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갑자기 식집사.
미세먼지 가득한 공기를 뚫어내며 파릇파릇한 이파리들이 내 마음을 흔들던 어느 날(미세먼지 빼면 난 봄이 좋다)
”엄마아~.“
“응. 잘 다녀왔어? “
“엄마, 엄마. 나 이거 키워야 해. 관찰 일기 써야 해.”
“으응? 그게 뭘까아?”
키우는 건 우리 아이들이면 충분한 내 귀에 온몸으로 거부하는 단어가 들려왔다.
“강. 낭. 콩.”
“관찰.. 일기 써야 한다구?”
“응. 이거 싹 틔어서 화분에 심으면 훨씬 더 잘 자란데. 난 그렇게 할 거야.”
“그래. 그럼 이 강낭콩은 윤아가 키우는 거야.”
“응! “
그렇게 하루가 가고 이틀이 지나고 일주일이 지나도 강낭콩에게서는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밑에 깔아 둔 솜에서 곰팡이만 포올폴 잘 자라날 뿐.
“흑. 엄마, 나 이제 어떻게 해? 관찰일기 못쓰는 거야?”
“으응? 여유분 더 없니? 이번엔 물 말고 흙에서 키워보면 안 될까? “
“없어. 없다구. 이게 전부라고오오. 그리고 흙에서 키우다가 실패하면 어떻게 할 건데. ”
마치 싹이 트지 않은 이유가 나 때문인 것처럼, 세상에 강낭콩과 자기 둘 뿐 인 듯 그렇게 서럽게 울어재꼈다.
아, 나의 인내심이여. 힘을 주소서.
오랜만에 집에 들르신 할머니께서 가만히 듣고 계시더니
온 동네를 뒤져 결국 강낭콩을 구해오셨다.
두 번 다시 이 오해를 사지 않으리라는 다짐을 (왜 내가 그 다짐을 하는 것인가.) 하면서
“이번엔 엄마도 같이 키울 거야. 엄마는 흙에서부터 키울 거야. 내 거 싹 나도 탐내지 마. 안 줄 거야. 넌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 “
“그으래. 이번엔 나도 제대로 키울 거야.”
마치 경쟁이라도 붙은 듯 우리는 각자 자기의 강낭콩을 키우기 시작했다.
아쉽지만(내가) 윤아의 콩에서도 싹이 트기 시작했고, 나의 강낭콩 역시 싹을 틔우기 시작했다.
한 번 싹을 틔우니 눈에 보일만큼 빠른 속도로 자라나기 시작해 하루 만에 키가 5센티 넘게 자라기도 했다.
너무 빠른 속도가 신기해 타임랩스로 찍어보기도 했는데, 새싹이 기지개 켜 듯 쭈우욱 크더라.
아무튼, 그렇게 윤아의 강낭콩도 화분으로 옮겨 심어주고, 두 화분 모두 베란다에서 잘 키우고 있었는데..
약 열흘 뒤쯤
“엄마 학교 다녀왔습니다. 엄마, 엄마, 엄마. 나도 이거 가져왔어.”
“뭔데에?”
기대 반 불안감 반으로 물었다.
“짠! 내 건 세 개야. 세 개 모두 싹이 나서 이~만큼 자랐어.”
강낭콩이었다.
아.
기억났다.
큰아이가 강낭콩을 들고 온 그즈음 작은아이는 학교에서 각자 이름을 쓰고 무엇인가 키운다고 했었다.
학교에서 뭔가 키우겠거니 했다.
사실 귀에 담아 듣지 않았다.
아, 이로써 우리 집 강낭콩 칠 형제는 옮겨심기 두 번, 지지대도 꽂아주며 꽃도 피고 꼬투리도 났다.
베란다 한 켠에 강낭콩 형제들이 오밀조밀 모여 있으니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다.
비가 자주 오는 습한 날이면 흙에 수분이 너무 많이 썩진 않을까 노심초사.
힘이 없어 축 처져 보이는 날엔 햇빛을 보지 못해 기운이 빠진 건 아닐까 걱정하며 이사도 시켜주고.
덕분에 하루하루 흘깃거리며 체크해야 하는 녀석들이 늘었다.
그렇게 열매만 맺으면 끝나는 줄 알았는데..
둘째와 함께 하교하던 어느 날,
“엄마, 여기 구경해보고 싶어.”
아이가 가리킨 손 끝엔 파릇파릇한 식물들이 가득한 꽃집이 있었다.
아.
식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