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서 런던 한바퀴
걷고 걷고 또 걸었다.
내가 지나가는 골목의 모습
그날의 날씨.
걷고 걷고 또 걷지 않았으면
몰랐을 것들.
런던에서 둘째날 아침이 밝았다. 사실 아침을 맞이하는 건 처음이다. 간단히 씻고 조식을 먹으러 내려오니 우리와 함께 지내는 팀들이 더 부지런히 서둘러 아침식사를 한 후 각자 계획에 맞게 서둘러 나갈 채비를 했고 우리도 짐을 챙겨 오늘의 일정을 시작했다.
처음 맞이하는 런던의 아침은 정말 상쾌했다. 비가 오락가락 오고 날씨가 하루에도 많이 변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정말 이야기 일것만 같은 너무나 좋은 날씨였다. 친구는 아침일찍 일어나 주위 공원 산책을 다녀왔다고 했고 지난 밤 맥주한잔을 나눠 마신 후 잠이 든 후 회사에서 급한 연락이와 밤새 노트북으로 업무처리를 했다고 했다. 멀리 유럽까지 여행을 와서도 편하게 있지 못하는 친구를 위해 피고함도 달래줄 겸 런던브릿지 근처 버로우마켓에 있는 눈물없이는 마실 수 없다는 핸드드립으로 유명한 몬모스 커피로 향했다.
우리나라와는 다르게 런던은 강 남쪽보다 강 북쪽에 금융권이 모여있는데 점점 북쪽으로 올라갈 수록 고층 빌딩들이 낮은 건물 사이 사이로 고개를 내밀기 시작했다. 새롭게 다가오는 모습들이 여행을 왔다는 것을 실감하게 해주었다. 그리고 몇분 지나지 않아 내가 낯선곳에 왔다는 것을 정확히 증명해 주는 사건이 있었는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는 말이 있듯... 바로 마켓이 쉬는 일요일이었다. 북적거려야 어울리는 마켓에 사람은 우리 둘 뿐이었다. 설상가상으로 몬모스커피도 문을 닫았다. 여행 전 영국만큼은 어디를 가야할지 계획을 세웠지만 주말에 마켓이 쉰다는 정보는 전혀 모르는 여행 바보들이었다.
친구에게 뭐라 할 말이 없었고 우리는 샤드근처에 있는 스타벅스에 들어가 따뜻한 커피를 마시며 잠시 여행 경로를 체크해 보기로 했다.
런던브릿지 - 타워브릿지 - 런던탑 - 세인트폴 대성당 - 대영박물관 - 런던브릿지(야경)
눈물의 몬모스 커피를 뒤로하고 하루동안 두발로 걸어가야 할 곳이 많았기에 서둘러 커피를 들고 타워브릿지로 향했다. 어제 런던아이와 빅벤사이를 흐르던 템즈강의 느낌과는 다르게 수심이 더 깊어 보였고 강물에 비추는 현대적인 건물들이 더 깔끔한 느낌을 주었다. 오래된 건물과 그 사이로 자리잡은 현대적인 건물들은 너무 돋보이거나 어색하지 않고 조화롭게 어울리는 모습을 보면서 서로가 너무 잘났다고 높게만 세우고 있는 한국의 건물들과는 전혀 다른 느낌을 주었다. 멀리서 봤을때는 장난감처럼 작게만 보였던 타워브릿지의 모습은 점점 가까워 질수록 단단하고 묵직하게 다가왔고 그 위를 지나가는 자동차, 버스 그리고 사람들의 모습이 잘 어울렸다. 아마도 좋은 날씨가 한몫 했던것 같다.
그렇게 타워브릿지 근처에서 시간을 보낸 후 우리는 템즈강 북쪽으로 향했다. 직접 타워브릿지를 건너며 바라본 모습은 한강 다리를 건널때와는 다른 느낌이었다.
런던탑을 지나 발길 닿는 골목으로 걸어 가다 우연히 발견한 비어있는 샴페인병 하나를 발견했다. 누가 이 샴페인을 마시고 여기에 놓고 간 걸까? 어떻게 보면 쓰레기를 버리고 도망간게 맞지만 강한 햇살을 맞으며 황금빛을 내고 있는 샴페인병을 잠시 스쳐가는 동안 생각을 해보았다.
즐거움을 위한 축배였을지
누군가의 외로움을 달래줄 샴페인이었을지...
런던 역사의 상징인 세인트폴 대성당을 지나 대영 박물관으로 걸음을 옮겼다. 낮 시간에도 강변을 달리며 운동하는 모습, 복잡한 도로 위에서도 어느 누구하나 경적을 울리지 않는 모습을 보며 영국의 여유로움을 느꼈다. 물론 발은 쉬지 않고 다음 행선지를 향해 걷고 또 걷고 있었다.
대영박물관에 도착해 오디오 가이드를 빌린 후 친구와 2시간의 시간을 각자 보내기로 했다. 미술책에서 봤던 조각상들과 유물들이 눈앞에 펼쳐졌지만 나는 그림을 좋아하는 편이라 오디오 가이드에서 들려오는 설명들이 귀에 잘 들어 오지 않았다. 아침부터 점심 시간까지 계속 걸어왔기 때문에 피곤한 탓도 있었지만 오디오 가이드의 이어폰을 빼고 핸드폰에 저장해 놓은 나만의 플레이리스트를 들으며 역사적인 가치가 높은 유물 옆을 스쳐 지나갔다. 물론 하나하나 귀중하고 알아야 하는 내용들이 많지만 대영박물관에 대한 나의 느낌은 그저 그런 침략자들의 전리품 정도로 느껴졌고 빨리 밖에 나가 다시 걷고 싶었다.
오디오 가이드를 반납하는 곳 앞에서 두시간여만에 만난 친구의 모습도 많이 지쳐있었고 이틀에 나눠서 돌아 다녀도 다 못갈 곳을 우리는 오늘 하루만에 대중교통 없이 오로지 두 다리로만 다녔기에 그럴만 했다. 도저히 숙소까지 다시 걸어가고 싶지는 않아 와이파이가 되는 곳을 찾아 숙소로 향하는 버스 정보를 검색해 본 후 처음으로 런던이층버스에 몸을 싣고 편안하게 런던 거리 위를 달렸다.
숙소에 도착해 잠시 휴식을 취한 후 저녁을 먹으러 유명한 피쉬앤 칩스를 파는 곳으로 걸어갔다. 날은 어두워졌고 몸은 힘들고 그놈의 식당은 아무리 걷고 찾아보아도 보이지 않았다. 서로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아침부터 강행군의 일정을 겪은 우리들의 신경은 조금씩 날카로워지고 있었다. 겨우 겨우 찾아낸 식당에 들어가 그렇게 유명한 피쉬앤 칩스를 한입 먹는 순간! 한번 먹어보면 두번은 안먹어도 될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실망한 마음을 조금이라도 위로하기 위해 근처 마트에서 영국 에일과 과일을 구입한 후 야경을 보기 위해 다시 타워브릿지로 향했다. 낮에 런던브릿지를 바라보던 자리에 앉아 친구가 한국에서 공수해 온 팩소주와 영국에일을 섞어 한잔씩 마시며 여행의 고단함을 조금씩 조금씩 위로하고 있을 때 낮에 보았던 빈 샴페인 병을 생각해 보니 축제도 누구의 외로움도 아닌 하루의 고단함을 위한 한잔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오랜만에 마시는 소주의 도수와 몸의 피곤함이 섞여 살짝 취기가 올라왔고 우리는 숙소까지 다시 걸어가는 것을 선택했다. 걷는걸로 시작해서 걷는 걸로 끝이나는 오늘. 여행전 업무로 바쁜 날을 지낸 친구 대신 영국 여행일정을 계획한 나로서는 오늘의 타이트한 일정에 대해 친구에게 미안함 마음을 가지며...
그래도 다행인 것은
우리가 지나온 곳,
우리가 느낀 오늘의 날씨.
걷고 걷고 또 걷지 않았으면
몰랐을 것들.
일러스트레이터 김병조는 2014년 9월, 잘 다니던 광고 기획사 아트디렉터 일을 그만두고 무작정 유럽여행을 다녀온 후, 앞으로 내가 뭘 해야 할지 고민을 많이 했다. “다시 취직을 할 것인가? “VS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것인가?”라는 고민으로 몇 날 며칠을 보내다 복잡한 마음을 잡기 위해 유럽여행에서 촬영한 사진을 무작정 펜으로 그리기 시작했다. 그림을 그리는 시간 동안 마음이 편안했고 내가 직접 두 발로 걷고 느꼈던 유럽의 모습을 일러스트로 담아내는 작업이 참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여행을 통해 느끼는 감정과 기억을 일러스트로 공유한다면 조금 더 특별할 거라는 생각으로 프로젝트를 구상하기 시작했고 2015년 1월부터 <월간 일러스트 프로젝 트>라는 이름으로 하루에 1장씩 공유받은 사진을 그리기 시작했다.
Profile
2015년 - A Little Memory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 시작
2015년 7월 - 1st. SOLO Exhibition / 삼청동 ‘카페온리’
2016년 1월 - PENVAS ‘당신의 작품을 겁니다’ - ‘문화공간 이목’
2016년 2월 - ‘Sponsored by me’ interview
2016년 3월 - ‘NIXON_Waste No Time’ interview
2016년 7월 - ‘2016서울일러스트레이션페어’ 참가
2016년 8월 - 3rd. Exhibition / 컬쳐클럽아시아 x 갤러리서울 ‘WHAT ARE YOU DIONG NOW’ 전시
2016년 10월 - 2nd. SOLO Exhibition / 삼청동 ‘카페온리’
2016년 10월 ~ 2018(현재) - 홍대 ‘공간630’ 정규수업 강의
2016년 11월 - 8th Italian Film & Art Festival 초대 전시
2016년 12월 ~ 2017(현재) - 현대백화점 문화센터 강의
2017년 7월 - versakrum Magazine interview
2017년 7월 - 하늘사이 미술전 - "익숙하고 낯선" - 은평문화 예술회관 전시
2017년 9월 - PWAC 소속 대표 일러스트레이터
2017년 9월 - iDEA group 한국 지사, 총괄 디자이너(디자인 실장)
2017년 10월 - 김병조와 작은기억 모음전_수강생 전시
2017년 10월 - ‘성수작가전 - 작가의 방’ 전시
2017년 12월 - 2018년 2월 - 경기도 소다미술관 "Welcom to my home" 기획 전시
2018년 2월 - PWAC x MANSOLE x LOTTE - "MANSOLE GOLD MINE" 팝업스토어 진행 - 롯데월드 몰
인스타그램 : a_littlememory
블로그 : blog.naver.com/alm_studi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