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고향에 갔다가 어릴 적 사진들을 보게 되었습니다. 앳되지만 촌스러운 어린이가 계곡에서 놀고 있더군요. ‘그 때 재미있었던 것 같아’라고 회상하며 어렴풋하게 사진 속 시간을 상상했습니다.
내친 김에 어릴 적 일기도 보게 되었습니다. 일기가 아니라 저널이었습니다.
“19XX년 X월 X일, 날씨: 비 오다 갬
오늘 학교에 갈 때 비가 왔다. 물 웅덩이를 밟아 신발이 젖어 짜증이 났다. 점심은 XX와 먹었다.반찬은 참치 볶음. 집에 올 땐 양말도 마르고 비도 멎었다. 기분이 좋았다. “
기억을 상기시키는 건 좋았는데, 당시 느꼈던 감정이나 생각은 알기 어려운 글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아주 가끔 특정 이벤트에 대해 겉의 상황과 안의 생각을 상세하게 적은 글이 있었습니다. 타본 적 없는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의 나와 만나는 경험이었습니다. ‘당시 짝사랑했던 그 친구는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죽어 있던 시간이 살아나는 순간이었지요.
사진과 일기의 가장 큰 차이는 여기에 있는 것 같습니다. 어린 시절 사진을 보면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추억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일기를 보면 과거 특정 일의 나와 조우하게 됩니다. 미래의 나를 위해 요즘 짧게라도 일기를 쓰는 이유입니다. 여전히 대부분 저널이지만, 혹시 또 모르잖아요? 일기를 보다 영감을 얻어 책을 쓸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