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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수진 Jun 07. 2023

댄스가수유랑단, 시대를 관통하고 세대를 통합하다.

김완선부터 화사로 돌아본 '여성' '댄스' '가수'의 의미 


지난 5월 25일 tvN 새 예능 프로그램 <댄스가수 유랑단>의 막이 올랐다. 시작은 지난해 <서울 체크인>에서 던진 한마디에서 출발한다. "여가수 유랑단을 하면 어떻겠냐"는 이효리의 가벼운 제안이 현실이 됐다.

김완선, 엄정화, 이효리, 보아 그리고 화사가 모였다. "우리가 바라던 무대, 그 이상의 이야기"를 들려주겠다는 목표로 이들이 한데 뭉쳐 전국을 돈다. 해군사관학교의 작은 강당, 3천여 명의 인파가 모여든 진해군항제 폐막식, 대학가 축제 현장. 이들의 유랑 길이 그 규모를 가리지 않고 펼쳐진다.


여자, 댄스, 가수가 되기까지


대한민국에서 여자, 댄스, 가수로 살아남는 것은 쉽지 않다. 지금은 그나마 시선이 나아졌지만 맏언니 김완선이 데뷔한 1980년대의 분위기는 달랐다. 몸을 흔드는 댄스. 육체에서 분리된 목소리가 마이크를 통해 퍼지며 작은 숨소리마저 크게 들리게 되었을 때, 세간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물론 1960년대 '키다리 미스터 김'으로 큰 인기를 끈 이금희가 댄스 음악의 원조라 불리기는 하지만, 오늘날 '댄스 가수'란 호칭을 굳힌 건 명백히 김완선이다. 17살의 어린 나이에 <독집 제1집>이란 음반으로 데뷔했을 때부터 그가 내세운 건 '섹시한 분위기'였다. 트레이드 마크 격인 비음으로 "나 오늘 밤엔 어둠이 무서워요"라고 노래를 부르고, 신체를 적극 활용한 과감한 율동을 선보였다.


섹슈얼리티에 기반한 댄스. 비슷한 시기 소방차, 박남정 등이 댄스 가수로 인기를 끌긴 했지만, 김완선이 불어온 반향에 미치지는 못했다. 폐쇄적이고, 엄숙한 1980년대 대한민국에서 김완선은 은근히 섹슈얼한 면모를 어필하고 이를 압도적 카리스마로 표출하며 그 빈틈을 파고든다. '나홀로 뜰앞에서', '리듬 속의 그 춤을', '나홀로 춤을 추긴 너무 외로워', '삐에로는 우릴 보고 웃지'로 연타석 홈런을 날렸다. 댄스 가수임에도 산울림의 김창훈, 신중현, 이장희 등 거물급 록, 포크 뮤지션에게 곡을 받으며 장르의 다양성을 포용했고, 춤뿐만 아니라 노래 완성도에도 신경을 썼다.


섹시 가수 우상이 되다


1990년대 박진영이 남성 댄스 가수로 이름을 펼치기 전까지, 댄스 가수는 대부분 여성의 전유물이었다. 물론 박진영 이후에도 댄스는 대한민국에서 여성이 장르의 대표성을 장악한 몇 안 되는 분야다.


엄정화표 댄스 음악에는 스토리가 있었다. 1993년 고 신해철이 써준 '눈동자'로 음악계에 발을 디딘 그는 데뷔 초 가수보단 배우로 더 조명을 받는다. 분위기가 반전된 건 1997년 발매한 정규 3집 <후애>의 수록곡 '배반의 장미'부터였다. 노래 가사에 맞춰 특유의 표정 연기를 선보이고 몸매의 곡선을 그대로 부각한 의상 등은 대중에게 엄정화의 이름을 아로새긴다. Y2K 새천년의 시작과 종말을 앞둔 때에는 테크노 곡 '몰라'로 시대를 응축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엄정화는 'Poison', '초대' 등의 곡을 통해 이별 후의 감정, 아슬아슬하고 아찔한 사랑의 과정 등을 노래하며 제 영역을 구축한다. 반면 이효리는 시작부터 강했다. 요정 콘셉트의 그룹 핑클에서 솔로로 재도약한 2003년부터 그가 내세운 건 주도적이고 주체적이며 당당한 여성상이었다. 10분 만에 널 내 것으로 만들겠다고 노래하는 '10 MINUTES'가 그 시작. 당시 유행한 힙합 사운드를 바탕으로 카고 바지에 크롭탑을 입고 무대를 활보하던 이효리의 모습은 뭇남성은 물론 여성의 마음까지 훔친다.


몇 차례 표절 관련 문제로 몸살을 앓긴 했지만 이효리는 그야말로 꾸준히 내 것을 하며 길을 개척했다. '섹시함'에 집중되어 있던 노래들이 외적 이미지에서 개인 서사 쪽으로 시선을 옮기며 보다 친근한 목소리를 들려주기도 했는데 '천하무적 이효리', '이발소 집 딸' 등의 노래가 꼭 그랬다.


인디 음악가와 협업하며 댄스에 로큰롤, 포크 등의 소스를 이식하고 가장 최근 발매한 정규 음반 < Black >(2017)에서는 일렉트로니카, 트립합을 끌어오기도 했다. 셀프 프로듀싱 및 작사 작곡 비중도 상당하다. 음악으로 자신의 메시지를 풀어나감에 있어, 대중과 호흡함에 있어 어떤 성숙이 이뤄졌는지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No.1'과 'Ending Credit'. 시대를 관통하고 세대를 통합하다


이러한 언니들이 'No.1'을 부르는 보아의 모습을 보며 눈물짓는 장면은 꽤 인상적이다. 특히 보아는 대형 레이블 소속으로 데뷔부터 '기획형 아이돌'이란 반발 아닌 반심 속 활동을 이어왔던 아티스트가 아니던가. 활동 시기는 이효리와 비슷하지만, 워낙 어린 13살에 데뷔한 덕에 풍파도 많았고 변신과 성장의 폭도 컸다. 지금이야 외국 현지 맞춤의 프로덕션이 활성화되어 있지만 보아가 막 일본에 발을 들일 때는 그 어떤 것도 갖춰져 있지 않았다.

그런 그가 2001년 일본 데뷔 당시 부족한 라이브 실력을 지적받고 악착같이 연습을 이어 나갔다는 일화는 이미 알려질 대로 알려진 사실. 데뷔 초 립싱크를 하며 퍼포먼스 위주 공연을 선보이던 보아가 라이브, 댄스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기까지 흘린 땀방울은 쉽게 헤아릴 수 없이 많을 것이다. 더욱이 'Valenti', '아틀란티스 소녀', 'Girls On Top' 등 히트곡이 있었음에도 어느 정도 회사가 만든 메시지를 중심으로 움직이던 그가 정규 7집 < Only One >(2012)을 기점으로 주도권을 행사하는 모습들은 아시아의 별 보아의 가치를 더욱 드높게 치켜세운다.


김완선으로 시작해, 엄정화, 이효리, 보아를 거쳐 2014년 그룹 마마무를 통해 데뷔한 화사가 힘을 합친 댄스가수 유랑단. 막내 화사가 대표하는 것은 앞선 언니들의 호흡에 맞닿은 '섹시함'과 주도적인 '자유로움', 그리고 '댄스'다. 몇 차례 화제를 일으킨 자유분방한 화사의 퍼포먼스는 앞선 언니들이 겪었듯 '논란'이란 꼬리표가 되어 잡음을 만들었다. 데뷔부터 가창력을 인정받은 화사였고 인기 반열에 오른 후에는 선정적인 옷차림, 댄스에 관심이 집중되며 화사를 막아서는 듯했지만, 솔로 곡 '멍청이', '마리아'가 연이어 흥행하며 그는 그 자체로 트렌드가 됐다.


이 여성 댄스 가수들의 유랑이 반가운 건 이 같은 이들의 스토리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시대의 관심이 각 아티스트를 조명하든 조명하지 않든 이들이 꾸준히 자신의 자리에서 내 음악을 했다는 사실이 더욱더 방송이 전하는 감동에 불을 지핀다.


이 대목에서 보아의 'No.1'과 사랑의 마지막, 혹은 인생의 크레딧이 올라간 후의 감정을 그린 엄정화의 'Ending Credit'를 소환하고자 한다. 언제고 넘버 원이기도 하며 또 언젠가 가수로서의 엔딩 크레딧을 조심스레 상상하는 댄스가수들의 유쾌한 공연 방랑기. 5명의 '여성' '댄스' '가수'가 모여 시대를 관통하고 세대를 통합하며 우리를 다시 춤추게 한다. 그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러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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