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노트가 어렵게 느껴지는 이유, 그리고 읽는 법

An artist statement isn't a test.

by 피스

전시장 벽에 붙은 텍스트를 읽다가 포기한 적 있어?


"회화의 물성과 행위의 반복성을 통해 존재론적 공간을 탐구한다."


이걸 이해 못 하면 그림을 못 보는 건가 싶어서 살짝 위축되지.

근데 그게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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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노트는 원래 어려워. 이유가 있어.


작가 노트는 독자를 위해 쓴 글이 아니야.

작가가 자신의 작업을 정리하고,

갤러리와 미술관 큐레이터에게 맥락을 전달하려고 쓰는 거야.

대상이 미술계 전문가들이니까 언어가 그쪽에 맞춰져 있어.


일반 독자가 처음 읽었을 때 낯선 건 당연해.

번역이 잘못된 글을 읽는 것과 비슷해.

내용이 없는 게 아니라 언어 코드가 다른 거야.






읽는 순서를 바꾸면 달라진다


작가 노트를 먼저 읽지 마.

작품을 먼저 봐.


5분 정도 그림 앞에 서 있어봐.

"이 색이 무겁다" "이 선이 반복된다" "뭔가 비어 있는 느낌이다"

아무 말이든 떠오르면 그게 재료야.

그다음에 작가 노트를 읽어.


그러면 텍스트가 작품에 붙기 시작해.

"아, 그 반복이 작가가 말한 행위의 축적이구나."

이해가 아니라 연결이 일어나는 거야.

한 줄만 연결돼도 충분해.






작가 노트에서 건져야 할 것


전부 이해하려고 하지 마.

이것만 찾아봐.


재료와 방법

"목탄으로 그렸다" "캔버스 위에 물감을 쌓았다"

이건 쉽게 나와. 재료를 알면 작품 앞에서 보는 포인트가 생겨.



반복되는 단어

작가 노트에서 두 번 이상 나오는 단어가 있어.

"기억" "경계" "침묵"

그게 작가가 가장 말하고 싶은 것에 가까워.

그 단어를 가지고 작품을 다시 봐.



작업 시작의 계기

"어느 날 어머니의 사진을 보다가" "도시의 소음이 싫어서"

이런 문장이 있으면 잡아.

개인적인 이야기일수록 그림이 빨리 열려.






작가 노트를 이해하는 사람이 그림을 더 잘 보는 게 아니야.


그림 앞에서 자기 언어로 뭔가를 느낀 사람이 더 잘 본 거야.

작가 노트는 그 느낌에 이름을 붙여주는 도구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야.





이번 화 숙제


다음 전시에서 작가 노트를 작품 본 뒤에 읽어봐.

그리고 반복되는 단어 하나만 찾아봐.

그게 오늘 배운 전부야.


다음 화는 국립현대미술관·서울시립·리움: 어디 가서 뭘 봐야 하나**

셋 다 미술관인데 성격이 완전히 달라.

목적에 따라 어디를 가야 하는지 딱 정리해줄게.


화, 목, 토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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