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모시고 병원에 갔다. 시간에 자유로운 취업 준비생 자식만이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효도다. 엄마는 무릎이 좋지 않다. 남편과 이혼 후, 홀로 자식 셋을 키우기 위해 지금도 하고 있는 30년 식당 일이 준 고통이다. 지난 방문 때 찍은 MRI 검사 결과가 나왔다. 의사는 바쁜지 속사포 랩을 한다. 연골이 없어요. 그리고 무릎 사이. 이거 봐요. 덩어리 같은 게 뭉쳐있네요. 구멍 뚫고 빼내는 수술을 해야 됩니다. 큰 수술은 아니고. 일주일 정도 입원하고 회복하려면 최소 3주 정도는 걸려요. 엄마는 이게 왜 생긴 거냐고 묻는다. 그냥 생기는 거예요. 그냥. 암 같은 거죠. 걸린 이유를 모르는. 의사들도 몰라요. 암이란 단어에 엄마의 표정이 굳는다. 의사는 빠르게 옆 진료실로 이동한다. 예시를 들어도 참.
대형병원은 평일 낮에도 사람으로 북적인다. 아픈 사람은 왜 이렇게 많은지. 수술 일정을 잡기 위해 의자에 앉아 기다렸다. 엄마는 말없이 휴대폰 달력만 들여다본다. 나는 큰 수술이 아니라 다행이라 생각했는데, 엄마는 그렇지 않아 보였다. 연골이 없다는 말. 수술을 해야 한다는 말 자체가 큰 충격으로 다가오신 것 같았다. 30분을 기다려 두 평 정도 되는 방 안으로 들어갔다. 의자에 수술 일정 잡는 분이 앉아있다. “그래서 언제 하시게? 우리 일정이 너무 빡빡해.언제로 할까?” 혼잣말인가. 엄마보다 어려 보이기까지 하는데 왜 반말로 설명하지? 한마디 하고 싶었지만 엄마의 다음 표정에 멈췄다. 엄마는 입으로만 웃으며, 휴대폰 달력을 보여준다. “가게를 하고 있어서 꼭 추석 연휴를 껴서 입원해야 돼요. 2주 이상 가게를 쉬면 생계가 힘들어서요. 선생님 어떻게 안 될까요?” 간절히 부탁한다. “우리도 안 돼. 병원 사정도 있어요.” 반말 9에 존댓말 1을 섞어 쓰는 그에게 나 역시 허리를 굽혀 한참을 사정했다.
엄마와 아들은 패잔병처럼 병원 문을 나왔다. 우리는 오랜 시간 사정했지만 소용없었다. 3개월 내로 수술하는 게 좋다는 의사의 말을 지킬 수 없었다. 한참 후인 내년 구정쯤으로 수술 날짜를 잡았다. 이런 현실을 마주하면, 온 몸이 무기력감과 초라함으로 가득찬다. 의사 지인이 있어서 내가 수술 스케줄 조정을 부탁할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흔히, 세상을 편하게 살기 위해서는 세 명의 인맥이 꼭 필요하다고 말한다. 의사. 변호사. 기자. 이들의 필요성은 설명하면 입 아프다. 아플 때, 억울할 때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사람들. 이런 지인이 없이 산다는 건 곧 사회적 결핍인 셈이다. 이 점에서 엄마도 나도 세 가지의 결핍을 가진 사람이다.
공정하냐 아니냐를 떠나서, 크건 작건 현실에선 누구나 인맥을 활용하고 있다. 그로 인해 인맥 없는 사람들이 받는 혜택의 파이가 작아짐은 분명하다. 결국 누구나 엉성하게라도 인맥을 쌓으려 혈안이 될 수밖에 없다. 인맥을 쌓지 못 한 자들이 바보고 무능력한 취급을 받는다. 있는 자들만 혜택 받는 사회는 얼마나 각박한가. 그러나 이 마음을 절실히 공감하는 누군가도 각자의 세 명은 확보해둔다. 어쨌든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이걸 결핍이라고 생각하는 나도 괜찮은 세 명이 있었다면 이런 고민 따윈 시작조차 않았을 거다. 결국 모자란 사람만 간절할 뿐이다. 이 사회에서 생존해야 하는 자들이 가진 결핍이다.
다음날 아침. 엄마가 누워서 한참 동안 휴대폰을 보고 있다. 가까이 가보니 무릎에 좋은 약들을 찾아보는 중이었다. 6개월 넘게 남은 수술 날짜까지 버티기 위해서 다른 방안을 찾아내야 한다. 무릎을 주물러 드리면서 말했다. 엄마 그래도 다행이라고 생각하자. 더 크게 아프지 않은 게 어디야. 같이 운동도 하자. 살 빼면 무릎에 무리도 덜 갈 거야. 취업 준비생 아들이 보탤 수 있는 도움이라곤 고작 이것뿐이다. 엄마는 웃는다. 그래도 다행이다. 엄마와 내가 마주한 결핍을 다른 것들로 조금이나마 채워 넣을 수 있어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