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업 대중문화 덕후 vs 영국 NPO 예술기관
자본주의사회에 살며 자본을 좇아 그것을 우선시하는 것은 다분히 자연스럽고 타당한 일이다. 나 역시 그렇다.
어떤 일을 시작하기 전에 그것이 돈이 되는 일인지, 시간을 돈의 가치로 환산해서 손익을 따져보는 것. 이러한 것이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것이 전부이자 최우선시되는 것은 지속가능성이 낮다고 말하고 싶다.
영국에서 살면서 직업도, 나이도, 성별도 다양한 사람을 만났다. 그 사람들의 중심엔 돈도 있지만 그 너머의 삶의 원동력이 되어주는 가치가 뿌리내려있고 그것을 알아가는 것은 나에겐 배움이자 즐거운 일이다. 물론 처음엔 돈이 모든 가치의 중심이 되지 않는 것이 의문이었다. 학교 수업 대부분에서 언급되는 NPO (a Non-Profit Organisation) 즉, 돈을 좇지 않는 기관, 그중에서도 문화예술 기관들을 중심으로 예시했는데, 뼛속까지 한국인인 나는 "아니 돈이 안되잖아, 근데 왜 자꾸 NPO 얘기를 하지? 난 관심 없어. 상업적인 예술이 좋아." 이런 생각이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 잡혀 있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흔히 말하는 덕후다. 지금도 별반 다름이 없다. 중학교 시절엔 아이돌에 미쳐있었으며, 고등학교땐 브릿팝, 밴드 음악에 절여져서 살았다. 동시에 뮤지컬 레미제라블에 충격을 받고 웨스트엔드 뮤지컬 산업에서 무엇이든 하고 싶다는 생각 하나로 영국에 왔다. 이렇게 동서양을 아우른 상업 대중문화예술을 사랑하는 나는 영국까지 왔는데 돈이 안 되는 문화예술 기관들을 우선으로 공부해야 한다는 사실이 조금은 못마땅했다.
그렇게 어딘가 삐딱한 시선과 함께 Fundrasing (자금을 모으는) 수업을 듣던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봐봐 NPO도 돈이 있어야 운영되잖아. 가치 실현도 돈이 있어야 하는 거지. 결국은 돈이 우선이면서... 아닌 척... 모순적이야." 뾰루퉁했던 나는 한날 수업이 끝나고 교수님께 갔다. 그리고 이렇게 얘기했다.
"교수님 저는 NPO 보다 상업예술에 관심이 있고 그것에 집중해서 배우고 싶어요. 웨스트엔드 산업에 대한 예시라던가 커머셜 갤러리, 대중음악 콘서트 등..." 그러자 돌아오는 답변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네가 미래에 상업기관에서 일을 하기 위해선 NPO에서부터 커리어를 쌓아가는 것이 접근성도 높고, 또 그것이 맞다."라고 말했다.
솔직히 의아했다. 어떻게 그게 맞다고 단언을 하지? 알 수 없는 반항심 마저 들었다.
여느 때와 같이 학교수업은 어떠냐, 안부를 묻는 아빠의 전화에 나는 기다렸다는 듯 이야기를 쏟아냈다. 아니 불만을 쏟아냈다. 학교에서 내가 원하는 것을 가르쳐 주지 않는다고. 가만히 듣고 있던 아빠의 대답은 짧았지만 나의 태도를 바꾸기에 충분했다. "교수가 그렇게 말한 이유는 큰 자본의 흐름을 읽을 줄도 알아야 상업시장을 이해하기에도 도움이 되기 때문일 거다. 가장 큰 자본이 어디냐. 나랏돈이지 않냐."
그렇다 영국은 아티스트 양성, 문화예술기관유지 및 발전에 천문학적인 돈을 쓰는 나라이다. 그리고 NPO 예술 기관들은 그 자금을 지원받아 운영된다. 결국 아빠의 대답은 학교에서 내내 듣는 수업내용과 같았다. 하지만 그냥 그게 맞다고 단언해 버린 교수의 말에 반항심이 생겨버린 나의 닫힌 마음 때문이었을까? 아빠의 대답은 너무나 쉽고 간단하게 수업 모듈 커리큘럼을 설득력 있게 나를 이해시켜 버렸다.
... 이어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