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개발자의 연봉 협상
남들과 비교할 필요 없다. 다른 사람과 나를 겨뤄보고 고찰 해봤자 하등 쓸모 없는 일이라는 걸 알잖아. 어제 보다 나은 오늘을 보냈다면 그걸로 된 거라고. 항상 나아질 수는 없지만 우상향 하는 주식 종목 그래프를 봐도 삐끗하는 지점이 있다고. 그렇게 다들 아프면서 성장하는 거라고. 그런 말들로 내 뇌를 현혹시켜 마음이 조금 편해지기는 했다.
누구는 자기합리화라고 치부하겠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힘든 세상 어떻게 살아가나. 예민한 눈초리를 애써 무시하며 살아 왔지만 언제나 위기는 찾아온다.
우리 회사는 IT 스타트업. 12월 안에 모든 멤버의 연봉 협상을 마치고 1월 급여에 인상된 연봉을 반영해 지급한다. 당연한 연봉 협상 일정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세상에는 생각보다 치사한 회사들이 많다. 어떤 회사는 11월에 당해년도 연봉을 인상해주고 오른 연봉만큼 소급 지급했다. 그 전에 퇴사한 사람들은 안 주는 거지. 또 다른 회사는 4월 즈음 사장의 내키는 날짜에 그의 마음 크기만큼 인상해주고는 했다. 참나. 이렇게 아픈 기억이 있지만 지금은 정상적으로 연봉 협상을 진행하는 회사에 다니니 얼마나 다행인가.
2월이 되어서야 12월을 다시 떠올려 보자면, 나는 지난해 상반기 끝물에 입사해 아직 채 1년을 다니지 않은 멤버다. 그리고 비 개발자다. 지난 회사 대비 많이 오른 연봉이지만, 첫 회사에서 책정된 초봉이 너무나도 적어 절대적인 액수로 보자면 내가 회사에 쏟는 열정과 시간 대비 정말이지 귀여운 월급을 받고 있다. 어떻게 보면 한 해에 연봉 협상을 두 번 하게 된 셈인데, 그래도 나는 나름의 기대가 있었다고.
고대한 수치는 아니라 조금 실망을 하긴 했지만, 애써 무시하는 마음으로 퇴근하고 동료와 소주를 마셨지. 그날 술값 인당 4만 2000원. 많이도 마셨다.
인상된 연봉 계약서에 싸인을 마치고 담당자가 곱게 담아준 서류 봉투를 들고나오는데, 나보다 어리고 연차도 적은 개발자와 마주친 거야. 그 사람도 서류 봉투를 들고 있더라고. 저 안에는 얼마가 적혀있을까? 내 서류에 적혀있는 숫자보다 명백하게 클 것이라고 짐작하는 건 명백한 내 생각의 오류일까.
대단한 개발자 모시기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라고 뉴스 기사에서는 연일 떠들고, 개발자들을 모시기 위한 파격적인 연봉 제안은 나날이 숫자가 커지고 있다. 사내 인재 추천 제도를 뜯어 봐도 개발자와 비 개발자를 추천한 멤버에게 돌아가는 포상 금액 숫자는 차이가 확연하다.
개발자 아닌 사람 서러워서 살겠나. 출근길 삼성역에서 나눠주는 손난로를 받았는데, 홍보 문구에 개발자에게는 매년 1개월 유급휴가를 준다고 써있었다. 지인 개발자를 추천한다면 500만 원을 준다고도 했다. 타사보다 높은 연봉을 제시할 수 없기에 워라밸을 중요시하는 개발자들을 잡기 위해서 내놓은 제도겠거니 짐작해본다. 그리고 개발자들이 돈 받고 쉴 동안 일을 해야 하는 그 회사 비 개발자들 처지에 대해서 짐작해본다. 서러워서 못 다닌다. 못 다녀.
글을 써서 밥을 벌어 먹고살기로 결정하고 잡지사에 들어갔을 때, 어쩌면 난 이미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가난한 글쟁이로 살아가리라는 걸. 계속해서 가난하게 살아갈 수는 없기에 IT 업계로 이직했다. 궁핍했던 잡지사 에디터 시절에 비하면 호사를 누리고 있다. 동료, 직무, 업무 프로세스, 조직 문화 그리고 연봉. 그러나 연봉 협상은 내 전문성에 대해서 다시 고민하게 한다. 대학원에 갈까?
누구나 글을 쓸 수 있지만 브랜드의 가치를 언어로 뾰족하게 다듬어서 고객에게 전달하는 것이 내가 하고 있는 일이고 앞으로 더 잘하고 싶은 일이다. 연봉 협상 때마다 개발자의 연봉을 짐작하고 시기하며 못난 나를 원망도 하겠지만, 비교하지 말고 일에 몰입하다 보면 더 나은 버전의 내가 되겠지. 그거면 됐다는 생각으로 오늘도 속으로 되새긴다. 비 더 베스트 버전 오브 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