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온 미래]는 장안의 화제작이다. 2016년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승부 이후 바둑계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추적한 책은 AI의 공습을 앞두거나 이미 진행된 각 영역에서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인생이 축소판이며 우주의 이치를 담았다고 했던 바둑에서 알파고가 이겼고, 9년이 지난 지금 그때 알파고는 애기 수준이다. 이런 책을 놓고 북클럽 모임을 가졌으니 얼마나 할 이야기가 많겠는가. 그런데 두 클럽에서 사뭇 다른 토론이 벌어졌다. 더 재미있다.
오티움 북클럽 ‘김희경의 질문하는 책상’ 8월 모임에서 사람들은 각자의 영역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털어놓았다. 일의 본질을 묻게 되고, 무엇이 인간의 일인지 얘기했다. 일상, 취향, 감정노동, 인간관계에서 AI가 만드는 변화도 중요한 주제였다. 어제 오티움 북클럽 ‘기막힌 논픽션’에서는 한 멤버의 발언이 인상적이었다.
장강명 작가가 바둑계에서 벌어진 일들이 문학에서는 어떻게 될지 불안해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했다. 그에게 인상적인 것은 장작가가 ‘소설을 쓸 때 나는 내가 주체적으로 일한다는 사실이 좋다…헌신할 수 있는 직업이라는 확신이 든다’(223쪽)고 한 대목. 그는 자신의 일을 하고 싶어하지 않은 상태라, 저저와 생각이 다른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오히려 AI와 대화를 나누면서 (예전에 좋아했으나 그만뒀던) 작업을 다시 하고 싶어졌다고. (영감을 얻은 것 마냥) 의기소침했는데 오히려 활력이 생겼다고 했다.
그는 미래가 불안하기는 커녕, AI가 바꾸는 세상을, 그 과도기에서 지켜보는 자체가 흥미진진하다고 했다.
또다른 멤버는 AI와 함께 소설을 써보고 있었다. 먼저 2000자를 쓰고, AI에게 이어서 2000자를 써보라고 하는 방식으로 작업했는데 어떤 AI는 긍정적 세계관이 오히려 자신과 잘 맞아서, 자신이 통제할 수 있어서 덜 재미있었다고. 또다른 AI를 써봤더니 캐릭터를 통제할 수 없어서 더 흥미진진한 일이 벌어졌다고 했다. 그는 현실 세계에서 이해할 수 없었던 인간의 다면성을 AI를 통해 알게 됐다고 했다. 자신이 통제하지 못한 캐릭터의 니즈와 결핍을 통해 인간을 이해하게 됐다니 놀랍지 아니한가.
AI에게 패배한 초고수들은 바뀐 세상이 괴롭겠지만, 누구나 AI 가정교사를 두면서 ‘반상의 민주화’가 이뤄졌다는 바둑계 일부 반응과 맞닿은 얘기다. 생산자와 소비자의 입장도 다를 수 있다.
초등학생부터 이미 모두 AI와 살고 있다고 했다. 단순히 국어 사회 참고자료를 찾는 것을 너머 거의 모든 작업의 파트너다. 그럼에도 “가치가 기술을 이끌어야 한다”면, 그 가치가 무엇인지 함께 계속 떠드는 수 밖에 없다는 어느 멤버의 말도 기억에 남는다.
”AI에게 위기를 느끼는 것은 상위 2% 기득권층이고, 나같은 민초는 상관 없다”는 발언에는 내 의견을 덧붙였다. 실제로는 상위 0.1%가 승자독식할테고, 2%든 10%든 위기 맞다고. 그러나 가장 취약한 건 언제나 그랬듯 90%의 운명이라고. (그분 말씀은, 애초에 진입장벽이 낮았던 직군은 직업을 잃는 아픔은 있겠으나, 대부분 새로울, 어쩌면 하찮을 직군으로 이동할테지만..소위 진입장벽이 높은 전문직들은 아마 아픔이 몇배가 될 것이라고. 기득권을 가졌던 본인의 직군이 사라지고 하찮은 직군으로 옮기는게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분 말씀은, 애초에 진입장벽이 낮았던 직군은 직업을 잃는 아픔은 있겠으나, 대부분 새로울, 어쩌면 하찮을 직군으로 이동할테지만..소위 진입장벽이 높은 전문직들은 아마 아픔이 몇배가 될 것이라고. 기득권을 가졌던 본인의 직군이 사라지고 하찮은 직군으로 옮기는게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나는 오래된 장강명 작가님 팬으로서, 술술 풀어낸 이야기에 깊이 공감하며 빨려들었다. AI 음악시장 규모는 2022년 2억2900만 달러(약 2900억원)에서 2032년에는 26억6000만 달러(약 3조3800억원)로 커질거라는데, 모든 생산물, 창작물이 미친 속도로 대량생산되는 세상은 조금 무섭다. 정보의 홍수를 지나 예술의 홍수라니.
책에서 내가 좋아한 대목은 서사다. <알파고> 다큐조차 사실상 주인공은 이세돌인 것처럼 우리는 온갖 고난 속에 좌절하고 다시 일어서는 서사를 좋아한다. 이기고 지는 승부보다 그 과정에 주목한다. 영화 <록키> 상영시간 대부분은 록키가 진짜 감정들을 드러내며 경기를 준비하는 과정이고, 실제 경기 장면은 짧다는 작가님 분석에 무릎을 쳤다.
책의 9, 10장이 감정적으로 조금 거칠다는 것도 한 멤버가 유쾌하게 정리했다. 인간이라서 그렇다는 걸 보여준다고. 나는 좀 궁금해졌다. AI가 똑같은 톤앤매너를 유지하는 대신, 인간처럼 흥분도 적당히 섞고, 천편일률 높은 완성도 대신 인간적 실수까지 흉내내게 될까? 좌충우돌 성장 서사마저 베끼게 될까? 우리는 천재적 AI, 웃기는 푼수 AI, 다정한 AI를 골라쓰게 될까?
덧> 장강명 작가님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