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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아녜스 May 26. 2022

5일장의 미학

마이 그린 멜로디

시장에 가면, 병아리도 있고, 앵무새도 있고,

블루베리 묘목도 있고, 뻥튀기도 있고,

떡볶이도 있고, 돼지껍질도 있고, 옹심이도 있고, 올챙이국수도 있고...


이곳 횡성에는 5일장이 열린다. 혹자는 5일장을 5일 동안 열리는 시장 혹은 5일에 열리는 장으로 오해를 한다. 그러나 5일장은 5일 간격으로 열리는 시장이다.


어느 지역이나 5일장은 동네잔치다. 동네 할머니들, 할아버지들이 시골 버스를 타고 모여드신다. 집에서 먹고 쓸 것을 사러 혹은 팔러 오신다.


정성 들여 가꾼 농작물부터 시작해서 등 긁개, 자기 등 크고 작은 공산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물품들이 있다. 물론 각지에서 온, 5일장마다 돌아다니는 상인들도 있다.


도시에 살 때는 릴 적 할아버지 댁에 놀러 갈 때나 근처 5일장 갔던 기억이 떠오른다. 매일 여는 시장도 있지만 5일장 하고는 그 맛이 다르다.


시장이 열리는 시기가 한시적이라는 점이 아마도 5일장을 더 활기차게 만드는 게 아닐까. 시기를 놓치면 다음 5일 후를 또 기다려야 한다.


요즘의 팝업스토어와 비슷한 점도 있다. 그러나 정해진 기간에만 열려도 5일마다 또 열릴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는  다르다.


매월 며칠, 이렇게 정해진 게 아니라 어떤 시장은 1,6일 어떤 시장은 2,7일 이렇게 날을 다르게 하여 주변 지역 상권(?)을 고르게 이용할 수 있고 그럼으로써 균형 있게 배려하고 통합하는 의미도 있다는 점은 다르다.


강원도만 봐도 횡성장은 매월 1일, 6일에 정선장은 2일, 7일에  진부장은 3일, 8일에 이런 식으로 대체적으로 겹치지 않고 열린다.


옛날부터 교통이 불편하던 시절에 삼삼오오 모여들기 적합한 시간대로 형성된 것이 아닐까 추측해 본다. 산 넘고 물 건너 장 가는 길을 매일 갈 수는 없었기에.


이렇게 나름 소중한 5일장을 갈 때마다 어찌나 신이 나던지. 마트나 백화점에서 볼 수 없는 생생한 볼거리들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두리번두리번 장터에 널린 물건들을 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처음보는 그 지역 특산품을 경험하는 맛도 쏠쏠하다.


그 기억이 이곳 횡성에 와서 이어지고 있다. 엄마랑 한 번씩 장에 갈 때마다 그렇게 설렌다.


사실 이곳이 시골이라서 교통이 불편하고 대형마트가 없긴 하지만, 택배가 잘 발달되어 웬만한 건 온라인 쇼핑몰에서 주문을 한다. 그래도 굳이 장날을 기다리며 5일장을 가는 이유는 그 만의 매력이 있기 때문이다. 정겨움.


할머니들이 굽은 허리를 두드리며 쪼그려 앉아서 물건을 파시고, 할아버지들은 한쪽에 모여 장기를 두시 기도 한다. 동네 마실이 그날은 오일장이 열리는 곳으로 바뀌는 것이다.


여기저기 좁은 시장 길을 걷다보면 어느새 배가 출출해진다. 금강산도 식후경. 이럴 땐 이쪽 지방에서 먹는 올챙이국수를 한 그릇 후루룩 말아서 간장 양념에 비벼먹으면, 심심하고 쫄깃하면서 슴슴한 그 맛이 딱 강원도 맛이다.


모퉁이 가게에서 파는 만두는 또 그렇게 맛있다. 김은 모락모락 나지, 속은 고기랑 부추랑 뭐랑 뭐랑 꽉꽉 채워져 있지, 한 입 베어 물면 입안 가득 오래전부터 '아는 맛'의 정겨움이 인사를 하는 것 같다. 고소하고 씹히는 고기 왕만두 맛. 갓 찐 왕만두는 계절 상관없이 항상 맛있다. 


서서 먹는 떡볶이도, 떡볶이 국물에 찍어먹는 튀김과 순대도 빠지지 않고 먹는 루틴이다. 출출함을 매콤달톰한 시장 떡볶이로 달래고 다시 장을 둘러본다.


특정 계절에만 사는 품목들이 있다. 에 꼭 사는 건 모종이다.


200평 가까이 되는 밭에-지금은 100평 남짓한 곳에만 짓지만- 발 디딜 틈 하나 없이 심을 온갖 싱싱한 모종들을 눈여겨본다. 구마, 토마토, 오이, 가지, 호박, 양상추 등등 벌써부터 이들이 마당에 주렁주렁 열린 느낌으로 가슴이 충만하다


겨울에는 붕어빵이다. 도보로 붕어빵 파는 곳에 갈 수 있는 시내와는 달리 이곳 시골은 붕세권이 불가능하다. 그래서인지 일단 붕어빵이 보이면 지갑부터 연다. 따끈하고 바삭한  붕어빵을 어렵게 손에 넣으면 겨울을 제대로 즐기는 것 같다.


5일장의 미학은 날짜를 세어가며 기다렸다가 장을 보면서 사람들과 직접 소통하는 것이다.


에누리를 깎아달라고 해보기도 하고, 더 달라고 해보기도 하며 고무줄놀이를 하는 듯 소통하며 장을 보는 일은 참으로 정겹다.  


그 정 때문에 때론 편리함보다 불편함을 감수하게 된다. 우연히 만난 5일장은 지나치지 말고 꼭 한번 들려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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