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희열 #작곡가 표절 #개발자 표절 #오픈소스 #개발자 수필 #삶의 동
며칠 전 유튜브 콘텐츠 추천 알고리즘이 이끄는 대로 끌려가다 우연히 알게 된 유희열 표절 사태.
우리 집엔 테레비가 없다. 아 이런 텔레비전(television)이라니.. 너무 올드한 느낌이려나? 그럼
어디 쓸 만한 단어가.. 그래 티비(TV), 우리 집엔 티비가 없다. 음 근데 이것도 그닥.. 이네. 바보상자?
어쨌거나 우리 집엔 TV가 없다. 바보가 안되려고 아니 우린 바보지만 우리 아이들만큼은 바보가 안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8년 전 신혼살림 목록에서 과감히 뺐다.
그리고 8년 동안 컴퓨터로 동영상을...
근데 갑자기 왠 TV 얘기냐.
뭐 우리 집 사정이 이렇다 보니 유희열 표절 사태가 사회적으로 조명을 받고 '얼리라우더'들이 이미 여기저기서 저마다의 목소릴 내고 난 다음에야 알게 되어, 또 이런 소재로 글을 쓴다는 게 뭔가 어그로를 끄는 것 같고 읽기 전부터 좀 식상한 느낌이 들진 모르겠지만 그래도 다른 이야기니 읽어달라(숨찬다. 이 밑도 끝도 없는 만연체 고질적인 습관을 못 고치고는)는 말을 하려고 꺼냈다.
참고로 '얼리라우더(Early louder)'는 이 글을 쓰다가 만들어낸 따끈한 신조어로 '사회적 가십거리나 뉴스거릴 발견하거나 찾아 온라인상에 다른 사람보다 빨리 자신의 목소릴 피력하길 좋아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이번 사태와 관련된 몇 개의 콘텐츠를 소비했다.
20년이 넘도록 가수이자 작곡가로 그것도 뉴스거리가 될 정도로 유명한 사람의 노래치고는 내가 아는 그의 노래는 그리 많지 않지만 그 알고 있는 몇 개의 노래가 이 글의 제목처럼 좋은 나머지 '유희열'이란 사람과 '동물원'의 멤버 '유준열'을 헷갈리는 수준은 아니다.
예전 '이소라의 프로포즈'처럼 가수나 연예인을 초대해 대화하며 또 간간이 노래도 해가며 진행하는 방식의 방송으로는 유일하게 10번 넘게 시청했던 '유희열의 스케치북'의 그 유희열이니까.
참 안되었다.
마음이 아프거나 쓰리거나 배신감이 들거나 밉거나 실망스럽거나 그의 음악이 듣기 싫거나 하지 않았다.
그냥 참 안되었다.
표절이란 게..
지속적으로 이루어져 온 우리나라 음악계의 병폐이든 어쨌든.
그건 개발자인 나 역시 마찬가지란 생각이 들어서다.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는 게 있다.
소프트웨어 개발이나 코딩, 컴퓨터 공학 같은 걸 창의성의 발현이라고 생각하는.
아니 창의적인 사람들이 하는 분야라고 생각하는.
99%는 다른 사람이 만들어 놓은 걸 가져다 짜깁기 하는 건데 그걸 하는 방법을 몰라 못하는 사람들이 오해를 한 바가지 담아 시답잖은 표현을 한다.
심지어는 개발자들 조차도 제 눈에 대들보를 못 보는 몇몇은 자신이 창조적인 예술을 한다 생각한다.
비효율적인 쓰레기 코드나 심지 않으면 다행인 개발자들이 태반인데 자신만은 세상에 없던 그 무언갈 창조한 것처럼.
20년 가까이 내가 만든 코드가 옳다는 증명을 하면서 남의 생각 남의 코드를 표절해왔다.
SCIe급 저널에 1 저자로 논문을 냈을 때에도 그 이전의 연구 결과들을 수십 편이나 레퍼런스 해가며 아주 약간의 양념을 쳐서 이룩한 업적임에도 부끄럽지 않았던 건 이전의 연구결과들 역시 비슷하게 만들어진 것들이어서였다. 그래서 그게 당연하다 생각했다. 아니 그러지 않고는 전혀 새로운 걸 만들어 낸다는 게 내 머리로 내 인사이트로 가당키나 한 일인가. 내 논문을 심사했던 사람들은 그걸 몰라서 선정한 것일까.
지금까지 내가 작성한 코드들도 마찬가지다. 전혀 새로운 알고리즘을 만들긴커녕 때에 따라 가장 좋아 보이는 알고리즘을 이해하고 누군가 그걸 코드로 옮겨놓은 걸 가져다 쓰는 일조차 쉬운 일이 아니었는데 순수하게 내가 창안한 알고리즘은 개발자 인생을 통틀어 한 개도 없다.
난 20년 동안 그들도 베낀 것이든 적절히 있는 것들 조합한 것이든 어쨌든 남들이 만든 결과물들을 이용해 먹고 산 것이다.
한 마디로 반편이 표절 인생이라고 할 수 있다.
주변 지인들이 이런 내 얘길 듣는다면 아마도 이런 말을 하겠지.
'왜 그렇게 또 스스로를 비하하실까 잘난 양반이.'
'넌 세상 사는 게 뭐 그리 맨날 힘드냐. 좀 편하게 맘먹고 살아도 되잖아.'
'너만큼 하는 사람도 흔치 않으니 자신감을 가져.'
'야 니가 하나님이냐? 어차피 이 세상 다 하나님이 만들어 주신 거 그냥 감사하게 누리며 살면 되는 거다.'
'그치.. 근데 그 표절이랑은 좀 다르지~ 레퍼런스에 적어도 리스펙 하고 갖다 썼잖아.'
등등.
리스펙이 중요하다.
그래서 소프트웨어 쪽엔 오픈소스가 나온 걸 지도 모른다. 어차피 내가 만든 코드도 누군가의 결과물에 도움을 받아서 만들어진 것이니 누구나 가져다 쓰라고. 대신 나도 원작자들을 인정할 테니 내 걸 가져다 쓰는 사람들도 내가 한 걸 인정해달라고.
그리고 인정없이 가져다 쓰는 사람들이 염치없게 자신이 다 만든 것처럼 포장하자 그걸 응징하기 위해 라이선스라는 걸 만들어 법적 규제를 가하고. 뭐 그런 거겠지.
근데 오늘은 애시당초 전혀 없던 무언갈 자신이 만들어 낸 게 있긴 한 걸까?라는 의문이 든다.
'리스펙'의 유무로 결론 내기엔 코드에 반영하지 못한 리스펙들로 인해 참 생각이 많아지는 날이다.
유튜브에서 노랠 찾아 TV 보듯 틀었다.
유희열의 인생을 살아보지 못했음에도..
유희열의 표절과 나의 표절이 '좋은사람'의 선율에 오버랩된다.
그가 힘을 냈으면 좋겠다. 나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