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인탐구일지#2 B(안드로이드 개발자)
IT회사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서로를 잘 이해하고 있을까? 같은 업계에서 일하더라도 타 직군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이상 자신의 입장밖에 대변하지 못한다. 디자이너는 디자이너의 고충은 잘 알지만 개발자의 고충은 심도있게 알기 어렵다. 서로의 생각과 욕망, 고민을 이해하면 함께 건강하게 일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에서 시작된 인터뷰 시리즈다.
저는 안드로이드 개발자 B(가명)에요.
MBTI는 스스로가 대가리 꽃밭이라는 사실이 굉장히 마음에 드는 ENFP입니다(웃음)
6년차입니다.
옛날 같으면 부끄러워서 인터뷰 거절했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요즘은 새로운 도전을 해보고 싶고 다른 이유로는 유진 님이 좋아서 인터뷰하겠다고 말씀드렸어요!
B님은 업무할 때 어떤 스타일이에요? 일단 완성하고 수정한다 vs 하나씩 고민하면서 차근차근 완성한다
전자요. 저는 전체 그림을 그리고 세부적인 걸 잡는 게 훨씬 빠르고 퀄리티도 좋아지더라고요.
퀄리티를 내고 싶은 마음에 한 가지 일을 오래 붙잡게 될 때는 없어요?
예전에는 진짜 작은 것까지 집착하면서 코드를 짰어요. 지금은 적당히 마무리하고 다른 우선순위가 높은 작업을 먼저 한 뒤에 다시 하던 작업으로 돌아와요. 어차피 코드는 평생 관리해줘야 하는 생물같은 거예요. 이것 저것 바뀔 일도 많고요. 제가 할 수 있는 선은 다 지키되 너무 이상만을 추구해서 그 순간을 버리지 않도록 신경쓰는 편이예요.
완벽하게 하려고 하면 끝이 없을 것 같아요. 사람마다 끝이라는 기준도 다르고요.
그쵸. 저는 여기서 여기까지 정리해도 상관없어라고 생각하는데 더 꼼꼼한 사람들은 '아니 이 정도는 해야지'라고 생각하거든요. 각자가 선호하는 코드 스타일도 다르고요. 그렇지만 정형화된 게 어느정도 있기는 해요. 선배들이 만들어 놓은 정형화된 아키텍처라든가 방법론이 있기 때문에 그 기반으로 가는 거죠. 저는 사실 개발이 예술의 영역이랑 가깝다고 생각해요.
왜 개발이 예술의 영역과 가깝다고 생각하세요?
보통 개발이 수학이나 논리와 연관되어 있기때문에 이과 영역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개발은 결국 더 우아한 코드를 만들고 우아한 아웃풋을 만들기 위한 사투에요. 왜냐하면 이렇게 해도 되고 저렇게 해도 되거든요. 어떻게 만들든 동작하는데 그걸 굳이 이렇게까지 하는 건 예술의 영역에 걸쳐 있다라고 항상 생각했었어요. 건축도 수학이나 설계를 바탕으로 하지만 예술 영역에 걸쳐있는 것처럼요.
인터뷰에 응한 이유가 요즘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어졌기 때문이라고 하셨잖아요. 최근에 그런 마음이 든 이유가 있어요?
개발자가 되고 많은 것을 포기하면서 살았어요. 원래 하고 싶은 게 많은 사람이었거든요. 개발을 늦게 시작하다보니 하고 싶은 게 생겨도 ‘내가 하고 싶은 거 할 시간 없어. 늦게 시작했으니까 커리어 열심히 쌓아야 돼. ’ 라는 생각에 스스로를 다그쳐 왔었어요. 어느 순간 저는 해야하는 것만 하는 사람이 되어 있더라고요. 더 이상 그렇게 살면 안될 것 같아서 다양한 것들을 조금씩 시도해 보려고 해요. 삶에 여유가 없었거든요.
시간적인 여유가 없었나요?
시간적인 것도 맞지만 심리적인 여유가 더 없었어요. 나는 성장을 해야 되고 커리어를 쌓아야 되고 여기에 너무 집착했던 것 같아요.
경력을 쌓으면서 일이 몸에 어느 정도 익었잖아요. 이전보다는 여유가 생겼어요?
그렇지는 않은 것 같아요. 개발은 항상 새로운 일의 연속이잖아요. 저보다 잘하는 사람이 세상에 너무 많고 저는 항상 부족함을 느끼고 있기 때문에 계속 신경 쓰이기는 해요. 그런데 이 일을 오래 하려면 그런 생각에 매몰되면 안될 것 같아서 의식적으로 그러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생각이 많은 편이신가봐요.
저 생각 진~짜 많아요. 그래서 추진력이 되게 약해요. 생각이 너무 많으니까 이게 좋을까 저게 좋을까 어떡하지하면서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결정을 미뤄요. 요새는 좀 좋아졌지만 잠도 잘 못자요. 생각이 많아서 스트레스 받을 요소도 많거든요. 다른 사람이 신경 쓰지 않는 부분까지 의미를 찾고 스트레스받고 남들보다 예민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생각을 적게 하고 싶어요?
예전엔 그랬는데 지금은 아니에요. 또 그로 인해 생기는 저만의 장점이 있잖아요. 저를 보완해줄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충분히 해결 가능한 문제인 것 같아요. 저는 고민하고 더 좋은 방향을 찾는 역할을 하고, 제 옆에서 그걸 추진해주는 사람이 있으니까 예전만큼 힘들지 않아요.
B님은 스스로가 싫을 때 있어요?
순간적으로 싫을 때는 많죠. 말을 너무 많이 했다 싶을 때 싫어요. 내 말만 너무 많이 한 것 같고 쓸데없는 이야기만 한 것 같을 때요. 실수가 많은 날도 싫고요. 할 일이 많은데 그걸 계속 못해서 쌓여갈 때도 싫어요. 그런데 빨리 털어 내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어떻게든 그 감정에서 빨리 빠져나오려고 해요. 시간이 지날수록 좀 더 뻔뻔해지는 것도 있고요. 나 정도면 양호하지, 실수할 수도 있지 이런 마음이 생기더라고요. 스스로에게 관대하지 못한 성격인 걸 알기 때문에 더 노력하긴 해요. 이 정도면 잘했다고 다음에 더 잘하면 된다고요
맞아요. 그런 마인드가 필요해요. 저는 하루 목표치만큼 해내지 못한 날에 제가 싫어지거든요. 저를 위로해봐도 하지 못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으니까 마인드 컨트롤이 안되더라고요.
무슨 마음인지 알아요. 결국 내가 이걸 못했다는 게 싫은 거니까 아무리 나를 위로해도 괜찮지 않은 거죠. 그러면 이제 방법을 바꿔야 돼요. 애초에 하려고 한 양을 줄이고 플러스 알파를 하는 게 나은 것 같아요. 보통은 목표를 내 능력의 120%로 잡잖아요. 한 60%만 잡고 이것만 해도 잘했다고 생각하고 더 하면 칭찬해주는 방법으로 바꾸는 것도 저는 좋더라고요.
괜찮은데요. 매일 플랭크 3세트 해야지 하고 안하는데, 이제 1세트만 해야지로 바꿔야겠어요.
유진 님은 추진력도 좋고 되게 열심히 산다고 생각하거든요. 저는 운동한다 그런지 1년 됐지만 아직도 안 하는데 유진님은 그냥 계속 하잖아요. 그것만으로도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너무 자기를 몰아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스스로를 칭찬해주세요.
개발자들은 일하면서 어떤 부분이 어려운지 궁금해요.
사람마다 다를 것 같아요. 저는 대책없이 불가능한 일정으로 일할 때 힘들어해요. 눈을 가리고 그냥 뛰어가라고 하는 거잖아요. 일을 많이 하거나 야근을 하는 건 상관 없는데, 이유도 모르고 납득되지 않은 상황에서 따라가기는 어렵죠. 큰 그림을 그리고 이쯤에는 여기까지 만들고 안될 것 같으면 대비를 해야 하는데 신경쓰지 않고 그냥 하라고 할 때 힘들었어요.
업무할 때 개발팀을 제외하면 기획팀과 커뮤니케이션 하는 일이 가장 많을 것 같은데요. 같이 일하기 좋았던 기획자들의 특징이 있을까요?
지금 두 분이 떠오르는데요. 그분들은 설명을 자세히 해주셔서 좋았어요. 그냥 만들어주세요 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이러한 이유로 이렇게 했으면 좋겠다고 설명을 해주세요. 그리고 고민되는 부분이 있으면 혼자 정해서 전달해주시는 게 아니라 개발적으로 둘 중 어떤 게 나은지 먼저 물어봐주시고요.
그리고 기획자들이 개발적으로 모르는 영역이 있을 수 밖에 없잖아요. 자신이 아는 지식 선에서 기획하고 끝내는 게 아니라 계속 학습을 하시더라고요. 사례를 들면, 위치 서비스를 개발한 적이 있었는데요. 기획자분이 GPS 관련해서 계속 공부하시고 모르는 부분은 개발팀에 질문하면서 이해도를 점점 높여가시더라고요.
그냥 알아서 만들어달라고 수동적으로 일하는 사람도 있는데, 개발자랑 협업할 수 있는 지점을 계속 찾아가시는 모습이 멋졌어요. 서로 다른 직무에 대해 이해하려고 하면서 본인의 영역에 녹여가면 결국 협업의 퀄리티는 높아질 수 밖에 없거든요.
일하기 힘든 사람의 특징도 있을까요? 꼭 회사가 아니라 학교나 사이드 프로젝트의 경험도 좋아요.
개인적으로는 감정적으로 일하는 분과 이기적인 분이 일하기 힘들었어요.
감정적이라는 건 어떤 뜻인가요? 서로 감정적으로 사이가 좋지 않더라도 일은 할 수 밖에 없지 않나요?
안해줄 수 있죠. 파트가 다르면 서로 잘 모르니까 두루뭉실한 핑계를 댈 수도 있고요. 업무적인 트러블을 사적으로까지 끌고 가는 사람들도 있거든요. 그런 분들이랑 일하면 힘들어요. 서로 감정이 격해지는 일이 생겨도 가라 앉히려고 노력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분들도 있어요. 보통은 화가 나도 티내지 않으려고 노력하잖아요. 그런 노력을 하지 않는 분들이요.
일할 때 이기적이라는 건 어떤 의미예요?
여러가지 케이스가 있는데요. 자기가 하고 싶은 것만 한다거나 일 욕심이 많아서 자기가 일을 다하고 일을 잘 안 주는 경우도 있고요. 어떤 경우든 함께 일하는 상대를 배려하는 태도가 없는 분들은 이기적이라고 생각해요.
일을 안 하는 것만 이기적이라고 생각했는데, 일을 많이 하는 것도 이기적일 수 있군요.
일을 안 하는 사람도 이기적이긴 하죠. 자기 좋은 것만 하려고 하는 거니까요. 그런데 그런 사람들은 욕심이 없는 사람이기 때문에 무시할 수 있어요. 결국 배제될 사람들이기도 하고요.
그런데 일을 많이 하는 사람들은 욕심이 있는 사람들이라서 배제되진 않더라고요. 결과적으로 같이 일하는 사람한테 더 큰 피해를 끼칠 수도 있어요. 결국 난 내 거를 쌓아야 하는 입장인데 성장하고 싶은 사람들한테는 진짜 독이거든요.
마지막 질문은 일과 관련되지 않은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최근에 결혼을 하셨는데, 결혼하고 나서 좋은 점이 무엇인지 궁금해요.
안정감이 생겼어요. 말로 설명하기 힘든데 집에 혼자 있지 않고 누군가가 들어온다는 사실이 의미가 큰 것 같아요. 나를 지지해주는 영원한 내 편이 생겨서 안정감이 들어요.
결혼 전에도 함께 사셨는데 그때랑 차이가 있을까요?
네. 완전 달라요. 그때는 잘 지내더라도 헤어질 수 있다는 선택지가 있었잖아요. 그런데 지금은 헤어지면 이혼이거든요. 지금은 이 사람이 내 옆에 없을 이유는 불의의 사고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물론 미래를 확신할 수는 없지만 이 사람이랑 저의 성격상 이혼할 일은 거의 없을 거라고 생각해요.
배우자는 부모님이랑은 다른 것 같아요. 부모님은 나의 편이 되어주는 건 똑같지만 저랑 결은 다를 수 있는 사람이잖아요. 남편은 오래동안 만난 만큼 저랑 결이 잘 맞는 사람이에요.
오늘 인터뷰한 느낌은 어떠셨어요?
처음엔 되게 긴장됐었는데 이야기하다보니까 편해졌어요. 제가 질문에 답변만 하고 끝나는 게 아니라 유진 님 이야기도 같이 해주셨잖아요. 그 부분이 너무 좋았어요. 제 이야기를 하려고 오긴 했지만 사실 유진 님이 궁금했거든요. 왜 저한테 인터뷰를 하자고 하셨을까 싶기도 했고, 유진 님이 어떤 사람인지 제가 느낀 게 맞는지 알고 싶었어요.
저는 B님 성격이 저랑 비슷할것 같다고 생각했었어요. 인터뷰를 하면서 느꼈는데, 비슷한 점도 있지만 생각보다는 많이 다르다고 느껴져서 신기해요.
비슷한 점도 다른 점도 많겠죠. 저는 비슷한 점에 더 포커싱을 맞추고 싶네요(웃음) 어떤 부분이 달랐던 것 같아요?
저는 B님이 외향적인 성격인지 몰랐어서 그 부분이 다르다고 느꼈어요. 그리고 저는 평소에 무언가 잘 안되면 자책을 많이 하는 편인데 B님은 그런 스타일은 아닌 것 같아요.
빨리 털어내는 편이에요. 저도 20대 중반까지는 유진님이랑 되게 비슷했어요. 어떤 일에 대해 계속 생각하고 자책을 많이 했어요. 생각하는 패턴이 많이 바뀌었다는 걸 느껴요. 주변 친구들도 정말 많이 변했다고 말을 하고요. 밝아졌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요. 유진 님도 시간이 지나면 저랑 비슷한 방향으로 바뀔 것 같아요. 나한테 긍정적인 방향으로 살다 보니 조금씩 변했거든요. 그래도 저는 유진 님이 저랑 다른 지점들이 있지만 큰 결은 비슷하다고 느껴요.
저도 공감해요. 비슷한 디자인인데 B님이 좀 더 쿨한 버전 같아요.
맞아요. 재밌네요(웃음) 이런 이야기를 회사에서 하기가 쉽지 않잖아요.
웃는 모습이 인상적인 B님
처음 B님을 만났을 때 밝게 웃으며 인사해주셨던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얼굴이 굳어지는 나는 누구와 있어도 밝게 웃는 분들이 신기하고 부럽다. B님은 항상 밝은 표정으로 긍정적인 리액션을 해주신다. 그래서 겁이 많은 나도 B님과의 대화는 편하게 느껴진다. 부정적인 반응이나 날카로운 말이 나오지 않는 사람과의 대화에서 느끼는 편안함이 있다. 함께 일을 할 때도 항상 나를 먼저 배려해주신다. 배려심은 전염성이 강해서, 같이 일할 때면 나도 B님을 위해 무언가 하나라도 더 해드리고 싶어진다. 표정은 바꾸기 어려울 것 같지만, B님의 긍정적이고 배려심있는 태도만큼은 닮으려고 노력해보고 싶다.