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호텔 월드 브랜드 이야기 + 투숙기
올림픽이 열리면 호텔 매출은 높아진다.
지금이야 코로나 상황이라 무관중으로 진행이 되었지만, 올림픽이 개최되면 각국에서 사람들이 몰려든다. 이 때 그들을 수용할 만한 숙박시설 즉, 호텔의 역할이 중요해진다. 실제로 88올림픽이 서울에서 개최되는 것이 확정 되었을 당시, 서울엔 해외에서 넘어오는 예상 관광객들을 품을 호텔의 수가 턱없이 부족했다.
그래서 88올림픽 개최 시점에 맞춰서 호텔들이 쭉쭉 들어서기 시작하는데,
그 중 하나가 오늘 이야기 할 ‘롯데호텔월드'이다.
30년이란 세월이 넘게 우두커니 잠실을 지키고 있어서 였을까, 솔직히 나는 이 곳을 ‘그저 오래된 곳’이란 생각 밖에 없었다. 그런데 약 두 달 전, 새로운 모습으로 단장을 하고 리뉴얼 오픈을 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한가지 이상하단 생각이 들었다.
가만 생각을 해보니 우리나라 토종 호텔 브랜드들 중 30년 넘게 유지가 된 곳은 신라와 롯데 뿐이었다. 신라는 서울과 제주 총 2개 지점이지만 롯데 호텔의 경운 총 30개가 넘는 지점을 운영하고 있다. 그 중 2번째로 올라간 호텔이 바로 이 곳, 롯데호텔 월드였다.
심지어 88올림픽 개최하기 직전에 오픈 한 이 곳은 여러모로 의미가 있는 장소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왜 33년이나 지나서 리뉴얼이 진행 되었을까. 그리고 어떻게 바뀌었을까.
호텔을 세우기 위해 호텔을 100여군데 넘게 돌아다닌 나에게 상당히 흥미로운 글감이다.
그래서 직접 투숙을 해본 후, 어디서 볼 수 없는 재밌는 스토리를 글로 담고 싶단 생각에 관계자분들과 이야기도 두 차례나 나눠보았다.
그래서 오늘은 한 호텔 브랜드의 변천사 과정을 보면서,
과거의 이 곳은 어땠는지, 바뀐 현재는 어떤 모습인지
그리고 그 동안 어떻게 운영을 해왔는지
한 호텔의 전체적인 흐름을 다뤄보고 싶었다.
하도 이렇게 길게 글을 쓰면 '돈 받고 쓰는 글 아니냐'라는 말이 많아 미리 말한다.
돈 받고 쓰는 글 아니다. 오해 없길.
호텔 세우고 싶은 사람으로써 나에겐 이 글 자체가 하나의 수첩이 된다.
아무튼, 이번 글을 쓰면서 크게 느낀 것은 모든 것엔 상황과 맥락이 있기에 하나의 브랜드를 단편적인 시각이 아닌 입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힘이 생겼다는 것이다.
그래서 브랜드를 사랑하는 분들께서
브랜드 기획, 디자인, 마케팅 할 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그럼 잠시 30여년 전으로 시간을 돌려보자.
롯데호텔 월드가 세워져 있는 잠실. 이 동네만큼 얼굴을 여러번 바뀐 곳도 드물 것이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자료에 따르면 뽕나무가 무성하였던 이 곳은 조선시대 궁중에서 양잠을 장려하여 뽕밭으로 조성한 곳이라 한다. 그래서 누에를 치는 방이라 하여 ‘잠실'이란 지명이 생겼다는 것도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러나 누에 치던 곳은 1970년대엔 ‘모래섬'이 된다. 당시 잠실의 가구 수는 260가구. 비가 내리기만 하면 90%가 침수되는 지역이라 사람이 거주할 만한 환경이 아니었다. 지금에 비하면 현저히 낮은 숫자이다. 그런데 이 곳을 잠실지구를 문화, 체육의 현장으로 탈바꿈하고자 하였다.
당시 서울시 도시계획국장 이었던 손정목 씨 회고에 의하면
“잠실지구에 국제경기를 치를 수 있는 운동장(지금의 종합운동장)을 건설하고자 했던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서울에서 치르기로 되었던 1967년 아시아 게임이 당시 서울엔 경기를 치를만한 시설이 없단 이유로 방콕으로 넘어간 수모를 극복하기 위함이지 않을까 짐작해본다.”라고 작성이 되어 있다.
그렇게 잠실쪽으로 흐르던 한강을 메우며 물길을 돌리고 나니, 1,452만km2 라는 엄청난 규모의 면적이 생겼다. 문제는 지금부터였다. 이 곳에 대규모 관광,문화시설을 만들기 위해 뛰어든 율산그룹(당시 3-4년 만에 삼성,대우,현대와 어깨를 나란히 했던 기업)은 부도위기를, 그리고 이어서 가려했던 한양쇼핑도 위기에 빠졌다. 이 곳을 개발하고 운영할 수 있는 곳이 거의 없었다.
그러다 눈에 들어온 롯데. 때마침 롯데 신격호 회장은 이런 고민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을지로에 있는 롯데호텔(본점)은 더이상 확장 할 수 없다. 우리나라는 주말, 특히 일요일(당시 주6일 근무)에 가족과 즐거운 시간을 보낼 공간이 필요하다.’
항상 ‘최초'를 열망했던 신격호 회장.
1970년대 동양 최대의 마천루를 만들겠다던 그의 꿈은 롯데호텔의 본점으로 완성되었다. 롯데쇼핑센터와 연결된 이 곳. 개점 당일 30만명이 몰렸다고 할 정도이다. 첫번째 ‘최초'를 만들어낸 것이다. 그리고 이어서 허허벌판이었던 잠실 땅을 본 그는 ‘두번째 최초'를 준비하기로 마음 먹는다. 그 최초는 바로 ‘그 동안 볼 수 없었던 최대 규모의 실내 테마파크’였다.
잠실에서 가족들이 편히 놀고,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을 짓고자 했던 롯데. 그러나 위치는 잠실.
강남도심에서 멀리 떨어진 외곽지역인데다가 방문객도 적기에 뭘 해도 실패할 것이란 여론이 대부분이었다.
사업 타당성을 검토하던 도중 발견한 캐나다의 어느 한 실내 테마파크 시설. 그리고 이 곳은 잠실의 운명을 바꿔 놓는다. 캐나다의 이 시설이 신격호 회장이 생각했던 것과 비슷하단 것을 확인하고 ‘우리도 할 수 있겠다'라며 사업에 대한 희망을 얻게 된다. 때마침 88올림픽이 서울에서 개최되는 것이 확정된 상황.
그리고 1989년.
뽕밭이었던 동네가 세계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었던 대규모 복합생활문화 공간으로 다시 태어났다. 호텔, 테마파크, 백화점, 수영장, 스포츠 센터가 한 자리에 터를 잡았으며 현재 세계 최대 실내 테마파크로 기네스북에 등재가 되어있다. 하지만 이 모든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특히 ‘롯데호텔 월드'가 말이다.
88올림픽 개최는 88년9월17일. 롯데호텔 월드 목표 개관일은 88년8월24일.
이 때 당시, 지금처럼 서울에 호텔이 많지도 않거니와 올림픽을 보러 오는 외신, 관광객들을 모두 수용할 수 있는 호텔이 없었던 때라 롯데호텔 월드는 ‘반드시' 88올림픽 전에 세워져야만 했다.
공사 중 허가 문제로 인해 7개월 동안 공사가 중단되기도 하고, 88올림픽 개최 한 달 밖에 안남았는데 호텔 정문엔 건축자재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던 상황. 시간은 부족하고, 속도를 높여야 하지만 그와 동시에 완벽하고 안전하게 지어야 했다. 목표 개관일 하루 전인 23일. 엎친데 덮친 격으로 올림픽 기간 동안 이 곳에서 투숙예정이었던 미국 방송사 NBC 직원들이 23일에 한국으로 들어 와버렸다. 하지만 아직 호텔은 호텔인근 보도블럭도 제대로 안깔려 있었다. 그야말로 최악이었다! 모두가 제 때 개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입을 모았다. 다른 롯데월드 시설 공사는 중단하고 모든 인력을 롯데호텔 월드에 투입.
그 결과. 88올림픽 개최 10일 전, 드디어 전관개관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롯데호텔 본점과 롯데호텔 월드의 총 객실 수는 1,852실. 세계 10위권 규모로 자리매김 할 수 있었다. (내부적으론 본점을 ‘큰 집', 롯데호텔 월드를 ‘작은 집'이라 표현한다.) 이후, 제주도에 롯데호텔이 생기며 공격적으로 롯데호텔의 지점이 늘어나기 시작한다.
그리고 가장 최근, ‘언제까지 우리나라가 고궁만 보여줄 것인가'라며 또 한 번의 ‘최초'를 만들어 낸다. 그건 바로 초력셔리 호텔 시그니엘이 있는 롯데타워. 이 타워는 2019년 기준 1억명이 방문했다.
이렇게만 보면 롯데호텔 월드는 본점 못지 않게 롯데호텔 계열에서 상징적인 곳 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더욱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도대체 왜 33년 동안 리뉴얼을 진행하지 않고 운영을 해왔던 걸까.
필자 : 다른 호텔들은 5~10년이면 작게라도 리뉴얼을 시작하기 마련인데, 무려 33년 만에 리뉴얼을 진행한 사연이 있나요?
롯데호텔 월드 관계자 : 큰 집과 작은 집, 과거엔 이 둘 밖에 없었지만 롯데호텔 월드 이후로 롯데 제주, 울산, 시그니엘 등 롯데호텔들이 쭉쭉 생겼습니다. 큰 집에선 럭셔리 파트를 맡고 있고 동생뻘인 롯데 제주는 가족휴양 파트를 맡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사람들이 더 많이 몰리는 곳을 집중적으로 시설 개보수 하는게 회사 운영 차원에서도 유리하다보니 ‘큰 집'과 ‘제주' 그리고 새로 생기는 곳에 더 많은 손길이 가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렇게 ‘작은 집'의 시설은 점점 노후되고 입지가 애매해졌죠.
이미 10년 전부터 ‘리뉴얼'에 대한 이야기는 나왔었습니다. 그러나 ‘언제'할 것인가에 대해 타이밍을 계속 놓치는 바람에 뒤로 밀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작년 코로나가 터지고 ‘지금이다! 지금 놓치면 앞으로 못한다!’라는 생각에 리뉴얼을 빠르게 추진하게 되었습니다. 리뉴얼이 확정되었을 때 롯데호텔 월드 동료분들께서 환호성을 질렀던 장면이 떠오르네요(웃음)
사실 롯데호텔의 둘째인 롯데호텔 월드를 잠시 놔둔채 다른 곳에 신경을 쓰게 된 이유가 따로 있었다. 일단 이 곳의 위치는 잠실이다. 잠실 땅 값이 많이 오르면서, 지역주민들의 소비력도 덩달아 높아졌다. 이는 자연스럽게 ‘럭셔리'에 대한 수요상승에도 영향을 미친다.
그러다 보니 주말과 같이 쉬는 날엔 가족들이 좋은 곳에서 좋은 경험을 하며 하루를 보낼만한 곳을 찾게 되었고, 최적의 장소가 바로 ‘롯데호텔 월드' 였던 것이다.
게다가 어린아이를 동반한 가족단위의 고객들이 좋아할만한 강력한 요소를 하나 갖추고 있었다. 그건 바로 ‘롯데월드.’ 그 덕에 롯데월드 패키지, 아쿠아리움 패키지 등 투숙객들에게 다양한 프로모션을 제공 할 수 있단 장점도 있었다. 잠실이란 지리적 이점과, 롯데월드의 효과로 인해 이 호텔은 무난하게 운영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이것도 옛날 이야기.
세월이 점점 흐를 수록 새로운 글로벌 체인 호텔들이 들어오기 시작하고, 특색있는 호텔들도 많이 생겨나면서 롯데호텔 월드의 약빨은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이들은 돌파구를 찾기 위해 새로운 시도들을 계속해서 하고 있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잼라이브'. 요즘이야 라이브 커머스에서 호텔 프로모션을 판매하는 것은 대중적으로 변하였지만, 불과 1년 전만 해도 특급 호텔이 잼라이브와 같이 라이브로 무언가를 함께 협업한 사례를 찾아볼 수 없었다. 롯데호텔 월드에겐 이건 새로운 시도이자 업계 최초의 시도였다.
'롯데월드,아쿠아리움' 등 다양한 어트랙션을 엮을 수 있고, 영유아를 동반한 패밀리 고객들을 사로 잡을 수 있는 키즈룸까지 모두 갖춰져 있을 뿐만 아니라, 최초의 호텔 라이브라며 잼라이브 측에 제안을 했고 이들은 OK를 외쳤다. 그리고 현장 답사 당일. 잼라이브 측 담당자가 30년전 갬성의 객실을 보고 나더니 머쓱해 하며 ‘혹시.. 다른 객실 없나요?’ 라고 하기도 했단다.
대체 어땠길래 하고 찾아보니, 그 반응이 왜 그런지 살짝 이해가 간다.
그래도 잼라이브 협업 당시 다행히도 동시접속자 3만5천여명을 기록했다.
이 외에도 롯데호텔 월드는 88년 올림픽 당시의 시설을 가지고 새로운 무언가를 하려고 하니 제약조건들이 많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3년간 꾸준히 견뎌온 롯데호텔 월드.
33년이 지난 지금은 어떤 모습으로 변신을 했을까.
사실 나도 이게 가장 궁금해서 이 곳을 방문했다.
이제 객실로 넘어가보자.
10년 넘게 살던 집에서 더 나은 집으로 이사를 가던 때가 있었다. 더 좋은 환경으로 가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괜히 마음 한 켠이 찡했었던 기억이 있다. 새로운 환경에 대한 설렘과 오랜 세월 함께 했다는 공간에 정이 붙어서 였을까.
오랜 세월을 함께 한 공간을 새롭게 바꾼다는 것은 좋은 일이기도 하지만 맘이 괜히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롯데호텔 월드가 세워졌을 당시 2,30대 였던 사람들. 이를테면 우리 부모님 세대들에게 이런 감정이 들지 않을까 싶었다.
그래서 롯데호텔 월드측에서도 고민이 많았을 것이다. 과거의 모습을 어느정도로, 얼마나 남겨야 하며 현대적인 모습은 또 얼마나 적용을 해야 할지. 그러면서 롯데호텔 월드만의 색은 유지를 해야 하는데 어떻게 풀어나갈지 말이다. 그래서 직접 가보았다. 내가 투숙했던 객실은 ‘스위트룸'이었다. 굳이 스위트를 선택한 이유는 간단하다. 호텔에서 자기 브랜드의 색을 찐하게 녹여내는 객실 타입이 바로 스위트룸이기 때문이다. 객실 문을 열어보자.
한 때 미니멀한 인테리어가 뜨기도 하고, 요즘은 미드 센츄리 디자인이 트렌드 물결을 타고 있다. 이렇듯 각 시대를 대표하는 인테리어 유행들이 있다. 그렇다면 90~00년대는 어땠을까. 바로 ‘체리몰딩'이다. 몰딩은 가구의 테두리나, 창틀을 감싸는 장식을 뜻한다. 지금은 ‘공포의 체리몰딩'이라며 어떻게든 가리기 바쁘지만, 놀랍게도 과거엔 럭셔리함의 상징이었다.
어떻게 이게 럭셔리함의 상징이었나 싶겠지만, 체리 이전엔 ‘옥색’ 이었다. 심지어 ‘대유행'한 나머지 대부분의 집에 옥색이 하나쯤은 있을 정도 였다. 주택에서 아파트로 주거형태가 급변하던 당시, 보편적인 옥색에서 벗어나 고급스러움을 강조하기 위해 당시 아파트 브랜드들이 체리색을 사용하여 90~00년도에 유행처럼 퍼져 나갔다.
호텔 또한 디자인 트렌드에 많은 영향을 받는 공간이다. 그럼 약 30년 전에 올라간 호텔들은 어땠을까. 고급의 끝을 달리는 시설이기에 체리색을 피해갈 수 없었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당시에 지어진 5성급 호텔들을 보면 모두 ‘체리색'을 갖추고 있다.
아래 사진 중 왼편에 있는 웨스틴조선(국내에서 100년 역사를 지닌 곳. 현재는 신세계가 운영)은 현재까지도 그 모습을 확인 할 수 있다. 하지만 호텔에서 접하는 체리색은 정말 말 그대로 ‘럭셔리함’이 전해지며 심지어 ‘중후한 멋' 마저 느껴진다. 최근 호텔들이 ‘럭셔리&화려함'을 강조할 때 접근하는 디자인과 비교해보면 그 차이를 확연하게 알 수 있다.
롯데호텔 월드 또한 마찬가지.
만일 완전히 180도 달라져서 새로운 호텔이란 느낌이 들었다면 아마 섭섭 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객실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반가운 마음이 앞섰다. 객실엔 ‘체리색'이 곳곳에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공포의 체리몰딩'을 과감히 다 뜯어 버렸을 수도 있었지만, 과거의 흔적을 지우지 않고 현대적인 모습과 어우러지는 방법을 고민했다는 것이 느껴져 새삼 감동을 받았다.
유행을 쫓지 않고 30년이란 세월을 강점으로 내세운 듯한 객실의 분위기는 가히 인상깊다. 그 덕에 아무나 따라할 수 없는 ‘멋'을 느낄 수 있다. 이 곳에 있으니 조예가 깊은 어른이 된 기분이 든다.
그리고 창 밖을 바라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여기서 일주일 정도 쉬었다 가고 싶다..
호텔을 세우겠단 꿈을 이루기 위해
1년간 100여군데 넘는 호텔을 다녔지만 이런 디테일은 처음 봤다.
기술의 발달과 가전의 발전은 우리의 주거공간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호텔까지 그 영향이 이어진다. 최근 몇 년 전부터 호텔들은 객실 안에 디지털 기기들을 비치해두기 시작했다. 여기서 말하는 디지털 기기는 TV, 오디오 등을 뜻하는게 아니다. 하루 동안 머물면서 생활편의를 높여주는 디지털 기기들을 의미한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음성으로 객실의 조명, 커튼개폐 유무, 음악 재생, TV on/off 등 객실 전체를 컨트롤 하는 기기가 있다. 현재는 KT ‘기가지니'를 활용한 호텔들이 생기는 추세이다. 그리고 보통은 이정도로 그치기 마련이다. 그러나 롯데호텔 월드는 마음을 단단히 먹은 듯 하다.
이 곳에선 어떤 하루가 가능한지 묘사를 하면 다음과 같다.
카드키를 찍고 객실 문을 연다. 그리고 ‘지니야 오늘의 음악 틀어줘' 라고 외친다. 자연스럽게 흘러 나오는 음악과 함께 밖에서 입고 있던 옷을 샤워 가운으로 갈아 입는다. 여름철 너무 더웠던 나머지 땀이 베어 있는 것 같은 옷. 다음 날 같은 옷을 입고 체크아웃을 해야 하는데 찝찝하다. 객실 안에 있는 스타일러로 다가간다.
옷을 스타일러 안에 넣어놓고 새 옷 입은 것 같이 개운하게 만든다. 20분이면 충분하다. 이제 좀 편히 쉴 수 있을 것 같다. 호텔 객실 안엔 먼지가 많을 수 있으니 공기청정기를 켜놓고 안마의자로 향해 터벅터벅 발걸음을 옮긴다. 그리고 몸을 맡긴다. 이것이 진정 휴식인가 싶은 순간이다. 녹아내린다.
보통은 스타일러면 스타일러 하나, 안마의자면 안마의자 이렇게 하나씩만 객실에 비치 되어 있는 경우는 있었다. 하지만 또 다른 ‘최초'를 보여주기 위해서 였을까. 이렇게 투숙편의를 200% 높여주는 디지털 기기들이 한 곳에 모여 있는 경우는 없었다. 물론 스위트룸에서만 경험할 수 있지만 이는 꽤나 의미있는 경험이다. 왜냐하면 호텔이 하룻밤 즐겁게 먹고 자고 하는 곳에서 한층 더 나아가 ‘체험형 쇼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일상생활에 밀접하게 사용되는 가전 제품의 경우, 우리가 오프라인 매장에서 몇 번 만져보고, 온갖 리뷰 유튜브를 찾아본다고 한들 실제로 사용을 했을 때 어떤지는 감을 잡을 수 없다. 하지만 호텔에서 최소 하룻 동안 그 가전제품을 경험할 수 있다면 어떨까.
마치 내가 스타일러의 필요성을 전혀 못느끼고 있다가 이 곳에서 스타일러의 힘(?!)을 알게 된 것 처럼 제품과 브랜드를 각인 시킬 수 있다. 가전제품 회사가 직접 스테이/호텔을 세우기 어렵다면 호텔들과 손을 잡을 수도 있다. 이렇게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제안 하는 공간으로 영역을 넓힐 수도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들었다.
앞서 살펴보았듯 33년만에 새 옷을 갈아 입어서 자신감이 UP 된 롯데호텔 월드.
그러나 우리가 여기서 잘 살펴봐야 할 것은 지금의 '외관'이 아니다. 시설이 타 호텔에 비해 노후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33년간 잘 이끌어 왔다는 것이다. 그런 와중에 2018년엔 흑자전환까지 했으니 놀라운 일이다.
그래서 여쭤보았다.
필자 : 호텔에서 ‘시설'은 투숙경험의 상당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떼어놓고 갈 수가 없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운영을 잘 해올 수 있었던게 너무 인상깊습니다. 이렇게 되면 ‘시설'이 분명 중요한 요소이긴하나, 절대적인 요소는 아니란 생각이 드는데요, 롯데호텔 월드는 그 동안 어떻게 악조선 속에서도 영업을 이어올 수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롯데호텔 월드 관계자 : 음 문득 이런 생각이 드는데요. 예를 들어, 집 근처 순두부 음식점이 있다고 해봅시다. 그 음식점의 위치, 시설, 주차공간, 청결도 등 중요한 요소들이 물론 많겠지만 무엇보다 순두부의 맛이 좋으면 계속해서 생각나고 방문하게 됩니다. 호텔도 마찬가지 입니다. 최소 하루동안 머물며 투숙객이 불편함을 느끼지 않게 꼼꼼히 신경쓰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희가 가장 중요시 여기는 것은 ‘우리의 자리에서 기본적인 것을 제일 잘하자' 입니다.
여기서 3대 기본 요소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서비스, 음식 맛, 시설입니다. 이 3가지만 잘하면 아무것도 안해도 된다 생각합니다. 그러나 롯데호텔 월드는 ‘시설' 측면에선 상대적 불리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저흰 서비스와 음식 맛에 더욱 집중을 했습니다. 이를 위해 저희가 선택한 것은 ‘고이지 않게 계속해서 움직이는 것' 이었습니다.
그렇다. 처음엔 '뭐야? 당연한 소리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생각을 해보니 우리나라 3대 호텔레스토랑인 '라세느'가 자리잡고 있었다. 보통 시그니처 메뉴 하나가 정해지면 쭉 밀고나가기 바쁜데, 이 곳은 시즌에 따라 메뉴를 달리 하고, 새로운 메뉴 개발에 계속해서 박차를 가했다고 한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소문에 의하면 호텔 조리/식음 쪽은 '군기'가 상당히 빡세기로 유명하여 새로운 시도를 오히려 잘 안할 것 같단 편견이 있었다. 그러나 롯데호텔 월드는 사뭇 달랐다. 조직을 유연하게 만들기 위해서 해외파견, 명령보단 소통 중심 커뮤니케이션, 한 곳에 오래 머무르지 않게 하는 인사시스템 등 여러 가지를 시도하고 있었다.
100여군데 넘는 호텔을 다녔지만 유독 롯데호텔 게열의 호텔들의 직원분들은 더욱 '친절'했다.
오히려 살짝 부담스러웠던 경험이 많다. 하지만 그 부담스러움, 썩 나쁘지만은 않았다.
아.. 잠깐만 글 쓰다보니 또 뭔가 분량조절 실패의 냄새가 난다.
호텔에 가면 늘 시간에 쫓기며 체크아웃을 하듯 이번 글 또한 그렇게 일단락을 지어야 겠다.
이렇게 오늘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체인을 가지고 있는 롯데 호텔의 둘째인 롯데호텔 월드의 33년 전 그리고 현재 모습까지 살펴보았다.
훗날 내가 정말 호텔을 세우는 그 날 까지, 계속해서 호텔을 돌아다닐 것이다.
그러면서 깨달은 것, 생각나는 것들을 여러분들에게 나눌 것이다. 호텔 안에도 반짝 영감을 주는 인사이트들이 있기에, 오늘도 난 호텔로 발걸음을 옮긴다.
저..드디어 책 출간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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