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의식적 말버릇에 숨은 욕구

매주 가족통화를 합니다

by 라프

코로나 때부터 우리 가족은 매주 가족 통화를 하고 있다. 통화를 하면서 각자 한 주를 어떻게 보냈는지 특별한 일은 없었는지 이야기를 나눈다. 어릴 때 아빠가 자주 '가족회의'를 소집하곤 했는데, 그때는 그게 그렇게 싫었다. '할 말도 없는 무슨 가족회의를 한다고...'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게 몇 년째 하다 보니 가족 구성원 간에 자기도 모르게 오랜 시간 마음속 깊이 쌓여 있던 불만을 확인하기도 하고 또 서로 오해를 푸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오늘 가족 통화에서는 엄마의 말버릇이 화두가 됐다.


"안 그래도 내 친구가 말이야..."


엄마의 말버릇 중 하나는 남이 한 말을 그대로 우리에게 전달하는 것이 있다. 이에 동생은 화를 내며 말했다.


"엄마, 나는 엄마가 나에 대해서 누군가에게 말을 하는 것도 싫지만, 그 사람이 한 말을 엄마가 그대로 나한테 전달하는 건 더 싫어."


이에 남동생이 거들었다.


"엄마가 누군가 한 말을 나한테 그대로 전하면 '이 말을 내게 왜 하는 거지?'와 '그래서 어쩌라고?' 란 생각이 들어."


나는 엄마가 그렇게 얘기하는 것에 대해 별 생각이 없다고 전했다. 어찌 됐든 동생들은 입을 모아 엄마 친구나 지인의 생각까지 우리가 알 필요는 없고, 앞으로 가족 통화에서는 엄마의 의견을 정확하게 전달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엄마는 수긍했고, 앞으로 그리 하겠다고 이야기하며 통화는 훈훈하게 마무리됐다.


오늘 통화를 하면서 나의 말버릇에 대해 생각했다. 나도 엄마처럼 사람들에게 툭툭 내뱉듯이 하는 말버릇이 있다. 바로 얼마 전의 일이다. 지인이 독립 서점을 운영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나는 그분의 책방 운영에 도움이 되는 말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대화 중에 이런 식으로 말을 건넸다.


"제가 아는 분은 어디에서 그림책방을 운영하는데 타로나 책 읽기 모임 등을 주기적으로 해요."

"아는 분이 책 선물을 주셨는데, 어떤 책인지 모르게 포장해서 팔더라고요."


책방 운영에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내가 알고 있는 이런저런 정보를 던지듯이 전달한다. 이는 친구나 가족들 가까운 사람들과 대화를 할 때 자주 사용하는 말하기 방식이었다. 친구나 가족들이 자신의 고민을 얘기하면, 나는 거기에 대해 내가 생각하는 해결방법이나 도움이 될만한 정보를 말하는 것이다.


오지랖이었다. 도움이 될지 안 될지 모르는, 그 사람에게 진짜 필요한 정보일지 아니면 그냥 쓰레기 같은 정보인지 알 수 있는 말들을 '툭툭 내던지듯' 하는 거다.


'도움이 되면 좋고, 아님 말고.'


이런 마음으로 말이다. 그런데 이런 말을 하면서 마음 한편에는 무언가 모를 불편감이 느껴졌고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도대체 왜 이런 식으로 말을 하는 걸까?'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무의식적인 말버릇이 무의식에 억압되거나 억제된 욕망, 충동이나 내면의 생각들이 의도치 않게 드러나는 현상이며 이를 '프로이트적 실언(parapraxes)'라는 용어로 표현했다.


내가 이렇게 누군가에게 내가 가진 지식이나 정보를 주는 행위는 상대방보다 내가 더 많은 지식이나 능력을 가지고 있음을 은연중에 드러내어 우월감을 느끼는 욕구의 발현일 수 있다. 의식적으로는 '도움을 준다'는 것으로 포장하려 하지만, 무의식적으로 내가 가진 영향력을 확인하고자 하는 내적 동기가 숨어있을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자신이 유능하고 가치 있는 존재임을 확인하고 인정받고자 하는 나르시시즘과 연결될 수 있다. 프로이트는 유아기에 본능과 관심이 자기 자신에게 쏠리는 '1차적 나르시시즘 단계'를 말했는데, 성인이 되어서도 '2차적 나르시시즘'이 나타날 수 있다고 했다. 이는 자신을 과대평가하거나 끊임없이 타인으로부터 동경과 인정을 추구하는 형태로 나타난다.


즉 툭 던지듯 정보를 전달하는 것은 이러한 나르시시즘적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자신의 지식이나 능력을 과시하고 그에 대해 즉각적인 인정과 만족을 얻고자 하는 무의식적 시도일 수 있다. 이는 자신의 가치에 대한 확신이 부족하거나 낮은 자기 긍정감을 가진 사람들이 종종 과도한 자기 방어 기제로 사용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생각해 보면, 정말 그런 말을 하는 순간에 돋보이고 싶은 마음, 인정받고 싶은 욕구 등이 마음 속 깊이 작용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런 말을 한 뒤에 긍정적인 리액션이 없으면 실망하는 마음이 생겼다.


'뭐지? 왜 아무 반응이 없지? 이건 내가 기대한 반응이 아닌데...'


그리고 그 사람과는 대화를 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거나, 더 이상 할 얘기가 없다고 느꼈다. 지금까지 내가 해 온 말버릇에 숨은 내면의 욕구를 확인하니 그동안 그런 상황에서 왜 마음이 답답하고 불편한 감정이 들었는지 조금은 이해가 됐다.


스스로에 대한 과대평가와 끊임없이 타인으로 인정받으려는 욕구에서 자유로워지기 위해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자기 긍정'이다. 자기 긍정감은 자신을 가치 있고 유능하며 사랑받을만한 존재로 여기는 긍정적인 태도와 믿음을 뜻한다. 단순히 자기 자신을 칭찬하는 걸 넘어 나의 장점과 단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는 스스로를 아끼고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이다. 타인으로부터의 인정이 아닌 스스로 나를 인정하는 것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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