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봄이면 외할머니가 보낸 커다란 택배가 집 앞에 도착한다. 외할머니는 초봄에 제사를 하고 남은 음식들을 골고루 나눠 서울에 사는 자식들에게 보냈다. 배 두 개, 감귤 세 개, 조기 한 마리 등. 아들 둘과 딸 셋, 총 다섯 명에게 보내는 택배라 양은 많지 않았지만 항상 한 개씩이라도 나눠 담으셨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은, 다섯 자식 중 셋째인 우리 엄마에게 보내는 택배엔 좀 더 특별한 것이 들어있다는 점이다. 바로, 외할머니가 직접 담근 간장게장이다. 외할머니는 우리 집에 택배를 보낼 때마다 전화로 신신당부하셨다. “느그 오빠랑 동생들한테는 게장 보낸 거 절대 말하지 마라.”
간장게장은 엄마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엄마는 ‘외할머니 표’ 간장게장을 제일 좋아한다. 할머니의 게장은 짜거나 싱겁지도 않고 살이 꽉 차 있다. 조리 자격증이 네 개가 넘고, 평생 식당을 해온 우리 엄마도 따라 하지 못하는 맛이다. 택배가 도착하면 엄마는 일주일 내내, 삼시 세끼 간장게장만 드신다. 엄마에게 물리지 않냐고 물어보면 물리긴 커녕, 입맛 없을 땐 이게 최고라고 대답한다. ‘이미 입맛은 많이 돌아오신 거 같은데…….’ 아무렴 어떨까. 맛있게 드시는 엄마가 행복해 보여 좋았다. 엄마도 본인 엄마의 음식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나보다. 물론, 엄마가 간장게장을 무척 좋아하기 때문에 우리 집에만 간장게장을 보내 주신 것은 아니다. 외할머니는 귤 하나도 나눠 보낼 만큼 철저한 분배를 지향하셨다.
외할머니는 우리 엄마를 항상 안쓰러워했다. 엄마가 중학생 때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할머니는 혼자서 자식 다섯을 키우셔야 했다. 엄마는 그런 할머니가 안쓰러워서 중학교를 그만두고 옆에서 일을 도왔다. 위로 둘, 아래로 둘. 모든 형제가 학업을 마칠 때까지 엄마는 할머니 곁을 지켰다. “귀순이(엄마)는 똑똑하니까 꼭 학교를 보내야 한다.”는 외할아버지의 유언을 지키기엔 너무 늦어버렸다. 언젠가 엄마에게 할머니가 원망스럽지 않았냐고 물었을 때 엄마는 말했다. “그냥. 할머니가 안쓰러우니까 그렇게 한 거야. 젊은 나이에 남편도 없이 그 많은 자식을 혼자 키우셔야 했으니까.”
야속하게도 엄마는 외할머니와 비슷한 삶을 살게 됐다. 젊은 나이에 이혼한 엄마는, 어린 자식들을 남편 없이 키웠다. 할머니는 어릴 적 엄마를 고생시킨 것뿐만 아니라, 자신과 비슷한 삶을 사는 엄마를 항상 안쓰러워했다. 그래서 할머니는 항상 우리 집 택배에만 간장게장을 담아 보내주셨다. 그렇게라도 본인의 마음을 전달하고 싶으셨던 거다. 엄마는 할머니의 삶이 안쓰러웠고, 할머니는 엄마의 삶이 안쓰러웠다. 그렇게 둘은 서로를 마음 한켠에 두고 살았다.
작년 여름, 외할머니가 갑작스레 입원을 했다. 엄마와 함께 병원에 갔다. 나는 할머니의 손을 잡아드렸고, 엄마는 한쪽에 앉아서 가만히 지켜봤다. 주사를 더 놓을 곳이 없을 정도로 멍든 새까만 팔. 할머니는 대장암 말기였다. 치료는 이미 불가능한 상태였고, 여름을 넘기기 힘들다는 진단을 받았다. 그렇게 아프시도록 자식들에게 표현 한번 안 하고 버티신 거다. 평생을 자식을 위해 사셨는데, 자식들에게 짐이 될까 봐 표현 안 하고 참으신 거였다. 엄마와 삼촌, 이모들이 야속했다. "고마와, 고마와." 할머니는 손을 잡은 나에게 고맙다는 말을 연신 반복하셨다. 실은 내 뒤에 앉아있는 딸에게 하고 싶은 말일 거다. 엄마는 등을 돌리고 눈물을 훔쳤다.
외할머니가 입원하기 2주 전, 봄은 한참 지났는데 뜬금없이 외할머니 성함으로 택배가 도착했다. "느그 오빠랑 동생들한테는 보낸 거 말하지 마라." 당부 전화를 하신 걸 보니 할머니가 보낸 게 확실했다. 상자엔 여느 때와 같이 간장게장과 각종 과일들이 들어있었다. 엄마와 나는 신나서 간장게장을 꺼냈다. 갓 지은 밥을 한 술 떠서 게장에 비벼 먹었다. 엥. 맛이 평소 같지 않았다. 제철이 아닌 게로 담가서 그런 지 딱딱했고, 많이 짰다. 엄마와 나는 할머니 솜씨가 준 것 같다며 웃어 넘겼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할머니는 아픈 몸으로 게장을 담그신 거였다. 딸이 제일 좋아하는 음식을 마지막으로 선물하고 싶으셨던 것이다. 그 게장 안에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을 얼마나 꾹꾹 눌러 담으셨을까. 외할머니는 얼마 못가 돌아가셨다. 엄마는 며칠 내내 간장게장을 꺼내 드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