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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니 Nov 17. 2019

어쩌다 을지로 #1

- 합격



합격이다! 


수화기 넘어 들리는 채용 담당자의 축하 멘트를 들으며, 속으로 '아싸!'하며 쾌재를 불렀다(사실 느낌표가 열개쯤 된다).

정말로 가고 싶은 회사에 정말로 가고 싶은 시기에 채용이 된다는 것, 크나 큰 축복이 아닐 수가 없다. 

기쁨도 잠시, 갑자기 채용 담당자의 목소리가 독촉 모드로 변경된다. 


"그런데 혹시 토니님 언제쯤 출근 가능하실까요? 신규 사업 본부의 본부장님께서 매우 급하게 요청하셔서..."

"네? 음.. 그럼 대략 언제쯤 출근하면 될까요?"

"사실 다음 주에 바로 나오셨으면 하는 눈치이신데…가능하실까요?" 


여기서 밀리면 안된다. 내가 누구인가. 나도 이제 직장 생활 짬밥이 10년을 훌쩍 넘은 어엿한 과장이다. 신입 사원도 아니고 저런 독촉에 말려 '불러만 주십시오! 언제든 달려가겠습니다!'라고 섣불리 말하는 우를 범하면 안된다. 게다가 이 통화를 하고 있는 지금이 금요일 저녁인데 다음 주에 바로 나오라고? 그 이야기는 이틀 밖에 못쉰다는 이야기잖아. 우이씨. 


"아.. 사실 제가 치과 치료 예약이 연달아 잡힌 게 있어서요, 죄송하지만 당장 다음 주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럼 언제 출근 가능하신가요?"

"네, 음.. 2주 후에 출근 가능할 것 같습니다. 정확히 21일 월요일이요"

"아, 네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그럼 2주 후 월요일에 뵙도록 하겠습니다. 해당 본부의 총괄 담당자에게도 그렇게 전달하겠습니다. 혹시 일정 변동 사항 있으면 꼭 알려주시고요."

"네, 감사합니다!" 


곤란한 일이 있을 때는 병원 핑계를 대는 것이 만고 불변의 진리이다. 하지만 못내 찜찜한 기분이 든다. 

팀장도 아니고 무려 본부장님께서 날 급하게 불렀다고? 내가 그렇게 특출난 인재였던가? (엣헴) 그냥 빨리 가겠다고 할 걸 그랬나?


이거 아무래도 전형적인 인사팀의 블러핑 같은데… 답답하기는 하나 이 회사에는 지인이 없어서 확인해 볼 방법이 없다. 불안은 땡겨서하는게 아닌 법. 나중 일은 나중에 생각하고 우선 현재에 집중하기로 했다(본부장님 죄송합니다). 


일단 중요한 사실은 내가 무려 2주+a의 시간을 벌었다는 것! 

나는 16일 동안 여행을 갈 지, 중국어 학원을 등록할 지, PT를 등록할 지 아니면 앞에 열거한 세가지를 다 해볼지 심각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무얼 하지? 무얼 할까? 어떻게 하면 남은 시간을 가치있게 보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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