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견(bias), 생길 수 있죠. 그게 어느순간 혐오표현(hate speech)이 되고, 차별(discrimination)로 고용, 교육 등의 영역에서 불이익으로 이어지고, 혐오범죄(hate crime)까지 갔다가 제노사이드(집단학살)로... 이거 무서운 겁니다.
『차별하지 않는다는 착각』 북토크에서 홍성수 숙명여대 교수님은 혐오의 차별의 피라미드부터 소개하셨습니다. 북토크가 열린 8일 오티움은 간만 후끈하고 진지했습니다. 노키즈존에 이어 노차이니즈존까지 등장한 시절입니다.
한때 국내 고작 몇명 밖에 없던 혐오와 차별 연구자가 지금은 엄청 늘었답니다. 현실 세계가 심각해진 탓이죠.
『말이 칼이 될 때』 이후 7년 만에 이 문제에 정색하고 책을 내신 홍 교수님도 고심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혐오는 고작 3초면 내질러버리는데, 그게 왜 문제이고, 어디서 잘못된 것인지 설명하는데 5분은 필요합니다. 그래도 별 수 없습니다. 밑빠진 독에 물을 붓는 마음으로 계속 모이고 떠들 수 밖에 없어요. 노키즈, 노차이니즈 영업의 자유를 말하는 업장 사장님께 말해야 하는거죠. 우리 모두에게 공존할 의무가 있다고.
2013년 차별금지법을 발의했다가 보수 개신교 반발에 밀려 법안을 철회했던 정치권은 이후 7년 간 법을 꺼내지도 못했습니다. 이후 수없이 황망한 블랙코메디가 이어지면서 여전히 차별금지법은 뜨거운 감자입니다. 도대체 언제까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할겁니까. 지금껏 수없이 많은 사회적 합의가 쌓인게 차별금지법입니다.
차별금지법은 개신교 여론조사에서도 이제 찬성이 더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법이 제정된다고 하루아침에 차별과 혐오가 사라지지 않겠지만, 최소한 변화의 발판은 되겠죠.
혐오표현을 아무렇지도 않게 놀이 마냥 재미로 떠드는 어린이들 어쩌냐고 질문이 나왔습니다. 교수님은 어느 교사의 경험을 소개했어요. 그 말의 어원은 무엇이고 어떻게 쓰이는 거라고, 차분하게 가르쳐주면 달라지기도 한답니다. 갈 길 멀어보이죠? 그래도 갑니다. 가야죠.
우리가 할 일이 있고, 함께 하는 이들이 있다는 것을 확인한 시간이었어요.
책 너무너무너무 쉽게 술술 읽힙니다. 차별하지 않는다는 착각,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벌어지고 있는지 함 보시죠. 우리가 외면했던 아주 보통의 차별들을 들여다보고, 좀 살만한 세상, 차별없는 세상을 상상해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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