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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욱 Feb 27. 2019

한파주의보


한파주의보가 내린 날에 엄마가 꼭 하는 것이 있다. 엄마는 작은 전 가게를 한다. 새벽 2시. 환풍기와 밸브를 확인한 후 싱크대로 걸어간다. 수도꼭지를 한 손으로 꼭 쥔다. 물이 나오는 꼭지 부분을 주시하며 손잡이를 서서히 돌린다. 똑-. 물이 한 방울 떨어진다. 똑-. 물은 천천히 그리고 꾸준히 떨어져야 한다. 물을 줄줄 틀어놓으면 낭비이고, 반대로 아예 나오지 않으면 수도관이 얼어붙어 내일 장사를 못 할 것이다.


내가 가게에 간 날은 낮 기온이 영하 14도를 맴돌 만큼 추웠다. 가게 안에 엄마가 없었다. 잠시 뒤, 엄마가 물이 가득 채워진 붉은 대야를 들고 가게로 들어왔다. 한파로 수도관이 얼었다고 한다. 엄마는 다른 건물에서 물을 퍼다 나르는 중이었다. 일요일이라 수도관을 뚫을 사람도 못 부르고, 장사는 해야겠다는 것이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란 생각에 짜증이 났다. 오늘 장사는 접고 집에 가는 게 어떻냐고 물었다. 엄마는 됐다고 얼른 가라며 다른 대야를 들고 가게 밖으로 나갔다.


대야를 들고 낑낑대는 엄마 옆에서 물 틀고 오는 걸 왜 잊어버렸냐고 잔소리를 퍼부어댔다. 문을 닫고 집에 가자고 계속 설득했다. 엄마는 안 된다며, 가게를 갑자기 쉬는 건 손님과의 약속을 어기는 거란다. 실은 한 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서다. 엄마는 물이 나오지 않는 수도꼭지를 다시 돌려보더니 한숨을 쉰다. "어휴. 남자가 없으니까.” 남자가 있으면 수도관 얼음 따위는 금새 뚫어줬을 거라고 믿는 엄마였다. 결국 나의 짜증이 터졌다. “엄마, 나도 남자야.” 남자라고 다 수도관 뚫을 줄 알면 배관공들은 뭐 먹고 사냐고 짜증을 내며 가게를 나왔다.


남자가 없으니까. 이 말은 엄마가 힘들 때 자주 하는 말이자, 내가 가장 싫어하는 말이다. 아버지와 이혼 후, 엄마는 20년 넘게 식당 일을 하며 자식 셋을 키웠다. 내가 이 말을 싫어하는 이유는 남자가 없어서 힘들었던 엄마의 삶을 직접 보며 자랐기 때문이다. 엄마의 눈앞에 펼쳐진 세상은 부정할 수 없는 남자의 역할이 존재했다. 술 먹은 진상부터 시작해, 동네에 갈등이 생길 때도 남편 없는 엄마는 무시당했다. 이것은 어릴 적 나에게도 스트레스였다. 새파랗게 어린 내가 아버지의 역할을 흉내 내봤자 소용없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엄마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이라곤 흔들리지 않고 더 단단히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것뿐이었다.


결국 그날 엄마는 옆 건물 물로 장사를 마쳤다. 몇 번이나 더 그 붉은 대야를 옮겼을까. 나는 약속을 마치고 마감을 도우러 가게에 갔다. 낮에 짜증 낸 게 멋쩍어서 별말 없이 일을 도왔다. 마감 청소를 마쳤다. 엄마는 오늘도 환풍기와 밸브를 확인하고 싱크대로 걸어갔다. 엄마에게 말을 걸었다. “근데 신기하다. 어떻게 한 방울씩 나온다고 수도관이 안 얼 수가 있지? 그렇게 조금씩 나오면 안 나오는 거나 마찬가지 아닌가.” 엄마는 태연하게 대답했다. “아주 조금이라도 계속 흐르면 안 어는 거야.”


한 방울씩이라도 꾸준히 흐르면 매서운 한파를 이겨내는 것이다. 왠지 어려움 속에서도 묵묵히 버텨온 엄마의 삶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는 자신의 삶에 한파가 들이닥칠 때면 수도꼭지를 잡고 물을 한 방울씩 떨어트리는 게 분명했다. 낭비해서도 안 됐고, 얼어서도 안 됐다. 똑-. 똑-. 그저 꾸준히 떨어지는 한 방울, 한 방울이 지금껏 엄마를 얼지 않게 해 줌이 분명하다.


그날은 내가 물을 떨어트려보겠다며 수도꼭지를 잡았다. 서서히 돌렸다. 물을 한 방울씩 천천히 떨어트리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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