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실패한 사람의 변명일기

by 라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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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프님은 전형적인 도파민 중독자시군요. 시작할 때 도파민이 팍 터지지만, 금세 사라져요. 무언가를 꾸준히 해냈을 때 나오는 세로토닌을 경험하지 못해서 그래요. 사실은... 돈을 못 벌어서 그래요."


이미 교육에 수천만 원을 쓰고도 여전히 마음에 드는 결과를 내지 못해, 또다시 스레드(Thread)에서 발견한 분에게 일대일 컨설팅을 받으러 간 자리였다. 뼈를 때리는 말이었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반박할 수가 없었다.


'내가? 도파민 중독자라고?'


도파민 중독이란 말은 매일 밤 숏폼 영상에 빠져 있거나, 도박이나 게임에 미친 사람들에게나 쓰는 말인 줄 알았다. 나처럼 성실하게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에게 '중독'이라니. 억울함이 머리를 스쳤다. 하지만 이어지는 그의 설명은 너무나 과학적이고 타당했기에 나는 고개를 떨굴 수밖에 없었다.


"뇌과학적으로 보면, 우리 뇌는 '보상 예측 오류(Reward Prediction Error)'에 아주 취약해요. 결과를 얻었을 때보다, 계획을 세우고 '시작하는 순간'에 더 큰 쾌락을 느끼도록 설계되어 있거든요. 작가님은 그 '시작의 쾌락'에 중독된 겁니다."


아,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 호르몬이 내 행동을 지배하고 있었다니. 그제야 오랜 의문 하나가 풀리는 기분이었다.


'큰 고민 없이 무엇이든 잘 시도하고 시작하지만, 끝내 마무리를 짓지 못하는 나의 이 지긋지긋한 패턴. 이게 내 의지력 문제가 아니었단 말인가?'


나는 나의 강점이 '실행력'이라고 믿었다.


'Just do it!'


완벽주의자는 아니었기 때문에 모든 것이 갖춰지기 전에 '일단 저지르는 것' 하나만은 자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진정한 실행력이 아니었다. 그것은 새로운 자극을 쫓는 '변연계(Limbic System)'의 충동이었을 뿐, 지루함을 견디고 결과를 만들어내는 '전두엽(Prefrontal Cortex)'의 실행은 아니었던 것이다.


도대체 무엇이 나의 꾸준함을 가로막고 있는 것일까?


무기력함? 낮은 자존감? 아니면 정말 돈을 못 벌어서? 이유를 찾으려면 수도 없이 많다. 매일 조금씩 해내면 되는데, 그 조금의 시간을 내지 못하는 핑계는 수백 가지도 넘는다.


'손님이 찾아와서'

'너무 졸려서'

'당장 처리해야 할 급한 일이 있어서'


심리학에서는 이를 '합리화(Rationalization)'라는 방어기제라고 부른다. 실패했을 때 상처받지 않기 위해, 우리 뇌는 미리 '어쩔 수 없었던 이유'를 훌륭하게 창조해 낸다.


그런데 이런 그럴싸한 변명만 수집하는 사이, 나는 어느새 마흔 살이 넘어 있었다. 불현듯 서늘한 공포가 엄습해 왔다.


'지금이야. 지금 이 뇌의 패턴을 끊어내지 않으면 50대, 60대도 계속 이렇게 '시작'만 하다 끝날 거야. 정말 그렇게 살고 싶어?'


아니. 나의 대답은 명확했다. 계속 이렇게 살기는 죽기보다 싫다. 이제는 정말 변해야만 한다. 그래서 이 책을 쓰기로 결심했다. 나처럼 시작은 화려하지만 끝이 없는 사람들, '프로 시작러'들이 겪는 뇌의 오류를 수정하고 완주하는 근육을 만드는 책 말이다.


사실 책을 쓰겠다는 생각은 10년도 더 되었다. 그동안 수많은 주제를 기획했다 엎었다를 반복했다. 열정이 식어서가 아니었다. 가장 큰 문제는 '내 책을 통해 나는 도대체 누구를 도와주고 싶은가?'가 명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10년이 흘러서야 나는 독자를 찾았다. 바로 '나 자신'이다. <마흔세 살에 다시 시작하다>의 작가이자 나의 스승이었던 구본형 선생님은 "나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책도 아주 좋은 책이 될 수 있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나는 이 첫 책을 통해 철저히 '나의 문제'를 해결해 보기로 했다.


이 책은 단순한 다짐이나 위로의 에세이가 아니다. 꾸준하게 끝까지 해내지 못하는 행동을 가로막는 원인을 뇌과학과 심리학의 메커니즘으로 냉정하게 분석할 것이다. 그리고 흔들리는 마음을 잡기 위해 인문학적 태도를 처방할 것이다. 무엇보다, 의지력에 기대지 않고 AI(인공지능)와 기록이라는 2026년형 도구를 통해 기어코 끝을 보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과정을 담을 것이다.


나는 이제 '도파민 중독자'에서 '세로토닌 생산자'로 다시 태어나려 한다. 이 책은 그 치열한 실험과 변화의 기록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