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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통엄마 Feb 16. 2017

엄마, 그래도 날 낳을 거야?

엄마는 뭐라고 답할지 궁금했다

엄마, 옛날로 돌아갈 수 있다면 그래도 날 낳을 거야?

밤길을 걷다 이 질문이 떠올랐다. 엄마는 뭐라고 답할지 궁금했다. 


외할머니의 증언에 따르면 엄마는 공부를 잘 했다. 지방에 있는 국립 대학의 번듯한 학과에 들어갔으니 나쁜 성적은 아니었을 거다. 없는 살림이었지만 엄마는 장녀라서 대학에 갔다. 대학 입학 후의 이야기는 잘 모른다. 내가 아는 것은 아빠를 만나 연애를 했다는 것. 그리고 두 사람 나이 스물 둘에 내가 태어났다는 사실이다.


임신이 결혼보다 앞섰고, 결혼식은 한참 뒤에야 올렸다. 두 사람의 결혼 사진에는 어린이로 장성한(?) 내가 옆을 지키고 있다. 사람들은 이런 경우를 ‘속도위반’이라 불렀다. 결혼 시기가 수상한 연예인 커플에게 짓궂게 붙는 꼬리표였다. 속도위반 사실이 밝혀지면 그 커플은 수줍으면서도 기쁜 미소를 지었는데, 그 미소 뒤에 있는 당혹감의 크기는 나도 한참 뒤에 알았다. 


내가 스물 둘이 되던 해에, 우리 집에는 모종의 긴장감이 흘렸다. 엄마 아빠가 나를 낳은 나이였다. 가족들 중에 누군가 내게 올해를 꼭 무사히 보내야 한다고 우스개소리를 했다. 엄마 아빠의 전철을 밟지 말아야 한다는 전언이었다. 온 가족이 키득거리며 웃었지만, 나는 사실 좀 식은땀을 흘렸다. 


스물 둘의 나는 대학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뻔질나게 등교 거부를 시전하다 마침내 휴학을 한 참이었다. 이 나이에 임신을 한다면. 졸업은 미뤄야 할 것이고, 먹고 살 방도는 막막했다. 어렵사리 대학을 졸업한다고 해도, 아이 가진 20대 여성을 받아 줄 회사가 있을 리 만무했다. 그럴 바에는 아예 졸업을 포기하고 일자리를 찾는 게 낫겠지만, 특별한 재주나 경력이 없는 여성이 무슨 일을 구할 수 있을까 생각해보면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그러니까, 엄마는 이런 생각을 하고도 날 낳은 것이다. 경외심이 먼저 일었고, 다음으론 마음이 아팠다. 엄마의 꿈에 대해 한번도 물어본 적이 없었다는 사실도 그제야 알았다. 엄마는 늘 직장에 다녔지만, 그게 정말 원하는 일이었는지는 몰랐다. 그저 많은 경력이 필요하지 않은 일이어서 시작한 것일 수도 있었다. 모범생으로 성실하게 살아온 한 여자가 나로 인해 어떤 꿈을 포기했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그 나이가 되어서야 이해하게 됐다. 


엄마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날 낳는 일을 감수하겠다고 한다면, 나로 인해 포기한 것을 다른 삶에서도 이루지 않아도 괜찮다면 그게 더 슬픈 일이었다


엄마, 옛날로 돌아갈 수 있다면 그래도 날 낳을 거야? 언젠가는 꼭 물어보고 싶다. ‘안 낳겠다’고 대답하면 그것도 너무 슬픈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의 나보다 어린 나이에 엄마가 된 사람이 당연히 할 수도 있는 말이었다. 오히려 엄마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연히 날 낳는 일을 감수하겠다고 한다면, 나로 인해 포기한 것을 다른 삶에서도 이루지 않아도 괜찮다면 그게 더 슬픈 일이었다. 


부디 내가 없는 곳에서 엄마가 욕도 많이 하고 많이 울며 살았기를 바란다. 어떤 날에는 결혼한 것을 후회하고 못 이룬 자신의 꿈을 생각하며 살았기를, 여전히 그 꿈을 간직하고 있기를 바란다. 그래야만 내 마음도 더 편할 것 같아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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