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저분하고 음산하고 불친절한......
사람과 사물의 겉모습만 보고
모든 것을 판단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첫 느낌은 중요하다.
저녁 6시 50분, 런던 세인트 판크라스 역에서 떠난 유로스타는 약 2시간 30분여를 달려 밤 10시 30분쯤 파리 북역에 도착했다(파리는 런던보다 시차가 1시간 빠르다.)
우리가 도착한 시간이 마지막 열차였는지 상점들은 모두 문을 닫았고 역사 안에는 방금 내린 사람들이 익숙하게 자신의 목적지에 따라 이리저리 움직였다.
결국 남겨진 건 우리 둘과 짐... 런던에서 와이파이가 될 때 미리 파리에서 묵을 숙소까지의 이동 경로를 스크린 샷으로 찍어 놓은걸 보며 이 길이다 저길 이다라고 이야기하고 있을 때 어디선가 익숙한 한국말이 들렸다.
"저기 혹시 한국분들이세요?"
커다란 케리어 2개와 백팩까지 멘 신혼부부였다. 파리에서 묵을 호텔의 이름을 몰라 우리에게 인터넷이 되는지 물어보았다. 인터넷만 되면 호텔 사이트에 로그인해서 이름과 위치를 알아내면 쉬운 문제였지만... 파르르 떨리는 남편의 눈과 입술이 얼마나 초조한 상황인지 금방 알 수가 있었다. 역사 안을 이리저리 찾아보니 아직 정리 중인 상점 하나를 발견하고 다 같이 그곳으로 달려가 인터넷이 되는지 물어보았다. 남편이 영어로 물어보며 사정을 설명하는 것 같았고 몇 번의 대화가 흐른 뒤 조금 안도하는 남편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감사하다는 부부의 인사말과 서로 즐거운 여행이 되길 빌어주면서 우리도 숙소가 있는 stalingard 역으로 향하는 지하철을 찾아 걸었다.
표를 구입한 후 개찰구를 지나 이리저리 복잡한 계단을 오르내린 후 처음 탄 지하철 안에는 사람들이 적지 않게 있었고 영국 사람들과는 또 다른 인상을 가진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가장 중요한 건 칸과 칸을 연결하는 구석 자리에서 나는 아주 기분 나쁜 악취가 머리를 너무 아프게 만들었다. 여행 경로에 대한 정보는 없었어도 파리의 지하철이 더럽고 냄새가 고약하다는 쓸데없는 정보는 어떻게 알았는지...... 그냥 지하철의 역사가 오래된 만큼 냄새가 나겠지 라는 긍정적인 생각으로 목적지로 향했다.
밖에는 부슬부슬 비가 내렸고 네온사인의 불빛이 그 사이로 스며드는 느낌이 아주 음산했다. 숙소를 향하는 길가에 인적이 드물고 어두워서 이미 찍어놓은 경로를 보고서도 한참을 헤매었고 정적을 뚫고 열심히 우리를 따라오는 캐리어 바퀴소리 때문에 음산한 분위는 한층 더 높아졌다. 주인아주머니와 만나기로 한 약속 시간이 한참 지나 숙소 위치 안내에 표시된 건물 앞에 도착했다. 분명 기다리시다 들어가셨을 것이고 늦은 시간이라 인적도 없고 공중전화의 위치도 모르는 상황에서 연락을 하기 위해 그렇게 아끼고 아꼈던 데이터 로밍을 밤 12시가 다 되어서 사용해 전화를 걸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처음부터 신청해서 하루 종일 잘 쓰고 돌아다니고 아까 당황해하던 그 부부에게도 큰 도움이 되었을 텐데...라는 아쉬운 마음으로 주인아주머니를 기다리고 있을 때 어둠 속에서 어떤 남자 한 명이 우리에게 다가오더니 자신의 핸드폰이 망가졌다는 제스처를 취하며 내 손에 들고 있는 핸드폰을 가리키기 시작했다. 말은 안 통해도 내 핸드폰을 빌려 달라는 뜻이 분명했다.
여행 출발 전 파리에 몇 년째 거주하고 있는 대학 동기를 만나기로 약속을 잡으면서 여행 시 주의해야 할 사항에 대해 물었고 그 친구가 핸드폰을 들고 있으면 그냥 훔쳐서 달아나니 조심하라고 신신당부를 했던 게 기억이 났다. 파리에 도착해서 비도 내리고 힘들어서 한껏 짜증이 나던 상황에 그렇게 우려하던 핸드폰 날치기가 내 눈앞에 나타나다니...... 키가 작고 자신의 체형보다 큰 후드티를 입은 남자는 누가 봐도 여행객들을 상대로 날치기나 소매치기를 하는 사람 같이 보였다.
(사람을 겉모습으로 판단하면 안 되지만 그 상황에서 는 첫 느낌이 너무 분명했다.)
눈도 마주치지 않고 상대하기 싫다는 듯 표정을 지으며 그냥 가라고 몇 번이나 이야기를 했지만 한걸음 한걸음 다가오더니 거의 내 앞에까지 다다랐다. 그때 말은 안 통해도 강하게 나가야겠다 싶어 한국말로 욕설을 퍼부어 주었다. 여러 가지 숫자와 강아지 고양이를 다 소환시키고 있을 때 다행히 주인아주머니가 나타나셨고 그 남자는 어디로 간지도 모르게 사라져 버렸다. 짧은 순간 무서웠던걸 생각하니 갑자기 짜증이 나서 아주머니에게 "아! 왜 이렇게 늦게 나오세요!"라고 짜증을 냈지만 아주머니께서는 익숙한 듯 우리 짐을 같이 끌어 주시며 여기가 숙소 건물이고 들어가려면 이렇게 들어가야 하며 숙소 안에서 지켜야 할 사항들을 나열하시면서 그 상황을 여유롭게 피해가셨다.
어렵게 도착해서 짐을 풀고 샤워를 마치고 친구와 2층 침대에 위, 아래로 누워 앞으로의 여행 경로와 일정을 이야기한 후 잠자리에 들었다. 가만히 누워 앞에 있었던 일들을 생각하니 참 우리가 계획도 겁도 없이 여행을 왔다는 생각에 황당하면서도 그 상황에 닥치니 어떻게든 해결해 가는 모습들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문득 호텔 이름과 위치를 몰라 초조해하던 신혼부부가 생각이 났다. 잘 도착했는지 혹시나 싸우지는 않았는지... 과연 그들에게 파리의 첫 느낌은 몇 점이었을지...?
부슬부슬 비가 내리는 파리의 첫 느낌 - 마이너스 100점
악취가 나던 지하철의 첫 느낌 - 마이너스 100점
프랑스 사람에 대한 첫 느낌 -마이너스 100점
총합이 마이너스 300점.
이렇게 짧은 시간에 느낀 파리의 느낌은
마이너스 투성이다.
일러스트레이터 김병조는 2014년 9월, 잘 다니던 광고 기획사 아트디렉터 일을 그만두고 무작정 유럽여행을 다녀온 후, 앞으로 내가 뭘 해야 할지 고민을 많이 했다. “다시 취직을 할 것인가? “VS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것인가?”라는 고민으로 몇 날 며칠을 보내다 복잡한 마음을 잡기 위해 유럽여행에서 촬영한 사진을 무작정 펜으로 그리기 시작했다. 그림을 그리는 시간 동안 마음이 편안했고 내가 직접 두 발로 걷고 느꼈던 유럽의 모습을 일러스트로 담아내는 작업이 참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여행을 통해 느끼는 감정과 기억을 일러스트로 공유한다면 조금 더 특별할 거라는 생각으로 프로젝트를 구상하기 시작했고 2015년 1월부터 <월간 일러스트 프로젝 트>라는 이름으로 하루에 1장씩 공유받은 사진을 그리기 시작했다.
Profile
2015년 - A Little Memory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 시작
2015년 7월 - 1st. SOLO Exhibition / 삼청동 ‘카페온리’
2016년 1월 - PENVAS ‘당신의 작품을 겁니다’ - ‘문화공간 이목’
2016년 2월 - ‘Sponsored by me’ interview
2016년 3월 - ‘NIXON_Waste No Time’ interview
2016년 7월 - ‘2016서울일러스트레이션페어’ 참가
2016년 8월 - 3rd. Exhibition / 컬쳐클럽아시아 x 갤러리서울 ‘WHAT ARE YOU DIONG NOW’ 전시
2016년 10월 - 2nd. SOLO Exhibition / 삼청동 ‘카페온리’
2016년 10월 ~ 2018(현재) - 홍대 ‘공간630’ 정규수업 강의
2016년 11월 - 8th Italian Film & Art Festival 초대 전시
2016년 12월 ~ 2017(현재) - 현대백화점 문화센터 강의
2017년 7월 - versakrum Magazine interview
2017년 7월 - 하늘사이 미술전 - "익숙하고 낯선" - 은평문화 예술회관 전시
2017년 9월 - PWAC 소속 대표 일러스트레이터
2017년 9월 - iDEA group 한국 지사, 총괄 디자이너(디자인 실장)
2017년 10월 - 김병조와 작은기억 모음전_수강생 전시
2017년 10월 - ‘성수작가전 - 작가의 방’ 전시
2017년 12월 - 2018년 2월 - 경기도 소다미술관 "Welcom to my home" 기획 전시
2018년 2월 - PWAC x MANSOLE x LOTTE - "MANSOLE GOLD MINE" 팝업스토어 진행 - 롯데월드 몰
인스타그램 : a_littlememory
블로그 : blog.naver.com/alm_studi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