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보통엄마 Feb 16. 2017

아주 보통의 엄마에게

애증의 당신, 이제는 조금 더 이기적인 사람이 되면 좋겠다

나는 엄마와 종종 크게 싸운다. 


이 관계는 모녀지간이어서 차라리 낫다 싶을 정도로 지독하다. 이 지독한 싸움이 끝나려면 내가 나가 살든, 영영 헤어지는 때가 오든 그 뿐일 거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그 시간이 언젠가 올 거라고 생각하면 마음 한 구석이 저릿하다. 그럼에도 살가운 딸이 못 돼 저릿함을 혼자 꾸역 꾸역 삼켜내고 만다.


사춘기 때였다. 여느 딸들처럼 나도 엄마처럼은 살기 싫다는 잔인한 말을 수 차례 했었다. 입 밖으로 꺼낸 게 몇 번이라면, 아마도 나는 평생에 걸쳐 그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도 나이를 먹을 수록 그 '엄마처럼 살기 싫은' 감정에 연민도, 안타까움도, 미안함도, 과거보다 더한 지긋함도 더해지지만 결국엔 되돌아오고 마는 감정. 나는 그런 평범하고 이기적인 딸이다.



가장 보통의 엄마를 이야기하고 싶었다. 구구절절하고, 생각만 해도 눈물 나고, 상처 많고, 희생 많은 그런 엄마말고 아주 평범한 엄마.




가장 보통의 엄마를 이야기하고 싶었다. 구구절절하고, 생각만 해도 눈물 나고, 상처 많고, 희생 많은 그런 엄마말고 아주 평범한 엄마.


엄마라는 단어가 동반하는 인류 보편적 정서가 그리움일지라도, 이상한 흐트러짐에 집착하거나 화를 내고, 사소한 것으로 바쁜 출근길에 소모적인 잔소리를 퍼붓기도 하는, 생각지도 못한 데서 아이처럼 굴기도 하고, 가끔 믿기 힘들 정도로 강인하지만, 정말 내 엄마지만 왜 저럴까 싶은 구석을 가지기도 한 그런 아주 보통의 엄마. 시대적으로는 베이비 부머였고 경제적으로는 풍요로웠으며 정치적으로는 민주화의 기둥이었던 세대. 그럼에도 산업 역군이라든가 민주화의 주역, 이라는 논의에서는 철저히 소외당했던.


급격한 경제 성장으로 평균 가방끈은 과거의 엄마들보다 조금 길어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력을 직업으로 제대로 승화시키지는 못한 세대. 혹은 당시의 못 배움이 한이 돼 자녀를 다 키운 지금에서야 뒤늦은 공부를 시작한 이들이 참으로 많은, 바로 그 세대. 의무교육은 고등학교까지인데, 너무나도 비판 없이 대학에 진학하는 우리 세대에서 상상할 수 없는 그때 그 세대. 여성주의가 대두되는데도 '아줌마'라는 이름으로 모든 여성 논의에서 소외당한 한국 사회의 중년 여성들. 


그들이 지금 우리의 엄마들이다. 그 엄마들을 만나고 싶었다. 아빠에겐 서재가 있고, 우리에겐 우리의 방이 있는데 엄마의 공간은 어디일까.아빠에겐 골프나 조기축구, 낚시 따위가 있고 우리에겐 우리 나름의 여가가 있는데 엄마가 가장 좋아하는 취미 생활은 무엇일까, 그리고 그 취미생활에 시간과 비용을 얼마나 투자하고 있을까. 가족을 위한 음식 말고, 아무에게도 한 숟가락도 안 줄 엄마만을 위한 음식을 한다면 그건 무엇일까. 


엄마에게 평생을 져온 빚을 이렇게라도 갚으려고 '보통엄마'를 쓰기로 했다.


엄마에게 평생을 져온 빚을 이렇게라도 갚으려고 '보통엄마'를 쓰기로 했다. 그렇다고 그 빚을 다 갚긴 어렵겠지만,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당신들도 엄마가 처음이었겠지만, 우리도 딸이 처음이라서 몰랐던 것들에 대해 조금은 알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부채 청산의 과정은, 어쩌면 엄마의 어떤 모습을 닮기 싫어했던 내 스스로에 대한 이해이자, 변명이자, 용서일지도 모른다. 


애증의 당신, 이제는 조금 더 이기적인 사람이 되면 좋겠다. 


Jan 2017

당신 곁의, 아주 보통의 딸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