는 언감생심 도전해 볼 생각도 못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훈련이란 자고로 자신의 실력이 어느 수준인지 아는 것에서 시작해야 하는 법이지요. 뱁새가 황새 따라가다가 가랑이 찢어지는 수가 있으니 언제나 제 몸 상태나 제 수준을 가늠하고 살펴 가며 단련 시켜야 했습니다. 


제가 꽤나 신뢰하는 분의 조언도 언제나 제게 피와 살이 되는 지식이긴 했지만 저와는 다른 차원에 계신(철인이면서 스파르탄레이스 챔피언) 그분과 같은 방식으로 훈련했다가는 살아남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래도 발끝이라도 따라가려 노력했던 것이 허사는 아니었던지 이번 레이스에 참가하며 제법 효과를 발휘했던 것 같습니다.


오르막에서는 보폭을 줄이고 리듬감 있게 올라가며 호흡과 발걸음을 맞추려 애썼고, 상체와 하체의 협응에 대한 이야기를 떠올리며 팔의 움직임이 흉근과 코어근육을 타고 다리를 도울 수 있게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사실 이런 일련의 과정은 자연스럽게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지만 그러기에는 그 연습과 훈련의 양이 너무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알고 의식적으로 노력했으니 초보자로써는 최선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앞으로 계속 의식적으로 연습하며 몸에 자연스럽게 익어 무의식적으로 움직임이 나올 수 있도록 연습을 계속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산길을 달리는 훈련과 별개로 근력을 보강하는 훈련을 훨씬 더 비중 있게 했어야 했다는 것을 이번 대회에서 뼈저리게 깨달았습니다. 비가 예보되어 있어 발이 젖어서 불고 아프면 어쩌나, 몸이 젖어서 체온이 떨어지면 어쩌나 하며 걱정했지만 그것은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높은 습도와 쏟아지는 빗방울로 머드축제를 방불케하는 진흙탕 내리막길은 제가 살면서 만난 길 중에 가장 험난한 길이었습니다.


제 눈앞에서 끊임없이 미끄러지고 넘어지고 다치는 선수들을 보면서 미끄러운 진흙 위에 발을 내디디며 넘어지지 않으려 안간힘을 써야 했습니다. 그리고 어떤 길에서는 진흙탕을 피해 주로가 아닌 숲길을 해치며 가파른 내리막을 내려가야 하기도 했습니다. 


끊임없는 긴장 속에서 햄스트링은 슬슬 압박을 받기 시작했고 2CP(22km)쯤에서는 쥐가 날 것같은 느낌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다행히 끝까지 쥐가 나지는 않았지만 쥐가 날것 같은 느낌을 안고 피니시 라인에 들어왔을 때는 더이상 발걸음을 내디딜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이제는 대회를 앞두고 훈련을 한다면 근력 강화를 위한 보강 훈련을 꼭 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12시간 22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0.5% 정도 알 수 있는 신발 상태



둘째. 동료의 중요성

저에게는 트레일 러닝 클럽에서 만나 친해져서 자주 함께 달리는 언니가 있습니다. 서로 코드가 잘 맞아 친하게 지냈고, 이번 대회를 함께 신청하고 대회 날짜를 손꼽아 기다리며 훈련을 하던 중 그 언니가 다치는 일이 생겼습니다. 부상은 생각보다 심각했고, 산악구조대가 출동하고 구급차에 실려 가 수술과 입원을 해야 했습니다. 


함께 훈련하던 동료의 부상을 목격하는 것은 꽤나 큰 트라우마를 남기는 일이었습니다. 대회를 일주일 남겨둔 시점에서 발생한 그 사건은 제 마음은 너무 흔들리게 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몫까지 내가 해내야겠구나 하는 다짐을 하게 하기도 했습니다.


메이트를 잃고 혼자 달리는 레이스가 겁나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혼자 참가하는 건 아니니까, 함께 가는 클럽의 멤버 누구에게든 붙어서 쫓아가자 생각을 하며 출발을 했습니다. 다행히 함께 참가한 클럽의 한 분과 발걸음이 맞아 모든 CP를 함께 통과했고, 마지막에는 또 다른 분을 만나진 흙탕길에 대한 불만을 뱉고 웃고 떠들고 응원하며 에너지를 끌어올릴 수 있었습니다. 


사실 저는 각 CP(Check Point)에 정해진 컷오프(Cut Off Time)에 걸리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있었지만 제 마음 한편에는 컷오프에 걸려도 스스로 포기하는 DNF(Do Not Finish)보다는 낫다는 생각도 있었습니다.그러나 함께 달리며 이야기를 나누던 중 듣게 된 한 마디가 제 마음을 고쳐먹게 했습니다. 


"내 이마이 고생하고 컷오프 당하면 억울해서 못 살지 싶다."

 '... 아..!' 


질척질척한 산길에서 쉼 없이 발을 움직이며 듣는 그의 그 한 마디가 너무 공감되었습니다. 이 진흙탕에서 이 개고생을 하고 피니시 라인을 통과 못하다니! 내년의 다시 기회가 온다고 해도 진흙탕의 고생은 보상될 것 같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조금 더 힘을 냈고, 그래서 무거운 다리를 한 번 더 들어 올리며 리듬감에 좀 더 집중하려 노력할 수 있었습니다.


운동을 하며 높은 심박을 유지하는 활동에 함께 참여하는 동료의 한 마디 한 마디는 그냥 소파에 앉아서 듣는 누군가의 한 마디와는 차원이 다른 울림과 공감을 이끌어 냅니다. 그래서 이제껏 여럿이 함께 달리며 서로에게 던지는 짧은 응원이 어떻게 내 안에 에너지를 들끓게 했던 것인지, 온몸을 관통하는 이 감각이 그동안 어떻게 그 많은 사람들을 주말 새벽마다 모여들게 했는지 절절하게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그분의 그 한마디가 아니었다면, 함께 CP를 통과하며 달려준 분이 아니었다면, 다친 언니의 몫까지 해내겠다는 다짐이 아니었다면 저는 느려지는 발걸음을 이기지 못하고 컷오프에 걸렸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이 운동을 함께 해나가는 동료가 있다는 것이 너무 감사하고 감격스러웠습니다.


 골인 후 레이스의 마지막을 함께한 두분과 같이 찍힌 유일한 사진. 셋이 같이 승리의 포즈로 찍었어야 했는데 너무 아쉽다.


셋 째. 마인드 셋의 중요성

앞서 말했던 것처럼 저에게는 스스로 포기하는 것이 가장 두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또 다른 제 마음 한편에는 평생을 해나갈 이 운동을 하면서 이번 한 번의 대회에 몸을 갈아 넣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습니다.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해내겠다는 마음과 내 몸을 갈아 넣지 않아야 한다는 상충되는 마음은 양날의 검이 되어 저를 혼란스럽게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사실 알고 있었습니다. 이 양날의 검을 제대로 통제하기 위해서는 철저한 훈련이 답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그러나 이미 시간을 흘러갔고, 대회 날 아침에 그런 딜레마를 떠올려봤자 해결되는 것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스타트 라인에 서서 혼자 마음에 새긴 문장이 있었습니다. '나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나를 성장하게 한다'라는 니체의 말이었습니다. 물론 부상을 입어도 안 죽었으니 되었다는 뜻은 아니었습니다. 


달리다가 너무 힘들어서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려고 할 때 이 경험이 내 인생을 더 풍부하게 해줄 것이라고, 내가 이 짓을 왜 하고 있나 생각이 들 때 또 하나의 레전드 레이스로 남을 것이라고 그리고 이 고비를 넘길 때마다 앞으로 펼쳐질 내 인생의 고비도 잘 넘을 수 있게 될 것이라고. 그런 의미로 그 문장을 곱씹었습니다.


출발 전 긴장과 걱정과 흥분이 뒤섞여있던 왼쪽 사진 , 완주 후 해냈다는 성취감과 지나온 고생길이 떠올라 감격했던 중간과 오른쪽 사진




저에게 이번 대회가 첫 대회는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제대로된 진짜 트레일 러닝 대회의 맛을 조금 봤다고 해야 할까요? 마치 이제서야 트레일 러닝이 어떤 것인지 조금 알게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대회를 신청하고 훈련을 하고 피니시라인을 통과 하기까지 너무나 많은 이들의 관심과 도움이 있었기에 제가 완주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너무나 감사한 일입니다. 앞으로 더 즐겁게 신나게 달리는 트레일 러너가 되어야겠다 다짐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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