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가족 통화가 있는 날이다. 각자 일주일을 어찌 보냈는지 공유했다. 그리고 남동생이 갑자기 내게 물었다.
“형(10년째 같이 살고 있는 짝꿍)을 뭐라고 부르면 좋을까? 매형?”
결혼하지 않고 같이 사는 우리. 흔히 말하는 ‘사실혼’ 관계로 살다 보면 결혼했다면 ‘당연하지만’ 당연하지 않은 상황이 종종 벌어진다.
2년 전 남동생 결혼식이 말레이시아에서 있었는데, 함께 가자고 하지 않았다. 결혼도 하지 않았는데 ‘왜?’라고 물어볼 동생이 같이 여행하는 걸 불편해할 것이 뻔히 보였기에 혼자만 다녀오겠다고 했다.
설이나 추석에는 각자의 집으로 간다.
서울에서 하는 가족 모임에는 되도록 나 혼자 간다.
이번 가족 통화는 짝꿍의 부모님 집(시댁이라 불리는)에서 했다. 조상님들의 제사를 1년에 한 번 몰아서 지내는데 마침 3월 1일 연휴 다음 날이라 짝꿍과 함께 울산으로 내려갔다. 3.1절 빨간 날에는 아침을 부모님과 먹고, 짝꿍의 제수씨와 함께 점심 식사를 했다. 그리고 바닷가가 보이는 카페에서 차를 한 잔 마셨다.
짝꿍 부모님은 나를 늘 ‘며느리’라고 부르지만, 공식적으로 결혼식을 올리지는 않았기 때문에 짝꿍의 동생 가족을 만나서 서로 호칭을 불러 본 적이 한 번도 없다. ‘도련님, 동서, 형수님, 형님’ 이런 호칭 말이다.
그래서인지 남동생이 짝꿍의 호칭을 어떻게 할지 물어보는데, 낯설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가족으로 인정받는 건가 싶어 기쁘기도 했다. 그리고 가족 통화에서 짝꿍에 대한 호칭은 모두 이렇게 정리되었다.
남동생은 공식석상에서 ‘매형’, 개인적으로는 ‘형님’
엄마는 ‘정서방’
여동생은 ‘형부’
역시 여동생은 ‘결혼도 안 했는데?’라며 한 마디 거들었으나 웬일인지 그러겠다고 했다. 울산에서 돌아와 잠자리에 누워 짝꿍에게 말했다.
“놀라운 소식이 하나 있어.”
“뭔데 또.”
“우리가 호칭 정리를 했어.”
“무슨 호칭?”
“우리 가족이 대지를 부를 때 말이야.”
정서방, 매형, 형부라고 얘기해 주니. 짝꿍은 몹시 부끄러워하며 이불속으로 파고들었다. 하지만 왠지 싫어하지는 않았다.
짝꿍 부모님은 나를 늘 가족으로 대해 주시고, 가족의 일원으로 참석하는 걸 좋아해 주셨다. 부모님이 좋아하시니까 나 역시 가족으로 기꺼이 참여했다.
하지만 우리 엄마는 짝꿍과 함께 보는 것보다는 딸인 나랑 단 둘이 시간을 가지는 걸 더 좋아한다. 평소 엄마 집에 방문할 때는 같이 가지만, 여행은 주로 단 둘이 간다.
남동생은 짝꿍에 대해 매우 호의적이다. 여동생도 처음에 비해 호의적으로 바뀌었으나, 그래도 공식 가족 모임에 함께 하는 건 조금 부담스러워했다. 그래서 나 역시 짝꿍에게 선뜻 같이 가자는 얘기를 하지 못했다. 괜히 같이 갔다가 서로 불편해하는 상황이 생길 수 있으니 말이다.
어쨌든. 이번 가족 통화를 통해 호칭 정리를 하고 나니, 짝꿍이 우리 가족의 일원으로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느낌이다. 늘 마음 한편의 짝꿍에게 미안한 마음이 조금은 사라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