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lsinki, Finland
발트해의 아가씨
다시 핀란드로 돌아가,
탈린을 다녀온 날 이후부터 날씨가 더 좋아지기 시작했다. 봄일 줄 알았으나 봄으로 넘어가는 길목이었던 헬싱키의 날씨는 하루하루 지날수록 봄에 가까워졌다. 좋아지는 날씨 덕에 감기 기운이 떨어지기 시작한 날 항구 쪽으로 가서 커피 한잔을 하고 마켓 스퀘어에서 과일을 조금 사기로 했다.
날씨가 너무 화창해서 기분이 좋았다. 번화가에서 헬싱키 대성당을 지나 우스펜스키 대성당 쪽으로 가는 동안 '아 날씨 좋다, 날씨 좋다' 말을 입에 달고 걸었다. 성당을 지나 North harbour가 가까워지자 바람이 강하게 불기 시작했다.
헬싱키의 별명이 '발트해의 아가씨'라는 것을 듣고, 날씨나 지형이 그런 느낌이라는 걸까 궁금했던 기억이 있다. LA 천사의 도시처럼 무슨무슨 도시라고 부르는 게 아니라, 무려 '아가씨'라니. 대체 어떤 분위기일까 궁금했는데 며칠 헬싱키에 머물러보니 이 별명이 그렇게 잘 어울릴 수가 없다. 맑은 하늘에 뜨거운 햇살에 살랑이는 바람이 딱이다. 마침 앞에 지나가는 아가씨의 금발머리가 바람에 일렁이는 게 너무 예뻐서 사진을 안 찍을 수가 없었다.
하루 커피 10잔
핀란드는 커피 소비량 1위국이다. 1인당 평균 하루 10잔이나 마신다는데, 진짜일까 의심될 정도로 많은 양이다. 긴 겨울과 백야, 차가운 바닷바람으로 인해 사우나와 뜨거운 커피를 사랑하는 핀란드. 계절이 조금 애매하다는 핑계로 사우나는 접하지 못했지만 커피는 마음껏 마시고 왔다.
요한 니스트롬, 발음하기 어려운 이 곳은 본사가 스웨덴에 있다고 한다. 마켓 스퀘어 근처의 카페를 찾다가 인테리어도 마음에 들고 후기도 좋아서 찍어둔 곳인데, 후기마다 리플을 달아주는 걸 보고 분명 좋은 사람들이 하고 있는 카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바람이 꽤 불고 있어서 야외에 앉아있는 손님은 없었고, 실내가 꽤 넓은데 손님으로 가득 차 있었다. 계단 위쪽도 아래쪽도 가득 차있는데, 인상 깊었던 건 노트북으로 작업하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것. 반가운 그림이다.
건물 외부와 같은 벽돌로 가득 차 있고, 기둥도 바닥도 적당히 낡아있다. 전체적으로 빈티지와 인더스트리얼풍의 가구로 채워져 있는데, 원색의 유광 타일과 철제의자도 의외로 잘 어우러졌다. 느긋하게 수다 떨거나 작업할 거면 안쪽 깊은 곳에 앉으면 좋았겠지만, 잠시 머물다 갈 생각이어서 입구 쪽에 앉기로 했다.
마침 혼자 앉아있던 분이 일어 나주어서 제일 마음에 드는 자리에 앉아서 마시게 된 플랫화이트. 지금 보니 여행 중에 우유가 들어가지 않은 커피는 거의 마시지 않았나 보다. 학교 다닐 때 작업하러 카페에 가면 무조건 아메리카노였는데, 오랜 시간 앉아서 마시기도 하고 중간에 당 떨어지면 빵이나 디저트를 먹다 보니 그랬던 것 같다. 나도 모르게 자꾸 안쪽에 앉아서 작업하는 학생들(아닐 수도 있지만)을 흘끗거리고 있었다. 발트해의 아가씨에 살고 학생이기까지 하다면 분명 내가 부러워하고도 남을 사람들.
Johan & Nyström - Kanavaranta
Kanavaranta 7C-D, 00160 Helsinki, Finland
바다 곁에 사는 사람들
천천히 커피를 마시고 나니 어느덧 마켓 스퀘어가 닫는 시간이 돼갔다. 해가 밤 11시에 지니 오후 5시면 늦은 오후가 아니라 대낮이다. 여전히 맑은 하늘과 이따금씩 강하게 몰아치는 바람.
문을 슬슬 닫고 있어서 눈치 보며 다가갔더니 어서 오라고 손짓해주던 사람들. 소포장된 블루베리와 라즈베리를 하나씩 샀다. 조금 더 일찍 갔으면 좋았을 걸, 아쉬웠다.
헬싱키는 유럽의 관광 대도시와는 많이 다르다. 가진 것이 많지만 소박하고 겸손한 느낌이랄까. 작고, 조용하고, 잔잔하지만 단단한 느낌이다. 다음 목적지였던 스톡홀름이 도시라면 헬싱키는 조용한 지방 소도시 느낌이다. 이런 소박한 느낌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북유럽 디자인하면 헬싱키를 떠올린다. 그럼 이제 Ateneum과 Design Museo 이야기를 좀 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