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진스란 브랜드 만들기
지금 여기 K팝
영리하고 당차게 ‘K팝’을 (재) 정의한다. 데뷔 초, 별다른 프로모션 없이 기습 공개한 ‘Attention’ 뮤직비디오부터, ‘둥둥 둥둥둥둥’하는 킥 드럼 사운드가 특징적인 저지클럽 열풍을 이끈 ‘Ditto’, 말 많았던 ‘Omg’ 뮤직비디오와 이를 가뿐히 잠재운 퍼포먼스는 이들의 일거수일투족을 획기적으로 만들었다. 눈에 띄게 달랐다. 사운드를 가득 채우고, 파트별 구간을 정확히 나눠 멤버별 이미지를 중시하던 이전 아이돌과 달리 뉴진스는 힘을 풀고 분위기를 타게 한다. 잔잔하게 너울너울. 핑크 팬서리스 & 아이스 스파이스의 ‘Boy’s a liar pt.2’를 위시해 해외 팝 씬에서 인기를 끌고 있고 베드룸팝 계열을 국내에 끌어온 이들은 시작부터 기존 K팝과 다른 노선을 택했다.
음악은 새로웠고, 전략은 독특했다. 입대 전 단체 활동을 강조하던 방탄소년단처럼 이들 역시 개별 멤버보단 단체로서의 ‘뉴진스’ 어필에 열을 올린다. 늘 하나로 뭉쳐 호흡하는 그룹은 피처폰, 캠코더 등 Y2K 문화를 적극 수용한 뮤직비디오, 스타일링 등으로 젊은 층과 기성세대의 관심을 동시에 사는 데 성공한다. 앞을 내다본 음악과 과거와 손잡은 이미지 메이킹이 뉴진스에게 확실한 캐릭터를 안겼다. 2022년 낸 첫 EP < New Jeans > 이후 발표한 모든 싱글, ‘Ditto’, ‘Omg’과 심지어 코카콜라 CM송인 ‘Zero’마저 전 세계 대중의 뜨거운 관심을 샀다. 콘셉트나 음악적 변신 없이 일군 성과다.
신보는 이미 몇 차례 대중 검증에 성공한 그 지층을 밟고 올라선다. 다만 더 가벼워졌다. 3분대를 웃돌던 러닝 타임은 2분 남짓으로 줄었고, 음반 전체를 수놓은 사운드는 더 정제됐다. 프롤로그 ‘New jeans’, 인터루드 ‘Get up’을 포함해 총 6개의 노래를 수록한 작품의 재생 시간은 단 12분. 의도적으로 훅 라인을 앞쪽에 배치, 짧은 시간에 뚜렷한 인상을 심기 위한 전략을 취하고 전보다 음역대를 제한 및 가창, 음색의 통일성에 힘을 쏟은 프로듀싱이 가장 먼저 감지되는 변화다. 핵심은 이 비슷한 질감의 노래 탄생이 시기 적절하다는 데 있다. 요즘 날의 분절된 음악 감상 경향. 즉, 음악이 BGM으로 휘발되는 지금 뉴진스 음반은 언제 어디서 들어도 쉽게 질리지 않는다.
저지클럽을 중심으로 몽환적인 보컬이 매력적인 ‘Super shy’, 사이렌 소리가 묘한 긴장감을 만드는 ‘ETA’, 물 흐르듯 매끄럽게 떨어져 내리는 ‘Cool with you’ 등 각 음악은 약간의 분위기 차이만 있을 뿐 곡 사이 뚜렷한 경계를 지니지 않는다. 통일(혹은 통제)된 구성은 곧 노래 외부 상황과 결탁하며 새로운 의미를 찾는다. 블랙핑크, 아이브, 있지 등 당당함을 내세운 그룹에게 그 외부 상황이란 곡에서 노래하는 주체, ‘예쁘장한 Savage’나 ‘예쁘기만 하고 매력은 없는 애들과는 다른 나’ 등 구체적으로 집약될 것이나 ‘친구 같은 아이돌’을 표방하는 이들에게 확장의 방향은 ‘뉴진스(그 너머의 나)’로 향한다.
다시 말해, 곡에서 ‘나’를 특징짓지 않고, 어디에서든 소화 가능한 일명 “숨죽인 음악”을 하는 뉴진스는 무엇이든 될 수 있다. 미국 애니메이션 ‘파워퍼프걸’과 협업해 뮤직비디오를 만들고, 아이폰 14를 수록곡 ‘ETA’ 영상과 무대에 적극 활용할 수 있었던 것은 단체, 그룹, 혹은 브랜드 ‘뉴진스’ 밖의 많은 것을 톤다운 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제작자 민희진의 능력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데뷔 9개월 만에 멤버 전원이 글로벌 명품 브랜드의 엠배서더가 된 것까지 지금 이들의 브랜드 가치는 최정상을 내달린다.
작금의 잘나가는 아이돌이 글로벌 엠배서더로 인기를 인정받듯, 이들도 음악 외의 상품들을 대표하며 성공을 자축한다. 그 과정에서 음악은 ‘자체로서’가 아닌 ‘수단으로서’ 쓰인다. 일면, 노래를 부르는 멤버들 역시 음악 안에서만큼은 스스로 존재하지 못한다는 인상이 들기도 한다. K팝이 종국에 산업으로 닻을 내린다면, 신보의 착지는 완벽하다. 뉴진스는 어떤 의미에서든 지금 여기의 K팝을 이끈다. 우리 곁의 친구를 표방하며 동시에 명품을 대표하는 그 이질성을 잊게 할 만큼. 뉴진스는 전형적인 듯 전형적이지 않은 K팝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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