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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미 Apr 28. 2022

왜 안돼?

나도 궁금해

멍하니 졸린 점심시간에 내 자리에서 조용히 양말을 벗고 차가운 대리석 바닥에 발을 대고 있는데 옆에서 대리의 동기이자 친구인 다른 팀 대리님이 "야 왜 회사에서 양말을 벗고 있어~!"라는 한마디에 혼자 입술을 씰룩거리며 있다가 지난 주말 공원에서 제일 많이 들었던 단어가 문득 떠올랐다. 


날이 좋아지기 시작하고 코로나 집합 금지가 해제되고 나니 공원에는 기다렸다는 듯 사람들이 붐볐다. 한국 도시 중에 30-40대가 제일 많이 거주하고 있는 도시라고 언뜻 들었던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모두들 아이들을 데리고 나와 공을 차거나, 스케이트 보드를 타거나, 돗자리를 깔고 식사를 하는 등 정겨운 모습이었다. 


주말은 즐거우나 아직 5일간의 피로를 회복하기에는 토요일 오전은 역시 좀 무리다 싶은 그때에 한 남자아이가 킥보드를 타고 약간은 경사진 내리막길을 내달리다 앞으로 엎어졌다. 다행히 운동신경이 좋은 아이인지 킥보드를 밀어내고 옆으로 도움닫기를 해서 땅에 철퍼덕 넘어지는 일은 면했다. 속으로 "잘 컸네~"라고 생각하고 있을 즈음 뒤에서 엄마가 신경질을 내면서 소리쳤다.


"너 내가 그러니까 내리막길 가지 말랬지!!!!!!!!!!!" 


짜증이 가득한 소리. 


잠깐 생각이 멈추었다가 시간을 잠시 되돌려 5분 전 10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아까 우리 아들이 공을 주으러 간 그곳에 돗자리를 펴고 있던 엄마는 아들 둘을 혼자 데리고 나온 듯한데 상황을 보니 형제가 한 킥보드를 가지고 싸우고 있는 듯했다. 


" 너 그러면 이제 집에 갈 거야, 이렇게 말 안 들으면 집에 가. 가자. 짐 싸자." 라며 큰 아이에게 유독 윽박을 지르고 있었고 아이가 그래도 더 놀고 싶다고 하자 "킥보드 양보하지 않으면 집에 갈 거야."라며 이내 협박을 끝내고 일어나 짐을 싸고 있었다.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니 또래로 보이는 한 친구와 주변에 놓인 조금은 큰 돌멩이들을 가지고 놀던 우리 아이에게 어느새 친구의 아빠가 와서는 "안돼!!"라고 막아서더니 둘째로 보이는 작은 아이를 데리고 와 돌멩이를 가지고 놀았다. "????"


조금은 높다 싶은 담장 위에서 노니는 형아들을 따라 꼬맹이가 기어올라가자 곧이어 그 모습을 보고 있는 내 뒤통수 방향으로 "안돼!!!!!!"가 들렸다. 한번 귀가 뚫리면 답이 없이 계속 집중된다더니 어느새 공원에는 아이들에게 "안돼!!" 또는 짜증 섞인 잔소리를 하는 부모들의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전체는 아니지만 꽤나 자주 여기저기서 많이 들려오는 것을 보자니 이내 내 속이 조금 답답해져 오기 시작했다. 가치관 나름이고 또 내 자식 아니니 이래라저래라 할 생각은 없지만 가끔은 참 그런 소리가 싫어질 때가 있다. 이유는 그 제재가 "왜?"라는 질문을 정당하게 답변할 수 있느냐의 문제였다. 




아이가 아직 말도 못 하는 만 2세 즈음에는 빗물에 발을 참방참방하는 것을 참 좋아했었다. 물이 신기한지 물만 보면 다가가 스윽 지나가도 보고 손으로 그려보기도 하고 그 위에서 우다다다 뛰어보기도 하며 즐거워하길래 비가 오는 날에는 여벌을 챙겨나가 실컷 놀게 한 다음 가까운 거리면 집에 가 씻기고 조금 상황이 여의치 않을 때는 식수로 한번 헹궈주고 여벌 옷으로 갈아입히고는 했다. 


흙탕물과 진흙이 무섭지 않은데 양말을 신고 흙을 밟는 것쯤이야 내게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아서 지인과 카페에서 놀고 있을 때 아들이 신발을 벗고 흙을 밟고 다니는 것을 본 지인이 내게 한 말이 되려 놀라웠다. 


" 언니는 참 대단해. 저걸 보고 가만히 있어? 그러고 보면 진짜 외국 스타일이야."


집에서 사촌들 가족들을 초대한 날 저녁에는 부엌에 들어와 혼자 날계란을 톡톡 까서 휘핑기로 휘휘 젓고 있는 내 아들을 보면서 다들 멈춰 서서 있는 것을 보고 "왜 하고??"물으니 


"대단하다. 부엌에 들어오게 하네?? 나 같으면 계란 만지지도 못하게 할 텐데."


그 대단하다가 사전적 의미의 대단하다가 아님을 난 잘 알고 있다. 아마도 일반적인 모습과는 크게 다르다는 정도 일 것이다. 나는 대단하지도 않고 크게 다르지도 않다. 아이가 위험한 곳이나 위험할 것 같으면 미리 가서 알려주거나 막아서거나 뭐 가끔 그런 경고가 먹히지 않을 때는 나도 짜증을 내고는 한다.


아이의 엄마가 되어 내 자식을 키워오면서 자주 느꼈던 바였다. 유독 짜증이 녹아있는 부모의 말투와 많고 많은 컨트롤. 내가 살아본 곳이 전 세계는 아니고 고작 인간 하나가 느꼈던 느낌과 그 경험이 전체를 대변할 수는 없어도 그래도 내 삶에서 뉴질랜드, 독일, 미국에서 No! Nein!으로 안돼! 를 외치는 상황을 볼 때에는 나 또한 그리했으리라는 상황들이었다. 그리고 그 목소리에는 짜증이 없었다. 상황이 끝나면 제재 또한 끝났었다. 그 모습이 정당하고 합리적이었다. 


주변인들 중 1/3 정도는 나와 비슷하고 2/3 정도는 나와는 좀 다른데, 비슷한 성향의 친구들과는 어딜 가도 큰 스트레가 없다. 아마 감정을 섞지 않는 육아를 하고 있어서일까, 이 부분은 고민을 좀 더 해봐야겠다. 


어쩌면 아직 어릴 때의 기억이 선명하게 남아있어서 또는 워낙에 자유로운 것을 추구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남에게 피해가 가지 않는 한 모든 행동에 "왜?"라는 질문이 어느 정도 충족되지 않고서는 굳이 막아서는 편은 아닌 것 같다. 어느 정도는 더러워도, 다칠 수 있어도 스스로 배우기를 바라는 마음이 나를 너무 안일하게 만들어버려서 위험을 감지 못하는 걸까? 


왜 아주 미미한 경사의 내리막길을 내려다가 잘 착지할 수 있는데도 내리막길에서 킥보드를 타면 안 될까.

또 왜 그렇게 다치면 안 될까. (개인적으로 무릎 정도는 길바닥에 갈고 다녔던 인생이라 아무렇지 않을 수도..)

왜 돌멩이를 만지고 놀면 안 될까.

왜 비에 젖으면 안 될까.

그게 엄마 아빠가 내게 짜증을 내고 소리를 지를 정도로 위험한 걸까?

왜 계란을 만지면 안 될까.

왜 집이 지저분해지면 안 되는 걸까.


"왜 안돼?"



위험방지를 빙자한 부모의 조급한 마음을 없애려 막아서는 것이 진짜 이유가 아닐지, 뒷감당/뒷 처리가 귀찮아서 일단 안돼!를 외치고 보는 건지 나는 아직도 가끔 스스로 고민을 한다. 






망치질도 앙대???


어느 정도는 믿고 알려줘야 아이도 배울 수 있다고 생각을 해서인지 그런 부류의 친구들을 만나면 아이들도 우리도 크게 큰소리 내지 않고 자유롭게 노는 편이다. 그리고 항상 아이들이 우리들이 예상하는 것보다 언제나 능력이 더 많다는 것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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