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순례 감독의 '리틀 포레스트'로 생각하는 여유로움과 자유이라는 '권리'
주변 사람들 사이에서 매우 호불호가 갈리는 영화가 탄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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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숲(Little Forest)'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임순례 감독의 영화 '리틀 포레스트'입니다.
'우리생애 최고의 순간', '제보자'등의 히트작을 통해 "사회 안의 작은 개인의 행동을 나타내는 영화철학"을 드러내는 임순례 감독은 영화를 제작할 때 주인공과 그가 처한 상황에 깊이 공감하는 것으로 유명한데요.
그러한 감독의 노력으로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과 '제보자'도 개인이 겪는 갈등과 어려움을 현실적인 관점에서 풀어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리틀 포레스트는 실제로 4계절에 걸쳐서 제작되었다고 합니다.
그만큼 각 계절이 나타내는 모습과 그 과정에서 주인공 혜원(김태리), 재하(류준열), 은숙(진기주)이 겪는 관계의 변화 그리고 혜원이 생각하는 가치관의 변화를 효과적으로 그린 것이죠.
그리고 이 셋의 오묘한 감정교환은 리틀 포레스트의 또 다른 묘미입니다.
리틀 포레스트는 사실 '귀농추천 영화(?!)'라고 많은 사람들이 말합니다.
이 영화를 지루해 하는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면, 매번 농사짓고 자연식을 만들어먹고, 친구들끼리 노는 이야기만 영화에서 다루지 않냐고 말이죠.
맞습니다.
그 이야기가 임순례 감독이 전하는 스토리의 전부입니다.
그러나 작은 숲이라는 제목에서부터 모순을 담고 있는 이 영화는 우리에게 매우 신선한 모습으로 다가옵니다.
'작은 숲'은 어떠한 모습일까요? 숲의 크기가 작다는 이야기일까요?
아니면
내 마음 안에 담고싶은 숲이라는 뜻일까요?
영화 속에서 삶에 지친 혜원은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갑니다.
그 곳에서 엄마가 종종 해주던 음식을 회상하며 스스로 음식을 만들고 농사를 짓고 동네 친구들과 만나서 즐겁게 생활하죠.
그러다보니 1달로 예상했던 기간이 1년이 되고서야 다시 도시로 돌아갑니다.
영화 속에 나오는 음식들은 실제로 매우 향토적인 음식으로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자연식을 전문으로 하는 식당에 가야 볼 수 있을 정도로 효율성과 간편함이 기본이 된 도시에서 접하기 매우 어려운 음식들입니다.
효율성이 아니라 직접 농사를 짓고, 정성을 담아야 만들 수 있는 음식들이죠.
또한 농사의 고단함과 반딧불이, 별을 수 놓은 듯한 하늘은 도시에서 보기 어려운 모습들입니다.
이 영화를 보며 나는 펑펑 울면서 본 기억이 납니다.
개봉일에 맞추어 혼자 영화관에서 훌쩍훌쩍 거리다가 어느새 펑펑 우는 나를 발견했죠.
여유와 자유를 상실한 세대와 이를 방관하거나 조장하는 사회에서 돌아갈 숲을 갈망했던 숨겨진 욕구를 찾고자 한 것일까요? 눈물이 났습니다.
모래와 고목을 보기 어려운 세대입니다.
토지비용으로 인하여 운동장과 모래사장이 사라지거나 축소되는 도시지역의 모습, 취업과 입시에 치여 자유와 여유를 상실하여 소확행에 만족하며 살아가는 이 시대 청춘들, 자식들과 가정을 돌보느라 자신보다는 늘 남을 신경쓰는 이 시대의 아버지와 어머니들, 놀 권리마저 박탈당해 수학학원과 코딩학원으로 내몰리는 현대의 어린이들은 리틀 포레스트의 주인공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 시대 여유로움과 자유라는 '권리'를 버리고 살아가는 사회에서 '리틀 포레스트'라는 영화는 우리에게 한 가지 도전장을 내밉니다.
짐을 싸들고 떠날 용기가 없다면 '그 권리'를 다시 찾기 어렵다고 말입니다.
임순례 감독은 10년 20년 정착하지 않더라도, 1시간, 1일, 1개월이라도 그 곳에 정착할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쟁취하기를 바랬던 것 같습니다.
사실 여유라고 생각하면 시간이 많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매우 많은데요.
물리적인 시간의 경우보다는 심리적인 여유도 매우 중요합니다.
스스로 돌아갈 자리를 만들고 작게나마 마음 속 작은 숲을 만들어 놓는 것입니다.
혜원이가 힘들 때마다 이 곳의 흙 냄새와 바람과 햇볕을 기억한다면 언제든 다시 털고 일어날 수 있을 거라는 걸 엄마는 믿어
영화 속에서 혜원의 엄마(문소리)는 함께하지 않지만, 혜원의 마음 속에는 여전히 엄마에 대한 기억과 목소리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스스로 간직하고 있는 나만의 '흙 냄새, 바람, 햇볕'은 무엇인가요?
현재 한국의 노동시간는 OECD에 비해 현격히 높은 수치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심리적인 여유를 느끼기 전에 흙 냄새도 맡을 시간이 없어진 것이죠.
밖에서 바람맞을 시간도 없고, 낮에 햇볕을 쬘 시간도 없습니다.
또한 학생들의 경우에도 그리 다르지 않습니다.
5년 전 자료이기는 하지만, OECD 국가들 중에서 3번 째로 방과 후 학업시간이 길고 학부모 혹은 영리회사에 의한 방과후 수업은 OECD 평균의 6배에 달하며 압도적으로 1위에 당당히(?!) 위치했습니다.
사실 많은 자기계발서에는 이렇게 말합니다.
없는 시간을 쪼개서라도 여유를 만들고 심리적 안정을 취해야 한다고 말이죠.
아니 근데 그게 저는 말인지 방구인지 모르겠습니다.
5시간 자고 열심히 살고 있는데, 1시간을 쉼에 투자하고 4시간을 자라는 것은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일까요?
사실 그렇게 되면 그것은 일이 되어서 스스로에게 하나의 족쇄가 될 위험이 매우 큽니다.
위에서 언급한 심리적 안정감은 물리적인 시간의 여유가 확보되었을 때 가능하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자 합니다.
'피로사회'의 저자 한병철 교수는 저서에서 현대사회의 성과주의를 날카롭게 비판합니다.
이 책은 성과사회의 과잉활동, 과잉자극에 맞서 사색적 삶, 영감을 주는 무위와 심심함, 휴식의 가치를 역설하며, 이러한 관점에서 ‘피로’의 개념에 대하여 새로운 시각을 제공합니다.
우리는 앞으로 나아갈 목표를 세우고 쭉 나아갑니다.
뒤 돌아보고 자유롭게 여유를 즐길 시간도 없이 말이죠.
리틀 포레스트는 이러한 사회에 대한 비판을 혜원의 4계절을 통해 나타내고 있습니다.
'무엇이 좋은(good) 삶인가'에 대한 질문을 '어떻게 사는 것이 나를 위한 것인가'에 대한 질문으로 바꾸어 버렸죠.
나라면, '내가 살고싶은 진짜 나다운 삶은 무엇일까'(individual)
삶의 주인은 자신입니다.
목표를 위한 삶은 언젠가 지쳐 나만의 작은 숲을 찾아 나서게 만들기 마련이죠.
혜원은 '노오력'을 원하고 무조건적인 사회에 대한 복종을 원하는 곳에서 반기를 든 이단아입니다.
하지만 스스로의 삶에서는 최대 만족을 향해 달려가는 개척자이기도 하죠.
사회에서 이를 허용하지 않는다면, 스스로 삶을 개척하는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이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누군가는 소박한 음식을 만드는 데 하루 왠종일을 소비하는 비겁한 은둔자라고 느꼈을 수도 있겠으나, 그 모습의 이면에는 분명히 자신의 흘러가는대로 살아가는 삶에 대한 저항이 담겨있음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들에게 사회의 기준을 잠시 내려놓고 딱 1시간, 1일만 스스로 삶을 개척하는 경험을 해보기를 권합니다.
비록 쉽지않고, 두려운 길입니다.
그러나 혜원처럼 1년 뒤 다시 돌아간 사회에서는 보다 주체적이고 확실한 '자기의 삶'을 살 수 있을 것을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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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기를 함께 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