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불편한 동거는 약 2년 전부터 시작되었다.
코로나로 인해 집에 함께 있는 일이 많아지고, 나 역시 하던 일을 그만두고 새로운 곳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나의 가치관은 점점 바뀌어 가고, 엄마와 소통은 줄어들었다.
김창옥 교수가 말하기를 부부관계는 "로또"와 같다고 했다.
"진짜 안 맞아!"라는 추임새는 내 머릿속에서 종소리가 울려 퍼지게 만들었다.
왜냐면 엄마랑 내가 로또였거든.
엄마는 나를 낳았고, 나는 엄마 배에서 태어났는데, 탯줄로 연결됐던 두 사람이 안 맞아도 어쩜 이렇게 안 맞을 수 있을까. 엄마의 딸로 살아온 시간이 40년인데, 내내 안 맞았다. 엄마를 이해하는 게 세상 가장 어려운 숙제다.
사건의 발단은, 오랜만에 맛있는 점심을 먹고 싶어서 새로 생긴 이탈리안 레스토랑에 갔다. 어떤 메뉴가 맛있을까? 엄마가 좋아하는 건 뭘까? 배는 얼마나 고프실까? 메뉴를 고르고 오랜만에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사이드 디쉬가 서빙되었다.
출출한 배를 부여잡고 메뉴가 채 나오기도 전에 '피클' 접시가 비워졌다. 그와 동시에 메뉴가 서빙되고,
"저기, 피클 좀 더 주세요."
"아, 고객님. 저희가 오늘이 첫 정식 오픈일이라 피클의 양을 제대로 맞추지 못해 피클이 모두 소진되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점원이 두 손 모아 공손히 허리를 숙인다.
"아니, 음식점에 피클이 없다는 게 말이되요? 밥집에 김치 없다는 거나 마찬가지 아니오? 난 피클 없으면 밥을 못 먹으니까 당장 피클 갖다 줘요. 아니면 이 음식 가지고 가던가." 엄마가 마치 미운 7살이 된 것처럼 떼를 쓴다.
"아, 그럼 손님. 저희가 죄송한 마음으로 탄산음료라도 서비스로 드리면 어떨까요?"
"아니, 난 피클이 있어야 음식이 넘어가니까 피클 당장 줘요."
점원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우물쭈물거리다가 카운터로 갔다. 그리곤 곧
"손님, 피클이 없어서 언짢으셨다고요, 죄송합니다. 저희가 수량을 제대로 맞추지 못했습니다. 지금 바로 피클 사러 갔으니까 곧 드리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점원이 거듭 사과를 한다.
주변은 한순간 고요해졌고, 나는 점원에게 괜찮다는 눈짓을 보냈다. 그리곤 양 옆 테이블의 눈치를 모른 척해가며 엄마에게 피자를 담아 드린다. "엄마, 이거 맛있을 것 같아."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이게 전부였다.
나는 이 황당한 상황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마치 어린아이가 이것 달라고 떼를 쓰듯 점원에게 짜증을 내는 것처럼 보였다. 정말 피클이 있는데 주지 않는 거라고 생각했을까? 아니면 오후 영업을 위해 남겨둔 피클이 있을 거라 확신하고 융통성을 발휘하여 점원이 가져다 주기를 바라셨을까? 오만가지 경우의 수를 계산해보는 그 가운데에서도 피클의 준비한 수량이 다 떨어졌다고 하니 어쩔 수 없네. 오늘은 아쉽지만 이걸로 대신 먹어야겠다. 는 생각이 드는 나는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아니 엄마를 이해할 수 없었다.
결국 우리는 메인 메뉴를 다 먹을 때까지 피클을 서빙받지 못했고 엄마는 음식 장사 그렇게 하는 거 아니라며 마지막까지 으름장을 놓으시곤 식당을 나왔다.
그리고 몇 개월이 지난 어느 날, 결혼한 동생이 남편과 함께 집에 잠깐 들렀다. 바쁜 매부를 배려해 근처 식당으로 점심식사를 하러 갔다.
한가득 끓여둔 국물에 왕갈비 툭툭 얹어주는 빠르고 맛있는 갈비탕.
먼저 도착해 주문을 한 동생 부부는 음식이 나오는 순서를 보고 "어. 우리가 먼저 주문했는데, 이상하네."라고 중얼거렸다.
'그럴 수도 있지. 우리 테이블은 일행이 늦게 왔으니 조금 뒤에 주시려나보다.'
하필 주방이 보이는 자리에 앉은 엄마는
"보조 주방장이 왜 저렇게 느리니? 아이고, 굼뜬다. 하송 세월이네." 라며 못마땅하신 듯 말씀하신다.
"아! 저거 이제 우리 거다!!" 주방을 보면서 확신에 찬 엄마가 외쳤다.
우리는 4명, 서빙되는 갈비탕은 5개. 아! 우리 음식이 아니었다. 벌떡 자리에서 일어난 엄마는 저벅저벅 식당 가운데로 가시더니 점원에게 따지듯 언성을 높인다.
"아니, 우리가 먼저 와서 주문했는데 왜 이쪽부터 먼저 주나요?"
"예약하셔서 그래요."
"무슨 소리예요? 들어오면서 갈비탕 5개 주세요! 하는 소리 들었는데."
"전화로 예약을 먼저 하셨어요."
"지금 바쁜 사람 데리고 왔는데 서빙을 이런 식으로 하면 어떻게 합니까?"
식당에 퍼지는 싸늘한 정적. 갈비탕 먹으러 온 손님들이 힐끔거리며 엄마를 쳐다본다.
"예약은 무슨 예약이고, 내가 갈비탕 5개 달라는 소리 다 들었는데, 무슨 장사를 이렇게 하는지." 자리로 돌아온 엄마는 아직 화가 풀리지 않았는지 큰소리로 역정을 내신다.
동생이 맞장구친다. "요즘엔 본사 쪽으로 연락하면 되더라."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음식이 나왔다. 엄마가 들으란 듯 이야기한다. "본사에 연락하자."
못 들은 척 먹기 시작했다.
그런데 갑자기 "예약도 안 했는데 예약했다고 대충 둘러대고, 사과도 안 하고."
"이제 됐다 엄마." '아뿔싸.'라고 생각하기엔 이미 말은 바람을 타고 날아가 엄마 귀에 꽂혔다.
"너는 내가 말만 하면 됐다고 그만하라고 하니, 스트레스받게." 엄마가 쏘아붙이듯 말씀하셨다.
동생 부부는 눈치만 보고, 나는 갈빗살인지 고무줄인지 모르는 고기를 질겅거리며 씹고 있었다. 목구멍으로 넘어가지 않는다. 무슨 맛인지도 모르겠다.
작은 사위 앞에서 나에게 저지당하셨으니 기분이 퍽 상하셨으리라 생각이 들면서도 오히려 작은 사위와 오랜만에 식사하는 자리에서 그렇게 화를 내셔야 했을까 싶었다. 이성적이고 논리적이려고 노력하는 나는 분노의 감정을 표현하지 않고도 잘못된 점을 알려줄 수 있고, 원하는 바를 이야기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감정적이고 즉흥적인 엄마는 가만히 앉아서 고상한 척하는 내가 꼴 보기 싫었을지도.
그렇게 우린 동생 부부와 헤어졌고 엄마는 아무 말도 없이 차를 타고 나가버렸다. 어디가 시냐는 내 물음에 "밖에."라는 짧은 대답만 남긴 채.
오랜만에 만나 맛있는 음식 먹는 곳에서 마주한 이런 상황들은 자주 나를 당황하게 만들었지만 이 정도 갈등은 갈등도 아니라는 걸 그때는 미처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