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ios 2023
23년 내 모토는 '80프로의 낭만과 20프로의 현실감각'이었다. 태생부터 부재한 현실감각을 조금은 채워보자는 의도였는데, 여전히 난 95프로의 낭만으로 올 한 해를 보냈다. 조금 더 경제 공부를 적극적으로 했으면 어땠을까 싶지만, 과거로 돌아간다 한들 난 분명 똑같은 선택을 했을 테니까 할 말은 없다.
해마다 뭐 했지 싶으면서도 늘 돌이켜보면 작은 성취들이 이어져 왔던 것 같다. 성향이 성향인지라 어쩔 수 없나 보다. 31일 맞이 올 한 해의 작은 성취들을 돌아보고 내년에는 또 어떤 작은 성취들을 이뤄나갈지 지켜지지 않을 두루뭉술한 계획을 세워보려 한다.
일과 관련되지 않은 자격증은 총 3개, 스쿠버다이빙(PADI Open Water / Advanced Open Water)과 와인( WSET Level2) 자격증을 취득했고, 내 직무와 관련된 자격증 3개( AWS ML/DB Specialty, Azure Administrator) 6개를 취득했다. 사실 스페인어 자격증과 트레이너 자격증까지 취득하고 싶었으나 스페인어는 어느 순간 독서가 우선순위로 올라오며 듀오링고 진도가 늦어졌고, 올 한 해 허리 건강 이슈로 트레이너 자격증은 고사하고 헬스장조차 한 달을 채 나가지 못했다.
개인적으로 올 한 해 이룬 많은 업적들 중 가장 valuable 한 업적이다. 필리핀, 캐나다, 미국, UAE, 케냐, 탄자니아, 잠비아, 짐바브웨, 남아공까지 총 9개국 12 도시를 방문했다. 작년엔 호주, 올해는 캐나다를 다녀오며 내가 이전부터 꿈꿔왔던 나라들의 사전 답사를 모두 끝냈고, 막연하게 30이 되기 전에 가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아프리카도 다녀왔다. 후기글은 열심히 쓰고 있..긴 하나 이것저것 자꾸 일을 벌리는 바람에 생각보다 속도가 안 난다....
처음으로 웹 개발을 해 봤다. 짭 컴공으로서 항상 한 번쯤은 해보고 싶던 업무였으나 지금 회사에선 어렵지 않을까 생각했었는데 운이 좋았다. 앞으로의 커리어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할 정도로 일이 재미있었고, 그래서 12월부턴 본격적으로 따로 백엔드 공부도 하고 있다.
어쩌다 보니 ChatGPT가 올 한 해 굉장한 이슈였고, 어쩌다 보니 기술의 최전선에서 이를 활용할 방안을 모색하고 구축하는 일을 하게 되었다. 마냥 즐겁지만은 않았지만 커리어적으로 의미 있는 경험인 것은 분명하다.
사실 아직 읽다 만 책도 많고, 새롭게 읽고 싶은 책은 더 많고, 개발책까지 포함한다면 더더욱 많지만, 충분히 바빴던 올 한 해를 돌아봤을 때 3주에 한 권이라면 꽤나 열심히 읽은 것 같다. 사실 끊기가 부족한 탓에 처음 100페이지 정도를 읽고 그 이후로 손을 못 댄 책을 포함하면 30권 가까이 될 텐데 완독을 기준으로 하니 조금은 볼품없어지긴 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책들을 꼽는다면 '한계 없음', '여행의 이유', '뇌, 욕망의 비밀을 풀다' 정도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내년엔 더 다양한 책, 그리고 개발과 관련된 책들도 많이 읽어보려고 한다.
사실 아직도 마음에 안 든다는 이유로, 조금 더 채우고 싶다는 이유로 미발행한 글이 산더미다. 완벽주의를 조금은 내려놓을 줄도 알아야 하는데 생각보다 쉽지 않다. 한 달에 두 번 점심 글방도 하게 되었으니, 내년엔 조금 더 우선순위를 높여 이 보따리들을 풀어내 봐야겠다. 우선 목표는 여행기와 나의 몇몇 끄적이는 글을 발행하는 거다.
- 수영은 접영 한 달 차에 허리를 다쳤고, 그래서 도수치료를 7개월을 다녔다. 거기에 쏟아부은 돈이 얼마인지.. 이제는 좀 괜찮다. 다만 수영을 다시 하고 싶은데, 다시 접영을 할 엄두가 안나 마음에만 묻어두고 있다. 일단 헬스부터 다시 시작해야겠다.
- 총 6번의 등산을 했고(북한산 3번, 도봉산/수락산 1번, 설악산 1번), 제주 올레길/지리산 둘레길을 총 5코스를 걸었다. 처음으로 혼자 등산도 해봤다. 생각보다 할만했고, 편안했고, 즐거웠다. (술과 함께여서였는지는 모르겠다.) 내년에는 조금 더 자주 자연과 어울리고 싶다.
- 작년에 깔짝이던 허접한 베이스 실력을 가지고 동기들과 밴드를 시작했고, 어쩌다 보니 사내 공연까지 했다. 잘하고 싶고 연습도 더 하고 싶은데, 글도 못 쓰고 있는 마당에 베이스 따위가 우선이 될 리가 없다. 어찌저찌 한곡 완곡하는 데 급급해도 그 곡들이 모이면 초보 연주자쯤은 될 수 있지 않을까 위로해 본다.
대학생 시절 오케스트라 하면서 여럿이 한 곡을 연주하고, 그것이 잘 어우러지는 파트에서 느껴지는 전율을 좋아하게 됐다. 너무도 오래전이라 묻혀있던 감각들을 요새 다시 깨우는 중이다.
- 물레를 배우기 시작했다. 주에 한 번 물레를 차고, 도자기를 깎고 굽는다. 어릴 때로 돌아가 촉감놀이를 하는 기분이라 가만히 손을 대고 있으면 기분이 굉장히 나른하니 좋다. 이제 조금은 할 줄 아니 내년엔 다른 무언갈 또 찾아 해보지 않을까.
- 영어는 엄청 꾸준히 하진 못했다. 꾸준히 해온 건 출/퇴근 지하철을 타러 가는 길까지 듣는 팟캐스트와 간혹 화장실에서 하는 말해보카와 아침에 간간히 했던 전화영어 정도? 하물며 영어 공부를 하더라도 내가 좋아하는 것만 하려는 경향이 보란 듯이 드러난다. 외국애들과 떠드는 걸 좋아하다 보니 필요에 의해 하는 단어공부 약간을 제외하면 말하기와 듣기에 치중된 Input을 보였는데, 내년엔 Reading이나 Writing도 꾸준히 해보려 한다. 분명 하기 싫다는 이유로 미룰게 눈에 보이지만 이렇게라도 다짐해 본다. (뉴스프레소 구독에 눈독 들이는 중이다)
- 올 한 해 듀오링고는 나름 꾸준히 하려고 노력했다. 140 Days Streaks가 깨져서 마음은 좀 아프지만 다시 마음을 다잡고 한지 어느덧 3주가 되었다. 앞서 말했듯 원래 스페인어 자격증을 취득하는 것이 목표였으나 생각보다 나의 진도가 느려 무리하지 않았다. 이미 이거 말고도 하고 있는 것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그래도 지금 이 속도면 내년 하반기쯤엔 뭐라도 하나 딸 수 있을 것 같다.
- 술과 너무 많이 친해졌다. 특히 알지도 못했던 와인과 위스키와 너무 가까워졌다. 태생부터 아세트알데히드분해 효소가 부족한 사람으로서 내 몸에 못할 짓을 하는 것 같아 조금씩 줄이려고 하지만, 새로운 세상을 알게 되었음에 매우 감사해하는 중이다. 그래도 내년엔 조금은 자제해야지..
- 술의 세계를 알게 해 준 친한 친구가 생겼다. 올 한 해 나와 가장 시간을 많이 보낸 인물이자, '나도 저렇게 살고 싶다'라는 생각을 심어준 존경하는 사람이다. 덕분에 올 한 해 여러 일들이 있었음에도 버틸 수 있었고 나의 워홀을 포기하는 데에도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사람 인연이란 게 참 신기하다. 떠나가는 친구가 있는가 하면 새로 오는 친구가 있다.
이 외에도 내가 챙기고 싶은 사람들이 늘어났다. 내년엔 내 사람들을 더 챙기며 함께하는 삶을 살고 싶다.
- 아 그래, 워홀을 포기했다. 올 초에 있던 일이라 까먹을 뻔했다. 우선 올해부터 포기를 하더라도 재 지원을 할 수 있게 제도가 변경됐고, 조금 더 솔직한 이유론 취업을 하기엔 잡 시장이 좋지 않았고, 그 시장에서 내가 경쟁력을 가질 만큼 준비가 되어 있지도 않았다. 그럴 용기도 없었지만 만약 그대로 강행했다면 꽤나 무모한 도전이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참 이를 다행이라 해야 할지, 올해 말부터 지원 가능한 나이가 만 30세에서 35세로 늘어났고 기간도 2+2로 최대 4년까지 머물 수 있게 되었다. 난 결국 내년에도, 내 후년에도 워홀 무새가 되어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떠난다고 할 것이다. 친구들아, 미리 미안해!
2024년의 모토는 '새로운 도약'이다. 올 한 해 회사에서 이런저런 일들이 많았고 개인적으로 방법이 무엇이 됐든 간에 환경의 변화를 주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 변화가 과연 어떤 변화일지, 단순히 이직일지, 아니면 또다시 워홀 무새가 될지, 아니면 정말 다른 방향으로 나아갈지 아직 나도 모르겠다. 정말 모르겠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건, 흘러가는 대로 현실에 순응하면서 살기보단 주어진 현실을 최대한 활용하여 내가 원하는 삶을 만들어가고 싶다는 거다. 계속 지금 회사에 남아 있는다면 내가 생각하는 삶과는 멀어지는 것 같아 조금이라도 어릴 때 용기를 내봐야겠다고 생각 중이다. 그것이 정말 나의 행복을 위한 선택이 될진 모르겠지만 어차피 사는데 정답은 없고, 뭐든 해봐야 후회가 안 남는 법이다.
워홀을 포기했듯 최종적으로 내가 어떤 선택을 할진 모르겠지만 적어도 계속 무언가를 바꾸려, 더 나은 무언가를 찾으려 열심히 발버둥을 치고 있을 것이다. 사실 염두에 두는 옵션은 있으나 아직은 정해진 게 없기에 그저 계획 없는 '환경 변화 주기'를 외치고 있지만, 뭐가 됐든 그때의 나는 현명한 선택을 하리라 믿어본다.
업무 관련 자격증은 올 한 해 지겹도록 땄고, 내년엔 언어 관련 자격증을 주로 취득해보려 한다. 아마 DELE와 IELTS가 되겠지. 아, 가능하다면 술독에 한참 빠져있을 때 위스키 자격증도 따면 좋을 것 같다. 언젠가 내가 바를 차릴지도 모르잖아.
어떤 변화를 줄지 모르겠지만, 그 변화 속에서, 변화를 만들어가는 과정 속에서 직무 관련 책도 많이 읽고 강의도 들으며 조금 더 커리어 적으로 성장하는 한 해가 되고 싶다. 이제 4년 차라 그런지 나 스스로 전문가라 칭할 영역이 생겨야 함을 느끼는 요즘이다. 올 한 해는 다른 무엇보다 전문가로서 성장해 나가는 데에 집중하는 해가 되었음 한다.
왠지 또 이런저런 것들에 밀릴 것 같은, 아니 내가 미룰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지만, 부디 세상을 보는 눈을 키우고 바지런히 쫓아갈 수 있길. 우선 새해맞이 거시 경제 책들 몇 권을 주문했다. 이것들부터 읽어야겠다.
특히나 올해는 다쳤다는 이유로, 또 술을 즐긴다는 이유로 겉건강(예를 들어 허리)/속건강(예를 들어 나의 위장들)을 챙기는데 모두 소홀했던 것 같다. 내년엔 작년의 나처럼 꾸준히 운동도 하고 건강한 음식들과 생각들로 나를 채워가고 싶다. 우선 헬스를 하면서 뭘 할지 고민을 좀 해봐야겠다.
올 한 해는 외부에서의 자극이 충만한 한 해였다면 내년엔 내면의 성장을 이루는 한 해가 되었음 한다. 다양한 생각을 받아들이는 걸 넘어서 깨어있는 생각을 먼저 전달할 수 있는 마음의 양식을 갖추고 이에 기반한 Output을 적극적으로 생산하고 싶다.
결국 그때그때 꽂히는 무언가를 하고 있을 것이기에 딱히 계획을 세우고 싶지도 않고, 세울 필요도 없다. 다만 올 해 처럼 등산과 둘레길과 같이 자연과 함께 어우러지고 싶다. 잠시 소홀해진 제주도도 내년엔 종종 방문해야겠다.
수많은 성취들 아래 수많은 고생들을 해낸 나, 올 한 해도 고생 많았다! 내년에도 성장하는 한 해이길, 그리고 내 사람들을 챙기는 한 해가 되길, 그리고 이 글을 읽는 사람 모두 행복 가득한 한 해가 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