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9세 소녀의 나 홀로 유학 생활 - #1]
필리핀. 내게는 마치 갓난아이에게 불러주는 자장가처럼 안락함을 선사하는 단어다.
누군가 나의 고향이 어디냐고 물어본다면 자신 있게 첫 번째는 서울이요, 두 번째는 내 마음의 고향 필리핀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만큼 내 몸 안에는 여전히 Pinoy(필리핀 사람을 지칭하는 말)의 피가 있다고 느껴진다. 후덥지근한 날씨, 어딘지 모르게 달큰한 공기 내음, 눈부시도록 푸른 나무들과 풀, 익숙하면서도 낯선 필리핀 문화, 그리고 흥이 넘치는 사람들. 무엇 하나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없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내가 제일 사랑하는 것은 단연 필리핀 음식이다. 필리핀 음식은 우리가 알고 있는 여타 동남아 음식처럼 익숙할 수도 있지만 프랑스 음식처럼 굉장히 이국적이다. 라푸라푸, 시니강, 레촌바보이, 비닉닉, 아도보 등 너무 많은 음식이 있지만 그중 아직도 잊을 수 없었던 충격적인 음식 하지만 이제는 오늘처럼 비가 많이 쏟아지는 날이면 마음 한구석 향수로 남아있는 음식, 참뽀라도를 알려주고 싶다.
2002년 온 국민이 모두 붉은'악마'가 되길 열정적으로 자처하던 시절, 나는 뭣도 모르고 혼자 유학 중이었다. 당시 초등학교 4학년 아직 생일도 채 지나지 않은 만 9세였다. 내가 지내던 곳은 필리핀 가가얀이라는 도시였는데 그중에서도 어떤 산속 굽이굽이 들어가야만 만날 수 있던 작은 마을이었다.
희미하게나마 떠오르는 기억으로는 지프니를 타고 마을에서부터 한두 시간 더 들어가야지만 도착할 수 있었다. 어찌나 마을이 작았던지 옆집은 물론 그 옆, 옆의 옆, 옆의 옆의 옆의 옆까지도 서로 다 아는 사이였다. 나 홀로 유학이었기에 나는 어떤 신혼부부의 집에 맡겨졌다. 일반 가정은 아니었고 기숙 어학원처럼 그 집에서 생활하며 학교도 다니고 개인 과외도 받으며 영어를 배울 수 있는 곳이었다. 아직 아기도 없던 분들이셔서 그랬는지 구불구불 반곱슬 머리의 뽀얗고 통통했던 나를 굉장히 예뻐해 주셨던 기억이 난다. 매일 아침 학교 가기 전 꼭 내 손에 빵 혹은 과일 등 먹을거리를 손에 들려주셨던 행복한 기억도 난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날이었던가? 학교 끝나고 친구들하고 정글북의 모글리마냥 쏘다니며 놀고 있는데 학교 근처에 사는 '마낭 간다'가 우리를 불렀다. 마낭 간다는 필리핀 말 'Manang Ganda'로 예쁜 아주머니 혹은 예쁜 이모라는 뜻이다. "키미! 컴온. 마이 참뽀라도 디또. 막 카인 무나!" 무슨 외계어인가 싶을 수 있겠지만, 키미는 나다. Kimmy. 이 영어 이름에 대해서는 나중에 또 풀도록 하겠다. "May Champorado Dito. Mag Kain Muna". 필리핀어를 발음 그대로 한글로 옮겨 놓았는데 그 뜻인즉 "키미. 이리로 와봐. 여기 참뽀라도 있어. 먹고 가!"란 뜻이다.
그렇다. 여기저기 지칠 줄 모르고 뛰어다니던 천방지축 망아지들을 불러서 뭐라도 먹이려고 하신 것이다. 마낭 간다가 준비한 음식이 바로 '참뽀라도'다. 나를 포함한 학교 친구들을 신나서 마낭 간다에게 뛰어갔다. 마낭 간다는 마치 '올리버 트위스트' 혹은 '사운드 오브 뮤직'에 나오는 장면 마냥 열댓 명의 아이들에게 척척 참뽀라도를 작은 밥그릇에 퍼주셨다. 오 마이 갓. 내 그릇을 받는 순간 난 내 눈을 의심했다. '이게 뭐람...?' 참뽀라도는 바로 초콜릿을 녹여 쌀 혹은 밥과 섞어 만든 초콜릿 죽이었다. 초콜릿과 밥이라고? 나의 만 9년 인생 동안 수 없이 밥을 먹은 후 초콜릿은 먹어보았어도, 나는 당시 매우 퉁퉁했기 때문에 심지어 초콜릿과 밥을 다른 또래보다는 많이 먹었을 것이다, 두 가지를 같이 섞어서 먹을 수 있다는 것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조합이다.
참뽀라도가 담긴 밥그릇을 받고 가만히 앉아서 괜스레 숟가락만 휘적거렸다. 내 옆에 친구들은 웬걸 너무 잘 먹더라. '얘네는 이게 익숙한 건가...? 어떻게 이런 걸 먹지?' 묘한 표정으로 이리저리 살피며 깨작거리는 날 본 마낭 간다는 웃으며 말했다. "Bakit hindi ka kumain?"(너 왜 안 먹어?) "Uhmm.... full na ako"(저 배불러요..) 마낭 간다는 그 무리 중 혼자 한국인이었던 나를 충분히 이해한다는 인자한 미소로 배가 부르면 먹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주셨다. 하지만 그 순간 왠지 모를 죄책감이 내 마음에 가득 찼다. 마치 엄마한테 거짓말을 한 후 두근거리는 마음 같았다.
그날부터 마낭 간다 집 근처에만 가도 고개를 푹 숙여 땅만 보고 걸어간다던지 혹은 쌩 하고 달려갔었다. 가급적이면 가까이 가지 않으려고 했던 것 같기도 하다. 마낭 간다는 모르셨을 수도 있겠지만 만 9세의 어린 한국 소녀는 뭐가 뭔진 몰라도 참뽀라도를 먹지 않은 내 태도가 썩 올바르지 않다는 걸 느꼈던 것 같다. 며칠이 지났을까? 방과 후 집에서 여느 날처럼 선생님과 개인 과외를 하고 있었다. 그날도 비가 왔던 것 같다. 정확히 무얼 공부하고 있었는진 기억 안 나지만 돼도 안 되는 영어로 나 혼자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쫑알대고 있었던 것 같다. 그때 우리 집에서 일을 하던 아떼가 간식이라며 두 개의 밥그릇을 갖다 줬다. 어머, 참뽀라도였다. 선생님은 함박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여기서부터는 편의를 위해 한국어로 쓰겠다. "키미, 먹어봐. 이게 참뽀라도라는 필리핀 음식인데 비 오는 날에 먹곤 한단다." 난 선생님에게서 엄마와 같은 포근함을 느꼈기 때문에 가감 없이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이거 초콜릿 밥 아니에요? 초콜릿 하고 밥이라니. 웩! 절대 같이 못 먹어요!" 그러자 선생님은 먼저 한 입을 드시며 "생각보다 굉장히 맛있어. 한번 도전은 해봐. 너도 분명 정말 좋아하게 될걸?"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던 나는 선생님이 드시는 것만 계속 쳐다보면서 어린 마음에 괜히 더 과장하면서 말했다. "엑? 선생님 진짜 그게 맛있다고요? 우욱, 전 절대 못 먹을걸요!" "그럼 키미 너꺼도 내가 먹어야겠다." 그런데 어린아이는 어린아이였던지 괜히 내 것을 뺏기긴 싫었다. "아니! 지금 이제 한번 먹어보려고 했어요. 제거는 제가 먹을 거예요!" 보여주기 식으로 한 입을 크게 먹었다. 입안에 넣자마자 평소 먹던 초콜릿의 단맛보다는 코코아에 가까운 맛이 사악 퍼졌다. 밥알들도 전혀 이질적이지 않았다. 맛있었다. "잉? 이거 맛있잖아?" 작은 눈을 크게 떠 선생님께 말하니 선생님도 아떼도 흐뭇하게 웃어주셨다. "거봐, 맛있지? 비 오는 날에 이런 걸 먹으면 기분도 좋아지고 추운 몸도 녹여주고 좋지." 선생님께서는 내가 참뽀라도를 다 먹을 때까지 잠시 휴식시간을 주시겠다며 천천히 먹으라고 하셨다.
그날 몇 그릇을 아마 더 먹었던 것 같다. 그리고 시간이 갈수록 비 오는 날에는 참뽀라도를 먹어주는 것이 당연한 일상이 되었다. 고등학교 때도 비가 오는 날이면 학교에서 친구들과 '아, 오늘 같은 날 참뽀라도나 먹으면서 하이스쿨 뮤지컬 보면 딱인데...'라고 떠들었을 정도니 말이다. 이렇듯 누군가에게는 낯설고 상상조차 안 되는 조합의 음식이 나에게는 익숙하고 또 향수까지 불러일으키게 됐다. 참뽀라도. 아마 이 음식이야 말로 내 몸 어딘가에는 피노이의 피가 흐르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음식이 아닐까?
이 글을 쓰는 이 순간 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바람까지 불고 어두컴컴하니, 참뽀라도나 한 그릇 만들어 먹으면 딱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