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함으로 만들어 낸 유니버설 디자인
얼마 전, 유투버 '위라클'이 한국에서 휠체어를 타고 저상버스를 타는 영상을 우연히 보았다. 한 번 영상을 보니 관련한 영상들이 알고리즘으로 떠서 비슷한 주제의 영상들을 몇 개 보았다. 아. 저상버스가 2003년 서울에서 시범운행 후 도입된 이후로 20년이 흘렀으나 휠체어를 타고 버스를 타는 것은 여전히 어려운 일처럼 보인다.
저상버스는 바닥 높이가 낮으며 출입문에 계단이 없거나 한 칸만 있는 버스를 일컫는다. 바닥이 낮고 계단이 없어 노인, 어린이, 임산부, 장애인 등의 교통약자뿐만 아니라 일시적으로 다리를 다친 사람, 일반 승객들 역시 이용하기 편리하다는 점에서 유니버설 디자인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하지만 좋은 취지에서 시작된 저상버스가 정작 왜 타깃 그룹의 하나인 휠체어 사용자에게는 외면받는 것일까. 영상에서 한국 저상버스 이용에 몇 가지 문제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한국 저상버스 이용의 문제점
1. 낮은 도입률
한국에서 저상버스 도입률은 약 2022년 기준 30%에 불과하다. A에서 B로 가는 버스가 세 대의 버스가 있다고 해도 휠체어 사용자는 두세 대의 버스를 타지 못하고 떠나보내야 한다. 긍정적인 소식은 2021년 12월 31일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2022년 1월 18일 공포되었고, 이에 따라 2023년 1월 19일부터 시내, 농어촌, 마을버스에 초저상버스 도입이 의무화된다고 한다. ‘제4차 교통약자 이동편의 증진계획'에서는 시내버스 저상버스 도입률을 2026년 62%까지 높인다고 하니 낮은 도입률의 문제는 점진적으로 해결되지 않을까 희망해 본다.
2. 휠체어가 접근할 수 없는 정류장 환경
휠체어 사용자가 저상버스를 이용하려면 휠체어를 버스와 수직으로 정렬하고 휠체어를 굴릴 수 있는 충분한 공간이 확보되어야 한다. 물론 휠체어가 접근 가능한 버스 정류장도 많지만 나무, 쓰레기통, 불법 주차된 자동차 및 오토바이 등으로 인해 휠체어를 정렬할만한 충분한 공간이 확보되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다.
3. 휠체어 탑승에 대한 사람들의 시선
대부분의 버스 기사들이 적극적으로 휠체어의 버스 탑승을 도와주는 반면, '웬만하면 장애인 택시를 이용하세요.', '시민들이 불편해해요.'라는 말을 뱉는 기사도 있다. 휠체어가 타면 휠체어 좌석을 확보해주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는 시민도 있고, 탑승 후 휠체어가 운행 중 굴러갈 위험이 있기 때문에 휠체어 고정을 기사가 도와주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도움 없이 출발하려고 하는 기사도 있다. 이런 사례들이 다수가 아니라 소수이기를 바라지만 현실에 여전히 존재함에는 확실해 보인다.
4. 너무 큰 경고음과 느린 발판
한국 저상버스의 발판은 자동으로 작동되어서 발판이 나오는 동안 다른 사람에 부딪힐 위험이 있기 때문에 경고음이 함께 나온다. 근데 이 경고음이... 꽤 크다. 소심한 내가 휠체어 사용자라면 이 큰 소리로 인해 집중되는 시선 때문이라도 탑승이 꺼려질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또 저상버스 발판이 나오는 부분은 빨리 감기를 할 만큼 느리고, 고장으로 안 나오는 경우도 있어 버스 기사가 겨우겨우 수동으로 꺼내는 경우도 있다. '아우 나라도 못 타겠다'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바닥이 낮고 계단이 없는 저상버스 자체는 휠체어를 사용하지 않는 사람에게도 편리하지만, 휠체어 사용자는 결국 ‘그들만’을 위한 자동 발판에 의지해야 한다. 자동발판을 보행가능자와 한 발 깁스를 한 사람이 이용하지는 않는다. 저상버스의 자동발판은 특정 장애의 특수한 점을 고려하여 장애가 장애가 되지 않는 디자인을 추구하는 ’ 배리어 프리 디자인‘에 가깝다. 하지만 특정 장애만을 위한 디자인은 그들을 ‘특별한’ 사람으로 만들어 주류 속에서 사회적 눈치를 봐야 하거나 소외감을 느끼게 할 수 있다는 점을 우리는 고려해야 한다.
지금 내가 있는 나라, 스웨덴은 접근성이 높은 대중교통이 잘 정착되어 있기로 소문난 북유럽 국가 중 하나라서 이동하며 관찰한 바를 적어보고자 한다. 내가 사는 도시는 지하철이 없고 주요 대중교통은 버스와 트램이 있다. 아래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에 있어서 두 대중교통의 큰 차이를 발견하지 못해 구분 없이 말해보려고 한다. 내가 이용한 모든 버스는 저상버스였고, 아래에서 이야기하는 것들은 트램에서도 비슷하게 갖추고 있는 시스템이라는 점을 밝힌다.
1. 단순하고 직관적인 디자인
턱과 저상버스의 높이 차이가 크지 않아 유모차, 지팡이 등은 어려움 없이 승하차가 가능하다. 그럼에도 종종 턱과 저상버스 사이의 틈을 채워야 할 경우가 있는데 그 경우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첫째는 버스가 턱 쪽으로 기울어진다. 버스 바닥이 바깥의 턱과 거의 닿도록 한쪽이 낮아진다. 높이가 위아래로 움직이는 버스라니 재밌기도 하다. 두 번째 방법은 수동 발판이다. 우리나라의 자동 발판과는 달리 접혀있던 발판을 사람이 직접 펼쳐야 한다. 자동 발판보다 사람의 손을 거쳐야 하니까 더 번거롭지는 않을까? 의문이 생길 수 있다. 하지만 내가 경험한 것이 보편적인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버스에서 발판을 펼치는 것을 보며 놀란 점은 버스 기사가 아니라 승객 중 다른 한 사람이 발판을 펼쳤다는 것, 또 일련의 과정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어 1분 이내로 끝냈다는 것이다.
또한 버스와 트램의 중간 문이 열리면 바로 휠체어, 유모차가 들어갈 수 있는 넓은 공간이 나오는데, 중간 공간에 좌석을 최소화하여 공간을 비워두고 탑승을 하자마자 보조기기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공간을 차지할 수 있도록 배려한 점이 돋보인다. 장애인, 유모차를 표시하는 픽토그램은 이 공간에서 먼저 배려받아야 할 주체가 누구인지 명시하고 있다.
2. 모두가 이용 가능한 유니버설 디자인
다시 한번 언급하면 저상버스는 바닥이 낮고 계단이 없어 노인, 어린이, 임산부, 장애인, 다리를 다친 사람 등의 교통약자뿐만 아니라 일반 승객도 편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유니버설 디자인의 취지를 잘 반영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다. 스웨덴은 아무래도 이 점을 잘 반영하여 모두가 눈치 보지 않으며, 차별받지 않고 이용가능한 이동수단을 만들어 낸 것 같다.
몇 가지 사례를 보면 먼저 버스 및 트램 안과 바깥에 열림 버튼이 있다. 기사가 미처 보지 못한 승객이 있어 문을 닫아도 열림버튼을 누르면 문이 다시 열려 느린 보행자도 당황할 일이 없다. 나는 느린 보행자는 아니지만 놓칠뻔한 버스 정류장을 이 버튼을 눌러 무사히 내린 적이 있다. 다만 이 버튼을 누른다고 항상 문을 열어주는 건 아니다.
또한 휠체어와 유모차를 위한 공간을 나도 곧 잘 이용하곤 하는데 장을 보고 짐이 많은 경우, 자전거를 이용하는 경우 등 일반 승객들도 상황에 따라 쉽게 이 공간을 활용할 수 있다.
강아지를 위한 칸도 따로 있는데 특별한 게 아니라 강아지 픽토그램과 함께 접히는 좌석이 준비되어 있다. 강아지가 타면 좌석을 접어 주인 좌석 옆의 바닥에서 쉴 수 있게 하고, 사람이 앉을 경우 좌석을 펴기만 하면 된다. 스웨덴의 대중교통에서 유니버설의 범위가 동물까지 확장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3. 준비된 사람들
휠체어 사용자가 하차할 수 있게 수동발판을 꺼내줬던 승객뿐만이 아니다. 듣기로는 스웨덴 사람들이 도움을 요청하기 전까지 잘 도움을 주지 않는다고 하는데, 직접 보기로는 아니었다. 교통약자가 대중교통을 타면 일단 공간을 확보해 주는 것, 하차 시에는 먼저 내리도록 배려하는 것은 기본으로 하고 서 있는 것이 불편해 보이는 사람에게 말을 걸어 좌석을 안내해 주거나 불편한 점을 묻는 등의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기사와 승객으로부터 본 또 다른 미덕은 '기다림'이다. 엄청나게 짐이 많은 사람이 탑승해도 짐을 다 실을 때까지, 다 내릴 때까지 한 마디 없이 긴 시간을 기다려주고 이에 대해 불만을 표하는 사람은 없다. 승객도 그것은 당연하다는 듯 미안해하거나 눈치 보는 기색도 없다.
사실 선진국의 사례를 들고 와 한국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글을 쓰고 싶지는 않았다. 스웨덴은 잘났고 한국은 못났다?라는 식의 이야기는 조금 식상하기도 하고 왠지 내 얼굴에 침을 뱉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지구의 주인은 누군지도 모르는데 차별받거나 배제되는 생명체가 없는 세상이 타당하다고 가정하면 그러한 세상을 만드는 고민을 하는 데에 좋은 사례를 참고하는 것이 당연하기도 하다. 다만 스웨덴 사람이나 정부가 특별히 잘났거나 선한 의지를 가져서 그런 것이 아니라 조금 더 일찍 한 걸음을 먼저 갔을 뿐이다. 그 길이 맞다고 사회적 합의가 된다는 전제 하에 어떤 정책이든 교육이든 사람이든 그 길을 가면서 문화와 실정에 맞추어 다듬어 나갈 잠재력이 있다는 점을 밝히며 이 글을 끝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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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한국 저상버스 도입률: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104889#ho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