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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마루 Nov 10. 2022

친화력의 문제

“너는 상대방을 참 편하게 만들어줘.”


직장 동기가 자주 듣는 말이다. 이 친구는 외향적이고 살갑다. 누군가로부터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랐을 것 같은 에너지가 상대방을 참 기분 좋게 해주는 타고난 장점을 가졌다. 상대적으로 어른을 어려워하고 불편해하는 나에게는 그런 동료가 햇빛인 동시에 그늘이다.


상대가 누구든 편하고 친하게, 거리낌 없이 대하는 그녀를 연세가 지긋한 어른들은 예뻐하고 귀여워한다. 연장자 또는 권위가 있는 사람 앞에서라면 어떤 말을 하고 하지 말아야 할지에 대하여 지나치게 생각이 많아지는 내가 그 옆에 있다 보면, 사실 그럴 필요조차 없다는 걸 머리로는 알지만 마음은 종종 상처를 받고는 한다.



며칠 전에는 이런 일이 있었다.

우리 부서 새끼서무가 몇 달 후 다른 부서로의 전보가 예정되어 그 자리의 공석이 기정사실이 되었다. 다음 새끼서무의 자리에는 누가 가게 될 것인가가 화제에 오르면서 나와 그 동료가 후보에 올랐다. 그런데 새끼서무의 사수 격인 서무주임의 그 동료에 대한 편애가 표면에 드러나기 시작했다. 잔심부름 거리가 생기면 장난삼아 그 동료를 서무보조라고 칭하면서 일을 주었다. 서무주임은 붙임성 좋은 그 친구가 보조로서 일을 시키기에도, 대하기에도 다른 직원보다 더 편하다고 했다. 그래서 자신의 곁에 두고 싶어 하는 마음을 드러내기로 작정한 것 같았다. 나는 그녀와 직접적인 비교를 당한 건 아니다. 그렇지만 서무주임 본인에게 내정자가 있음을 암시하는 이런 일련의 힌트들은 사실 달리할 수 없는 그 사람만의 마음이라는 것을 잘 알면서도.. 직장에서는 내 눈과 귀로 들어와 마음으로 꽂히는 비수라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윗사람에게 그렇게도 붙임성이 부족한 사람이었나. 문득 내 성향에 불편함을 느꼈다.



어른이 어려운 이유에 대하여.

내 삶의 첫번째 어른, 아빠와 나의 관계성을 생각했다.


아빠에게 나는 참 무뚝뚝한 딸이었다.

어릴 땐 깨나 어른들께 붙임성도 좋았던 것 같은데 삶의 어느 순간(아마도 사춘기), 그게 많이 죽었다. 내 고유의 성향이 도드라지면서 성격이 비슷했던 아빠와의 충돌을 자주 겪었다. 관계란 게 어려운 건 금이 가기 시작하면 가족이라고 하더라도 깨진 부분을 이어붙이는 것이 중력을 거스르는 일만큼 힘들다는 데 있다. 그때부터 아빠를 향한 벽을 쌓았던 것 같다. 부모님에게 하루의 일과를 서슴없이 공유하는 모습은 내게서 기대할 수 없는 어떤 것이 되어버린 느낌이었다. 돌이켜보면 이 벽을 허물 타이밍도 놓쳤다. 문득 올려다 보았을 때 그 벽은 더욱 두껍고 단단해져 아빠가 아닌 다른 어른들마저도 쉽게 다가오지 못하도록 만드는, 혹은 내가 다가가지 못하게 막는 일종의 성벽이 되어 있었다.




어떤 책에서 그랬다.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나. 진화의 승패를 다정함과 친화력의 요인으로 풀어낸 책이었다.

이 책의 말대로라면 해보고 싶은 업무를 따내느냐 따내지 못하느냐의 갈림길에서 나는 이미 그 동료에게 졌다.  

사색이 여기까지 미치니 이런 성향으로 인해 사회에서 어떤 손해를 보고 있다고 스스로가 느낀다면 그것은 나 자신 또한 어찌할 도리가 없는 신의 영역이라는 마음까지 들었다. 이렇게 타고난 걸 뭐. 나도, 아빠는 더더욱 아니고, 그 누구의 탓도 아니다. 그저 어떤 이들은 이런 모습을 타고난 것일 뿐이다.


퇴근 길, 아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평소의 나답지 않게 오늘 회사에서 겪은 설움을 토로했다. 20분가량 아빠에게 툭툭 털어내고 나니 신기하게도 입에서 나와 내 귀로 꽂힌 그 일들은 별일이 아닌 듯 사소하게 들렸다. 응어리인 줄 알고 꺼냈는데 먼지보다 하찮았다. 아빠는 묵묵히 듣더니 아무리 스스로 잘하려고 해도 직장에서의 인사는 순전히 운이라고 했다. 너를 너무 깎아내려 생각하지 말라는 조언과 함께. 이 말 하나로 집 근처를 몇 바퀴나 돌았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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