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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이 Oct 05. 2021

시노다 마사히로 <오린의 발라드>

시노다 마사히로의 최고작

, 나와 관련이 정말 정말 깊은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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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롭게도 시노다 마사히로는 후쿠이에 대해 상당히 많이 다룬 감독이다.

며칠 전에 본 <야차 연못>은 후쿠이의 옛 지명인 에치젠의 전설에 대해 다룬 영화였고, 오늘 본 <오린의 발라드>는 그 주요 배경이 후쿠이이다.


<오린의 발라드>에 관해서라면 (좀 과장해서 말하면)아마 나 이상으로 깊게 볼 수 있는 사람은 한국에 없을거다. 왜냐면 영화 속에서 공간적 배경으로 나오는 장소들이 다 내 눈에 선한 공간들이기 때문이다.

먼저 주인공 오린의 고향으로 나오는 후쿠이 오뉴군 오바마정은 현재 후쿠이현 오바마시이다. 2018년 교환학생으로 후쿠이에서 6개월을 보낸 나는, 오바마시에 대해 여러번 들어보았고 기차를 타고 지나간 적도 있어 잘 알고 있다.(여담이지만 같은 이름을 가진 나가사키의 오바마에도 가본 적이 있다. 거기는 오바마 짬뽕이 유명하다)

떠돌던 오린이 또다른 외톨이 고제(30대의 젊은 키키 키린. 너무 똑닮았는걸..?이라고 생각했는데 맞았다!)와 인사를 나눈 후 경찰과 마주치게 되는 나가오카는 니가타현 제2의 도시로,  일본 여행을 하던 중인 2019년 3월 나는 니가타에서 나가노로 넘어가기 위해 이곳에서 기차 환승을 했었다.


또 시각장애인 손녀를 둔 할머니가 손녀를 데리고 자살한 절벽은 도진보로 추정된다.(물론 영화 속 촬영 장소는 아마 다른 곳을 택했던 것 같지만, 에치젠의 절벽=도진보가 틀림없다) 도진보는 후쿠이현의 가장 대표적인 관광지로 세계 3대 주상절리로 꼽힐만큼 깎아지른 주상절리가 장관을 이루고 있는 해안가 절벽이다. 일본 내에서는 자살 명소라는 악명으로 널리 알려져있어, 그러한 이미지를 바꾸고자 노력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나는 후쿠이 생활 중 2번 정도 갔었다.


다음으로 헤어졌던 오린과 센조(본명 : 이와부치 헤이타로) 두 사람이 다시 만나는 장소가 된 절 젠코지(선광사)는 나가노의 거대 사찰로, 역사가 1400년이나 된 일본의 3대 사찰 중 하나이다. 이 곳 역시 여행 중 들른 적이 있어 잘 알고 있다. 거대한 절 크기에 압도되었고 향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오르던 기억이 난다. 오린의 여정 길은 내가 했던 여행루트와도 상당히 일치한다.


또한 언급으로 등장하는 노토반도의 스즈, 후쿠이현 사바에, 도야마 이토이가와, 에치고다카다(현 니가타현 조에쓰시) 등은 모두 가본 적이 있거나 관심을 가지고 살펴본 적이 있는 지역들이다.


다음으로 내용으로 들어가 보면, 고제(瞽女, 샤미센을 타거나 노래를 하며 같이 방랑하던 눈먼 여성 연주가들)라는 특수한 존재의 삶을 그리고 있다. 개인적으로 고제에 대해서는 처음 들어보는데 그들의 삶의 방식이 무척 흥미로웠다.


그들은 비구니는 아니지만 부처를 모시는 것을 삶의 원칙으로 삼고(마치 하느님을 모시는 수녀와 같이), 행자로서 길위에서 노래를 들려주고 보시를 받아 생계를 유지하였다. 또 마을 잔치에 가서 공연을 하거나 노래로 분위기를 띄우는 역할도 하였다.


고제라는 직업군은 여성 시각장애인들이 공동체를 형성하여, 기술을 전승(샤미센과 노래)함으로서 사회 내에 자신들만의 위치(포지션)를 확보하고, 그를 통해 삶을 이어나간 일종의 시스템이었다. 이를 통해 여성 시각장애인들이 그 시대에 어떻게 살아나갔는지 그 삶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고제의 규율을 지키지 못한 오린은 그 곳으로부터 쫓겨나 외톨이 고제가 되었다. 마을의 신당이나 빈 집이 그녀와 같은 외톨이 고제들의 거처가 되었다.

또 이 영화에서 중요한 다른 소재는 탈영병이다. 오린과 서로 사랑한 게타 장수 센조는 실은 부대를 탈주한 탈영병 이와부치 헤이타로다. 그를 잡기 위해 후쿠이현 사바에 헌병대 중위가 등장하고, 그는 경찰과 함께 센조와 오린의 뒤를 쫓는다. 중위는 "현재 탈영병이 속출함에 따라 제국 육군이 골머리를 앓고 있으며, 이러한 수치스러운 상황은 결코 알려져서는 안되는 극비"라고 말한다. 이러한 상황 묘사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탈영병 문제도 상당히 심각했음을 보여준다.


센조와 오린은 오린의 고향 오바마 바다에 왔다가 결국 헌병대에 잡힌다. 고문 과정에서 센조는 "자신은 부잣집 장남 대신에 징병당해 왔으며, 돈 있는 집은 징병을 다 피했고 고통받는 것은 빈자들뿐이다"라고 고함친다. 이를 통해 당시 징병 역시 가진 자와 없는 자들에게 다르게 작용했음을 알 수 있다.  마지막 면회를 마치고 센조는 결국 사형을 당하(였겠)지만 영화는 그런 스펙터클에 결코 집착하지 않고 절제되어 있다.


마지막 장면에서는 고향에 돌아온 오린 역시 자살했음이 암시되며 영화가 끝난다.


이 영화는 일본이 근대에서 현대로 넘어가던 시기를 살아간 고제 오린의 삶을 전쟁기 시대상과 함께 잘 엮어낸 수작이다. 가히 시노다 마사히로의 최고작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오린을 연기한 배우 이와시타 시마의 시각장애인 연기는 일품이다..!(뿐만 아니라 나머지 고제 배우들도!) 이와시타 시마는 이 영화로 일본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았다고 한다.


이로써 시노다 마사히로 특별전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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