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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랄라 Jul 07. 2023

저기, 그 미간의 힘겹게 산 흔적 좀 펴주실래요?

<슬픔의 삼각형> 더 명징하게 직조한 처연한 탈계급 우화

"저기, 슬픔의 삼각형 좀 펴주실래요? 그러니까 내 말은, 그 미간의 주름 자국 말이에요"


어려운 상황을 겪고 있는 소년의 성장 휴먼스토리라도 될 것만 같은 제목이지만 슬픔의 삼각형은 사실 계급을 다룬 풍자 블랙코미디 영화다. 


슬픔의 삼각형 주름을 펴달라는 얘기도 주인공인 '칼'이 모델 오디션을 보러 갔을 때 면접관이 던지는 이야기다. 고생이라고는 모르고 자랐을 것 같고 현실과는 거리가 멀어야 할 얼굴에 세월의 흔적과 현실의 고충이 배어있기 때문에 나온 말. 성형외과 홍보 문구에 활용해도 될 것 같네. 주름 펴고 헤프게 보이게 입도 좀 벌려보라는 면접관. 

 


타고난 외모로 지나치게 계급이 갈리는 모델의 세계, 외모뿐 아니라 브랜드의 가치에 따라서도 눈에 띄게 대우가 달라지는 곳이 패션업계. 최근에는 대중의 구매에 영향력을 줄 수 있는 인플루언서의 영향력도 이름 그대로 만만찮다. 이들은 영향력을 미친다고 판단할 좋아요 수치와 팔로워 수만큼 돈을 벌고 자신의 가치를 평가받는다. 


 

그리고 1부가 시작된다. 칼은 인플루언서 여자친구 야야(존예)와 고급 레스토랑에서 파인 다이닝을 즐기다가 다투는데, "네가 나보다 잘 버는데 왜 늘 내가 돈을 내"냐는 입에 담기도 지질한 발언까지 오간다. 툭탁거리고 싸우면서도 서로 사랑하는 두 사람은 인플루언서인 야야에게 들어온 협찬으로 최고급 크루즈 여행을 떠나면서 2부가 시작된다. 



배나 비행기 같은 교통수단(크루즈는 교통수단이 아니지만)이야말로 금액 등급에 따라 계급을 나누고 그에 따라 차별된 서비스를 하는 자본주의의 전형적인 현장이다. 



칼은 계속해서 여자친구의 사진을 찍고, 야야는 먹지도 않을 파스타를 소품 삼아 고가의 크루즈를 즐기는 모습을 게시하며 팔로워를 더 늘려간다. 정방형 밖으로 나오자마자 얼굴에 번지던 화사한 미소가  메기처럼 내려간 입꼬리로 1초 만에 바뀌는 얼굴을 가진 사람과 멀쩡해 보이지만 어딘가 찌질해보이는 인스타그램 업로드용 사진 노예는 현시점, 세계 어디에나 존재하는 것이다. 



배 안의 노인들은 다양한 형태로 부를 축적해 왔는데 돈은 천문학적으로 많지만 홀로 외로운 남자, 무기를 팔기 때문에 세계 곳곳에서 전쟁이 벌어질수록 부를 더 쌓을 수 있는 부부, 자본주의의 이득을 가장 많이 보지만 마르크시즘에 열려있는 노인 등, 사실 영화가 그리고자 하는 건 이렇게 점잖아 보이지만 실은 이들도 제법 추악한 면이 많다, 그냥 똑같이 취약한 인간이라 배가 출렁이면 토하고 늙었기 때문에 약한 장을 가졌다 뭐 그런 것일 수도 있는데, 사실 이 영화의 사르카즘에 동화되어 함께 웃기에 K-1호선을 겪어본 국내 관객으로서 이 노인들은 좀 너무 점잖은 것이 아닌가 뭐 그런 입장이다. 



어쨌든 그러다가 이 크루즈는 좌초되고 마는데, 무인도에 7명만 살아남아 고립되면서 3부에 이르면 계급구조는 변화의 양상을 맞는다. 그 뒤는 뭐 굉장히 놀라운 전개가 펼쳐지지는 않고,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한 전개와 소소한 블랙 코미디인데 지루하지 않고 꽤 볼만하다. 러닝타임이 길다는 걸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전개가 빠르고 재밌는 건 아니지만, 보는 내내 경악과 실소가 존재하고 겪어볼 만한 여행이다 싶은 느낌.  



황금종려상 받기엔 모자란 영화였다는 평이 많고, 기생충에 비해 너무 일차원적으로 캐릭터나 상황을 묘사했다는 평이 많은데, 계급갈등이나 인물을 고의로 노골적으로 표현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의도된 단순함으로 기계적인 느낌을 주고, 자본주의와 문명이 압축된 공간과 문명 없는 공간에서의 차이를 확연하게 우화처럼 보여주려고 했던 것 같다.


몇몇 극단적인 사건(무인도 보스의 남성편력 같은 것)을 제외하고는, 생애 끝자락까지 몰린 상황에서 모두 제법 이성적이고 서로 배려한다. 실제로 인간 군단이 생존 수세에 몰렸을 때, 여러 유사 실험에 의하면 파리대왕처럼 서로를 해치지 않았다,라는 이론도 다정함 생존설 옹호론자들 사이에서는 꾸준히 제기된다. 사람 바이 사람이 아닌가 싶기는 하다. 혹여 무인도에 고립될 일이 생긴다면 좋은 사람들(합리적 성향의 원칙주의자들)과 함께 고립되기를.  


영화관에서 상영 중인 영화지만 왓챠 플레이에서도 동시에 감상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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