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타적 마음의 지분율 높이기
“마추픽추가 어쩌고 저쩌고…”
지난주 가족 통화의 마지막은 남미로 여행을 떠난 동생의 근황을 듣는 것이었다. 동생이 말하는 순간에 나는 다른 일을 하고 있었다. 처음 몇 마디를 듣다가 내가 하던 일에 빠져서 뒤에는 전혀 듣지 못했다. 그렇게 가족 통화는 끝나버렸다.
회사에서 있었던 일이다. 몇 달 전, 새로 온 본부장님이 내 옆에 와서 업무 관련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눈을 마주치며 대화를 시작했지만, 말이 점점 길어지자 시선을 모니터로 옮겼다. 그리고 얘기하는 본부장님의 말에 ‘네, 네~’ 건성으로 대답했다.
물론 모든 사람과의 대화가 이런 상황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다만 두 가지 경우에 이렇게 되는 편이다. 첫 번째는 지금 당장 내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고 있으면 옆에서 아무리 중요한 얘기를 해도 듣는 둥 마는 둥 하게 된다. 두 번째는 대화를 하는 상대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마찬가지로 일 대 일로 대화를 하더라도 잘 집중하지 않는다.
대화할 때 집중하지 않은 대표적인 사람은 바로 엄마였다. 무슨 말만 하면 부정적인 말로 받아치는 엄마는 내게 ‘대화가 안 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엄마가 내게 대화를 시도하면 자동으로 딴생각으로 흘러가 엄마의 목소리가 음소거되어 버렸다. 그리고 엄마는 꼭 ‘내가 바쁠 때’ 말을 걸어왔다.
최근에 이와 비슷한 양상을 보이는 사람은 바로 같이 살고 있는 짝꿍이다. 짝꿍 역시 내가 딴생각을 하거나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일을 할 때 꼭 말을 건다. 그리고 본인 말에 귀 기울이지 않으면 화를 낸다. 그렇게 화를 내는 짝꿍을 보며 ‘참 이상한 사람이다’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실 내가 짝꿍과의 대화를 소중히 여기지 않은 탓이 크다.
이런 대화의 습관으로 인해 때론 내가 '대충 들은 원인'으로 인해 일처리를 잘못하기도 하고, 내가 생각하고 있는 바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해서 문제가 생기기도 한다.
이런 소통의 문제가 도대체 왜 생기는 걸까? 생각해 보면 '나만의 생각'에 깊이 빠져있기 때문인 것 같다. 꼬리의 꼬리를 무는 생각의 늪에 빠지는 것, 그리고 내가 생각하는 어떤 '나만의 논리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그것이 전부라고 여기는 것' 등에서 비롯된다.
'내 생각'
이것이 너무 강하면 타인이 보이지 않는다. 타인의 감정에 공감하기도 어렵다. 내 생각의 중심에는 '나'라는 존재가 있다. '나'라는 존재만 너무 커지면 마트 한가운데서 '내가 갖고 싶은 장난감을 안 사줘서 목청껏 울어대는 어린아이'처럼 된다.
주변 상황, 부모님의 주머니 사정 등 두루두루 헤아릴 줄 알기 위해서는 마음속에 기본적으로 나뿐만 아니라 남도 볼 줄 아는 '이타적 마음'이 필요하다.
그래서 2023년에는 내 마음속에서 '이타적 마음의 지분율'을 조금 더 높여 보기로 했다.
한 사람과의 대화에 온전히 귀 기울이기
대화가 어려울 땐 얼렁뚱땅 듣는 척 넘기지 말고 지금 상황을 잘 설명해 주기
그렇게 매일 매 순간 ‘지금 여기’에 있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