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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원사 Apr 15. 2023

0. 삼촌의 에세이 대필하기 프로젝트를 시작합니다.

삼촌의 붓 끝엔 뭐가 있을까

공황장애는 연예인과 같이 자신을 드러내는 직업을 가지는 사람만 겪는 정신질환인 줄 알았다. 처음으로 가까운 사람이 공황장애로 힘들어 할 때, 곁에 있는 사람으로서 해줄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겉모습은 누가 봐도 괜찮아 보였기 때문에 얼마나 힘든지 가늠하기도 어려웠다. 단지, 지하철을 타고 가는 것을 어려워할 때, 영화관에서 함께 영화를 보다 도중에 나가버렸을 때, 시도 때도 없이 피곤해하고 어지러워하는 모습을 볼 때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어디가 어떻게 아픈지, 정확히 무엇 때문에 힘들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자기와의 싸움이라 몹시 괴로운 일이라는 것까지도.  



그는 가끔씩 종적을 감추었다. 아무도 닿을 수 없는 터널 속으로 들어가 짧은 안부도 나눠주지 않았다. 얼굴을 보고 밥 한 끼를 먹으려면 달력을 몇 번이나 넘겨야 했는지 모른다.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연락이 온다. 상태가 괜찮아졌다는 뜻이다. 그와 나는 인스타 친구여서, 내가 인스타 스토리를 올리면 DM을 보내오곤 했다. 뭐 하고 지내는지, 괜찮은지 묻는 것은 그를 체근하는 것 같아 주로 가벼운 대화로 연락을 이어간다. 



우리의 대화가 묵직한 이야기로 넘어간 적은 없다. 요즘 사는 게 어떤지, 삶에 관한 이야기를 묻기엔 내가 그를 하나도 이해하지 못할 것 같아서. 정말 괜찮지 않은 거라면 내가 해줄 말이, 그에게 도달할 수 있는 말이 없을 것 같아서. 우리의 관계는 빙빙 원을 그리며 돌다 끝난다.



오랜만에 그의 집에 찾아갔을 때, 문득 그 사람이 새롭게 보였다. 손엔 붓과 담배를 쥐고 자기와의 싸움을 이어가는 모습이 위태로워 보이면서도 어떻게든 삶을 이어나가려는 의지가 자기도 모르게 속에서부터 나오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는 이 사실을 모르고 자신을 마지못해 붓을 드는 사람처럼 여긴다. 나는 그가 바라본 삶의 진실을 정정하기 위해 그의 삶을 새로이 쓰려고 한다. 생전 처음으로 자신이 아닌 타인의 눈으로 삶을 바라보면 몰라봤던 빛이 보이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지금부터 쓰는 글은 그의 붓 끝을 따라가는 여정이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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