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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sleeplay Aug 25. 2020

ep04. 내 시간의 자리

아침 일찍 카트만두에서 출발한 버스는 오후 다섯 시가 다 되어서야 포카라에 도착한다. 시골 장날, 할머니 머리 위에서 힘겹게 봇짐이 내려지듯 우리를 싣고 온 낡고 작은 버스는 모래땅에 하나씩 짐을 던져놓는다. 배낭을 덮어버린 모래먼지를 대충 털어내 어깨에 메고서 거칠고 더러운 맨손으로 얼굴을 쓸어낸다. 레이크 사이드로 걸어가는 도로가에는 이름 모를 풀꽃이 피어나 있다. 페와 호수의 물기를 머금었을 상쾌한 바람이 내 콧등의 땀방울을 닦아주며 다독인다.


지난 기억을 되짚어 환전소와 기념품 가게, 식당의 위치를 가늠하면서 한 게스트하우스를 찾는다. 오래전 머물렀던 그곳. 걱정했던 것보다 어렵지 않게 찾아낸 간판을 보고 마당에 들어서니 낯선 남자가 웃으며 반긴다. 그는 자신이 이 숙소의 주인이라고 소개한다. 상냥했던 중년의 여주인을 떠올리며 들어온 터라 당황스럽다. 재차 게스트하우스의 이름을 확인한다. 맞다, 내 기억 속 그 이름.


- 주인이 바뀌었나요?

- 아, 내가 이곳의 새 주인이에요.

- 나는 예전에 이곳에서 묵었었어요. 그래서 다시 찾아온 거예요.

- 그렇군요. 반가워요.

- 내가 묵고 싶은 방이 있는데, 그 방이 비었는지 모르겠네요.


나는 남자에게 내가 머물고 싶은 이층의 방을 가리킨다. 여행자가 많이 찾아오는 시기가 지나서일까, 아니면 운이 좋아서일까, 방이 비어있다. 출입문 옆 작은 리셉션에서 체크인을 하고 이층으로 올라간다. 108호. 방문 앞에 서서 다시 한번 방 번호를 확인한 뒤 건네받은 열쇠로 문을 열고 들어간다. 낡은 침대 두 개의 위치가 달라진 것 말고는 기억 속 모습 그대로다. 배낭을 내려놓고 한참 동안 방을 바라보다 침대 한쪽에 걸터앉는다. 


붉은빛에 밀려 도망가는 푸른빛의 꼬리가 창끝에 걸려있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방은 어느새 어두워지고, 시간은 멈춰 고이기 시작한다. 나는 이 방 곳곳에 남아있는 내 시간을 바라본다. 그 시간의 목소리가, 온기가, 향기가 비눗방울처럼 날아올라 내 주위를 맴돈다. 느낄 수 있을 만큼 가까이 있으면서도 잡을 수 없을 만큼만 떨어져 있는 채로. 아, 또 왔구나, 잘 왔구나, 내가 사랑하는 이곳에 내 시간이 있다는 것이 참 행복하다.


Swayambunath, Kathmandu, Nep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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