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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DAK 노닥 Mar 27. 2023

사진론 -사진가는 뭘 찍는 사람일까

에 대하여

사진은 영혼이 드러나는 예술의 방식입니다.

다른 예술은 영혼이 드러나지 않는단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사진이라는 예술의 방식은 ‘관찰자’의 종합적인 사고와 시각을 솔직하게 표현해준다는 면에서 다른 예술보다는 영혼-친화적 예술의 방식이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무엇을 찍을지 고민하기도 하는데요~ 때로는 뭔가 신기한 느낌에 이끌리기도 합니다.

사진은 다양합니다. 사진은 무궁무진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카메라로 담으려는 현장을 잘 골라낼 필요가 있습니다.

똑같은 현장, 구도, 위치와 시간 속에서 사진을 찍어본다 할지라도 무엇인가 분위기가 다른 까닭이 있습니다. 영혼의 의도가 어떠한지 사진 속을 들여다보면, ‘이건 별로네’ 하고 삭제하는 사진이 있기도 하고 ‘왠지 마음에 드네?’ 하는 사진이 있어서 남겨두기도 합니다.

실제로 라이트룸으로 사진을 보면, 단 1초 차이의 시간을 두고 찍은 두 사진이거나, 그림자의 위치가 조금만 빗겨나가도, 행인의 두 발이 벌어져 있는 정도는 크게 다가와서 하나만을 선택하게 됩니다.

동일한 현장, 그러나 몇 발자국의 차이로 완전히 다른 사진이 됩니다.

사람이 바라볼 때는 의식적으로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양극단을 보려고 합니다.

뇌에서 원하는 자극은 강력한 것입니다. 따라서 현장이 너무 불쾌한 곳이든 유쾌한 곳이든간에 어중간하지만 않는다면 카메라를 들어 셔터를 누를 확률이 매우 높아지는 것입니다.

우리도 똑같은 경험을 해보았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보면, 아침 일찍 일어났는데 뽀얀 침대보 위로 햇빛이 들어오는 장면이라던가, 너무 충격적인 테러의 현장이라던가 그 둘은 분명 차이점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나도 모르게 카메라 렌즈를 들이미는 경우가 있습니다.

절망의 순간이든, 강아지 사진이든 우리 뇌는 양극단에 있는 이미지들을 원합니다.

그러한 영혼의 발자국을 따라가는 것이 바로 사진의 맛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보는 모든 현장 속에서 영혼이 먼저 말을 겁니다. ‘이 사진은 아냐.’ ‘오, 아까보단 낫네.’ ‘최고야.’ 하고 말을 걸면 우리는 셔터를 누릅니다. 내가 취사선택하여 철저하게 계산된 상황으로 피사체를 제어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아주 짧막한 시간 속에서 영혼의 눈이 머무르는 시각 속에서 현장을 포착해내는 비범한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들은 모든 현장 속에서 사진이라는 예술을 가능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개인적인 시각이기는 하지만 나름대로 내 영혼이 집중하고 있는 부분을 포착하기 때문입니다. 사진가는 이러한 영적인 창조성에 기대는 사람들입니다.


앙리 카르티에브레송은 인터뷰에서 에즈라 파운드의 초상사진을 찍은 것을 이야기합니다. 그는 아무 말 없이 파운드와 한 시간 반 가량을 마주보고 있었다고 합니다. 아마도 그의 영혼이 강력하게 끌리는 그 순간과 파운드의 표정이 일치하지 않았기 때문에 오랫동안 기다렸을 것입니다. 그 결과 브레송은 괜찮은 사진 한 장, 그럭저럭 쓸 만한 사진 네 장, 망친 사진 두 장을 건졌다고 합니다(우리의 기준에서 가성비가 참으로 걱정되는 정도입니다).


이 짧은 인터뷰속에서 우리가 집중해야 하는 것은 단순합니다. 우선 사진가는 카메라보다는 영혼에 의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카메라에 의지하는 사진가는 수천장을 연사로 찍고, 가운데 완벽한 황금비율의 사진을 골라내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나 사진을 찍는 예술가가 자신의 영혼이 이끄는대로, 그 시각을 넘기기만 한다면 우리는 아주 긴 시간동안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됩니다. 동호회끼리 다니는 출사처럼 어느 현장에 있었다가 홀연히 사라지고 후다닥 몰려다니는 그런 현장성이 아닌 홀로 고독하지만 피사체와 나만 존재하는(또는 아예 내 존재가 사라지는 듯한) 예상할 수 없는 신비로움을 느낄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에겐 별거 아닌 현장이지만, 그 때로 돌아가보면 생명이란 신기한 것이구나- 하고 어떤 느낌을 받았던 사진들입니다.

제 개인적인 경험이지만, 이런 기도와 수행, 묵상과 같은 시각을 느낄 수 있었던 때가 예전엔 없었으나 오늘날에는 풍부하게 느끼는 중입니다. 한 걸음 떨어져서 자연을 바라보며 여유롭게, 그들의 본질을 살피는 과정에서 찍은 사진들은 다시 보더라도 무엇인가 자랑스러운 느낌이 든다면, 예전에 아주 급박한 순간 속에서 내 정신과 사진의 총 기술을 집약해 만든 사진들은 강렬하지만 한 눈에 보기에는 편하지 않은 그런 대조가 일어납니다.


오늘날, 우리는 사진의 예술방식이 매우 풍부한 시대에 삽니다.

사진가가 크게 늘어나는 것은 매우 환영할 일입니다. 예전에 소수만 누렸던 예술의 즐거움을 다수가 누릴 수 있게 된 것은 인간사의 가장 큰 축복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 영혼과는 끊어진 상태로, 기계적으로 사진을 찍으면 사진가는 창조적인 감성을 발생시킬 수 없으며, 그건 기술이 뛰어나고 현장이 아름답다 할지라도 나에게 별 감동이 없는 사진이 됩니다.

반면, 내 온 정신을 집중하여 영혼이 이끄는 대로 기다리거나 지켜보고 자세히보고 때로는 지나치며 피사체의 삶을 되돌이켜 보는 작업으로 찍은 서툰 사진 한 장은 다시 앨범을 펼쳐보는 나의 마음을 언제나 즐겁게 만들 수 있다는 면에서


사진가는 나의 영혼의 흔적을 찍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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