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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마디 Aug 07. 2024

가을이었던 적 없었다

입추. 태양 황경 135도

지난 대서에 함께 트랙 달리기를 했던 40대 초반 남자가, 30대 중반인 나더러 젊어서 부럽다고 했다. (윤석열 나이로는 감사하게도 아직 초반이다) 달리면서 나보다 말을 더 많이 하고도 호흡이 가벼운 그에게 그럼 젊음이 뭐냐고 했다가 그는 나더러 다시 늙음이 뭐냐고 물어보았다. 음. "글쎄요. 늙었다?.. "얼마든지 할 수 있지. 마음만 먹으면 뭐든지 할 수 있고, 바꿀 수 있지!"라고 하던 것을 "이젠 도저히 못하겠다. 이제는 난 그건 못해"라고 하는 때에 '아. 나도 늙었나 보다.' 하고 생각할 것 같아요"


그런 말을 해서일까 대서 이후로 매일매일 내가 이젠 더 이상 못하겠는 것만 생각난다.


7월 끄트머리-8월 초에 걸쳐 휴가를 다녀왔다. 어찌어찌 날짜가 늘어나 울진에서 2박 3일, 부산에서 2박 3일 도합 4박 5일 긴 휴가가 되었는데 8월의 부산이란! 낮에 나가면 태양열에 타 죽을 것 같고 해지고 나서는 아스팔트에 남은 푹푹 찌는 열기에 밀면에 같이 먹던 갈비만두가 될 것 같았다. '부산에 왔는데 바다에 들어가야지!'(울진에서는 노무라 해파리 때문에 바다수영을 속시원히 못했다) 하고 광안리와 해운대에 가면 바다가 태양빛을 반사시켜서인지 곶이 활활 타올라 곧바로 오션뷰 카페로 피신했다. 그러다 좀 이따가 '부산에 왔는데 그래도 어디든 가야지!" 하고 다시 나왔다가 '부산에 와서 카페밖에 못 가다니 원통하다!'하고 다른 오션 뷰 카페를 찾아 들어갔다. 에어컨 빵빵한 카페에 들어가면 '아 여기가 천국이다~' 하고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다 해가 지면 내려왔다. 원통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밤늦어도 숙소에 들어가기 싫은 일행의 장단에 맞춰주느라 광안리를 두 번쯤 왕복하다가 (이성을 탐색하는 눈초리가 가득해 여전히 후끈하다) 문득 바다 쪽으로 모래사장으로 내려갔다. 어라. 바다에서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바닷물에 발만 적셔도 몸에 쌓인 열감이 날아갔다. 울진이야 파도 아래로 푹 꺼지는 동해였지만, 야트막한 남해 역시 미지근한 해안선 끄트머리에 걸쳐있기만 해도 미지근한 나를 되찾을 수 있었다. 


바닷가에 코를 박을 듯이 몰려든 오션뷰 가게들에서 떨어져 나와 먼바다의 등대 불빛만 깜빡이는 광안리에 나를 들이민다. 잔잔한 해안선이 거품을 타고 올라와봤자 발목이지만 오션뷰에서 등을 돌리기만 해도 작은 바다는 깜깜하다. 깜깜해서 몰랐는데 깜깜한 바다 곁으로 사람들이 모여든다. 모래밭에서 시간을 보낸다. 걷지 않고, 보지 않고, 먹지도 않으면서 오직 소금물이 모래를 적시는 소리만으로 시간을 보낸다. 동네 주민인 듯, 몸만 둘이 누워있는 돗자리에서 새소년의 가뿐한 기타 소리가 흘러나온다. 아. 내가 바라던 여행이었지. 나도 그녀에게 이런 걸 보여주고 싶었는데. 이런 걸. 낯선 곳에서 우리가 늘 하던 것을 하면 이곳도 우리가 늘 있던 곳처럼 될 거라고. 어딜 가서도 이렇게 있을 수 있다고. 떠날 수 있고, 누울 수 있고, 언제든 이렇게 할 수 있다는 듯이 눈 감고 허공에 노래할 수 있다고. 내가 어리고 당신이 젊을 때 같이 부르던 노래를.


그러다 문득. 그 사람은 이렇게 살아오지 않았다는 것이. 떠올랐다. 그렇지. 그 사람은 이렇게 살아본 적이 없는데 어떻게 그가 이런 삶을 바라주기를 바랄 수 있겠어? 이것은 이것을 해본 나만이 바랄 수 있는 것이다. 대신 우리가 살아온 곳은 미워하는 마음이었지. 미움이야말로 어디 새로운 곳에 가서도 미움 속에 살게 한다. 우리는 미워하는 마음을 잘 안다. 그래서 어딜 가도 미워하며 살 수 있다. 말로는 감사해야지, 희망을 가져야지, 하면서도, 아니, 그런 말을 해야 한다고 배워서 하는 것일 뿐 배우지 않아도 잘할 줄 아는 것은 따로 있다. 


모를 때는 그 우리 안에서 살았고, 뭔가 배웠다고 떨어져 나와 경계를 하면 할수록, 나는 성벽에 올라 온종일 적의 습격을 기다리는 꼴로 살았다. 그래서 나를 지키는 것도, 피신시키는 것도 이제는 다 같은 일 같아서 오늘부터는 그냥 아무것도 바라지 않기로 했다. 해보지 않은 것을 어떻게 해주길 바란다는 말인가, 하고. 나에게 뭔가 해주기를, 혹은 해주지 않기를 바라지 않기로 했다. 그게 무엇이든 간에 당신의 최선이라고도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나라고 사랑에 최선을 다 하는가? 이런 마음이 드는 것도 닫기로 했다. 왜냐고? 사랑하니까. 나를 위해 변하라고 하는 것이 당신에게 괴로움을 줄 것이다. 사랑하니까 하기로 하는 것도 있고, 하지 않기로 하는 것도 생기는 법이다.


밖에 나가 나를 활짝 활짝 열고나서 돌아와서는 닫는 연습을 한다. 바라오는 마음을 거절하고, 튀어나오는 습관을 어색해하고, 호의조차 고개를 젓기. 지난날 혼자서 이별할 때처럼 가슴이 미어졌다. 즐거움을 주는 쪽 말고 괴로움을 주지 않는 쪽 역시 사랑이니까, 깜깜한 쪽으로 가는 것 역시 사랑이니까 그래도 그렇게 하기로 했다. 


여름 다음에 자연히 가을이 이어오는 게 아니다. 

그냥 어느 날 여름이 끝났고, 가을이 시작되었다. 오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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