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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수진 Oct 30. 2023

지금, 여기, 이설아의 목소리

신보 '작은 마을'에 스친 기억들이 퍼져나가다

한 번에 귀를 잡아끈다. 노래에 맞춰 가창을 바꾸는 곡 장악력이나 내 얘기를 담백하고 시적으로 녹여내는 가사의 표현력, 무엇보다 감정의 파고를 찬찬히 끌어내는 음반의 완결성까지 작품은 많은 것을 담고 있다. 또 한편 자신의 개인적이고 시린 감정들, 예를 들어 외로움 혹은 서글픔 등을 가감 없이 글감으로 소환해 대중화한 점 역시 만족스럽다. 이설아의 발견, 이설아의 발전, 이설아의 변화가 이 지점에서 탁월하게 작용한다.


2013년 20살의 나이로 최연소 < 유재하 음악 경연 대회 > 금상을 수상했다. 이듬해 SBS < K팝 스타 시즌 4 >에 출연, 잔잔한 피아노 반주 위에 어머니를 향한 마음을 녹인 '엄마로 산다는 것은'을 통해 인지도를 얻었다. 이후 행보는 다소 침잠. 2022년 발매한 EP < Scene >, < 더 궁금할 게 없는 세상에서 > 그가 들려준 음악들은 부유하는 감정의 파편에 주목한다. 예나 지금이나 내 안의 것들을 끄집어 음악을 썼으나 그 안에 딱 한 줌의 공감을 보탤 요소가 적었다. 멜로디나 분위기 적으로 이설아의 음악은 투명한 유리막 하나를 사이에 두고 더 '나 자신' 쪽으로 향했다.


꿈인 듯 몽롱하고 모호한 첫 곡 '꿈에'로 현실과 꿈 사이를 유영하며 문을 여는 신보는 이제 나를 지나 너에게 다가가듯 활기를 머금는다. 이 활기는 여전히 개인적인 그의 발화가 음악적으로 더 친절해졌음에 맞닿는다. 1990년대 팝 발라드가 생각나는 '친구야'의 대중 친화적이며 복고적인 선율이나 어쿠스틱 기타와 신시사이저가 매끄럽게 융화하는 '불꽃놀이'가 대표적이다. 가사를 뜯어보면 이설아 일기장을 옮겨온 듯 소담하고 치레 없는 문장들이 즐비한데 이 담백함이 따뜻한 선율을 만나 더 넓은 개인에게로 옮겨간다. 즉, 이설아의 < 작은 마을 >은 곧 우리 것이 된다.



변화하되 타협하지 않는다. 발음을 의도적으로 뭉개고 자글거리는 소음이 중첩되며 또 현악기로 불안정한 분위기를 만드는 '면역'은 그가 이설아스러운 음악 표현법을 버리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트랙이다. 한편 '귀여워해보려 했어 사랑해 보려 했어 애써 보아도 (…) 이 비밀스러운 상처를 낫게 하려 / 나는 나를 얼마나 속였는지'하는 가사로 솔직한 내 모습을 투영하기도 하는 이 곡은 가장 순도 높은 이슬아의 현재이며 그가 자신의 감정을 음악으로 그려나가는 방식을 적확히 꼬집는다. 음악적 형식에 얽매지 않고 메시지를 자유롭게 풀어낸다.


신시사이저가 관능적으로 사용된 '오해', 재지한 피아노를 골격 삼아 선명한 선율로 '영원한 건 없다지만 난 믿겠어요' 노래하는 '작은 마을', 힘찬 기타 스트로크가 어딘지 선언적으로 읽히는 '작은 자유'까지 전곡이 꼿꼿하게 생명력을 뽐낸다. 여기에는 김사월x김해원 < 비밀 >의 매혹적이며 영화적인 심상과 천용성이 부른 '김일성이 죽던 해'에서 느껴지던 자전적 풍경과 정밀아 < 청파 소나타 >가 담지한 일상의 단편이 고루 묻어 있다. 앞선 세 작품 모두 그해 대중, 평단의 큰 관심과 사랑을 받았다. 그 뒤를 < 작은 마을 >이 잇는다. 감히 점 찍은 2023년을 집약할 올해의 인디 음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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